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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8:14-22 주님의 치유사역은 오늘 우리시대에도 유효한가 ?

by 朴 海 東 2016. 1. 23.

주님의 치유사역은 오늘 우리시대에도 유효한가

▼ 마태복음 8:14-22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8:14-22

 

이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있었던
어느 안식일 날의 하루를 소상히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있었던 집회를 마치고
곧장 그 도시에 있던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다는 것과
열병으로 누워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고
또 그 날 해 저무는 시각에 베드로의 집으로 찾아온
수많은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들을 고쳐주신 일은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막1:29-31 눅4:38-40]

누가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꾸짖어 고치시고
마가복음에서는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신 것으로 되어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그 손을 만져주심으로 치유하시게 되는데
각 복음서의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 가운데 기록하면서
이 한 사건을 놓고 접근하는 관점들이 서로 보충적이며
보완적인 성격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또 해 저물어 베드로의 집 앞에 모여든
많은 귀신들린 자와 병인들을 고쳐주는 장면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일일이 손을 얹어 고치는가 하면[눅4:40]
마가복음에서는 단순히 서술 식으로 기록하고 있고
마태복음에서는 말씀으로 축사 치유하심을 보여준다[8:16]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를 떠나서 오늘의 말씀에서 마태는
이같은 예수님의 치유사역이 가리키는 긍극적인 목적은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바로 그 메시야[구원자] 되심을 증명하는데 있음을 밝힌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8:17]


예수님의 각종 질병 치유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서
그리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오게 되는 이 치유사역을
접하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예수님의 치유사역이 오늘 우리 시대에는 어떻게 적용되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드려야하는지에 관심이 간다.
오늘날도 이 치유사역은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교파와 교리에 따라
많은 이견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
사도 시대가 지나간 이 시대에도
이 치유사역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그의 교회와 종들을 통해
주님은 오늘도 여전히 치유의 기적을 베푸시는가(?)
이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지나가면
앞으로 계속 접하게 되는 치유사역의 말씀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속 시원하게
이 문제에 대한 정리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미 마태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핵심 본질을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며 선포하시고
모든 약한 것들을 치유하심으로 기록했는데[마4:23]

오늘 이 사명은 그의 사도들에게 전수 되었고[막16:17-20]
더 나아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오늘 우리시대의
교회들-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까지
위임된 사역으로 받아 드리게 된다.[고전12:24]

묵상적용

그런데 문제는 왜 우리 시대에는 치유사역이
잘 드러나지 않고 또 드러나더라도 거짓된 것들도 많으며
또 이 치유사역으로 인하여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인데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복음서를 연대기 순으로 기록해 나가기보다
주제별로 기록해나간 마태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집중으로 기록해 놓은 8장과 9장을 마감하는
마지막 단락 구절에서 예수님의 치유사역의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밝히고 있는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9:35-36]


예수님의 천국 복음 사역에서 나타난 치유들은
한 마디로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무리를
불쌍히[민망히:Compassion]여기시는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능력이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들과 치유 사역자들이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아픈 환자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담당하는 예수님처럼
민망히[불쌍히]여기는 마음이 있는가가 첫 번째 관건이고

두 번째로 이러한 치유 기적의 목적이
치유 기적 자체에 열광하는데 있지 않고
치유[사건 계시]를 통하여 나타내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는데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개 사람들은 치유 기적이 나타났을 때
예수님보다 치유 사역자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이로써 자신의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신유 사역자들의 말로가 결코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주님의 치유사역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 질문에 대하여 나는 단호히 Yes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한 편 이 치유사역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부작용들 - 예컨대 치유 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 때문에 도리어
교만하여 지고 영적 우월감을 갖는 부작용도 있으며
이 치유 사역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영적 열등감들도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치유 사역이 교회에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들을
주님은 어떻게 바라보실까(?)를 염두에 두게 된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치유사역이
오늘 우리시대에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믿는 것이 중요하고
더불어 이 치유의 기적들은 주님의 주권에 속한 것으로
마치 인간 능력의 종들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겸손한 믿음으로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들에게
어떤 모양으로든지 나타내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