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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마태복음 8:1-13 감동의 사람 되기

by 朴 海 東 2016. 1. 21.

감동의 사람 되기

마태복음 8:1-13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 마태복음 8:1-13

 

오늘의 말씀에 소개되고 있는 백부장과 예수님의 만남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같은 본문을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 7:1-10절의 말씀도 함께 참고해서 보게 된다.

성경을 연대기적으로 기록 해 나가기보다
주제별로 기록한 마태의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병인들을 고치신
수많은 치유사역 가운데서
특별히 이 백부장과 예수님의 만남을 선별적으로
기록해서 남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같다

그는 포악한 로마 군인들과 달리
심성이 매우 착한 사람처럼 보인다.
누가복음에서는 가버나움의 장로들이 이 백부장을
대신해서 예수님께 나아와 이 사람을 위해 간청하는데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회당까지 지어주었다는 것이다[눅7:5]

가버나움 주둔군 백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는 피지배계층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폭력보다 사랑과 동정으로 마음을 얻었다는 것에서
매우 특이한 군인으로 여겨진다.

그는 자신이 치안을 담당하는 가버나움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어떤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인심을 얻기 위해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인간애로 이렇게 한 것처럼 보이는데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바 지금 예수님께 간청하는 소원이
자기 자신이나 자기 가족 또는 자기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집에서 병으로 죽어가는 한 종을 위해서
이렇게 간청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종[노예]를 상품 정도로 생각하고 사고팔았던 그 시대에
이 사람의 인권과 생명 존중의 사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하게 된다.

그는 그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동시키기 이전에 이미
자기 주둔 지역인 가버나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그의 이러한 휴머니즘적인 사랑보다 더
예수님을 감동시킨 그의 믿음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수님이 장로들의 간청을 받아 드리고 이 사람의 집으로 향해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는 또 다른 벗들을 보내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며
“다만 말씀만 하셔도 종이 나으리라” 는 믿음을 표시한다.

그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지 않은 것은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유대인이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
또는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부정을 타는 일이어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 정도가 아니라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에 갔다가 돌아올 때도
발의 먼지와 티끌까지 털고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유대인들의 생활과 풍습을 잘 아는 백부장으로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씀 드린 것 역시
이 백부장의 심성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으로써 얼마나 깊은 사람인지를 엿보게 한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람은 하나님도 감동시킨다고 하는데
이 백부장이야 말로 바로 이런 감동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성도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군인 이었지만 심성이 이토록 착한 이 사람을 보면서
내가 신앙 이전에 먼저 심성이 고와야 함을 배우게 된다.

바로 이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당하던 날
마지막까지 무덤을 지키는 자리에 남아서
"진실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고백한
바로 그 백부장이 아닐까 .....(?)

아니면 이가 곧 후에 베드로를 자기 집으로 청하여
이방인으로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바로 그 백부장 “고넬료”가 아니었을까......(?)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내 마음에 깊이 남겨지는 것 한 가지는
나도 이 백부장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기 전에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감동시키는 이런 착한 심성으로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문둥병자와 예수님과의 만남에서는
예수님이 환자를 만지심으로
부정을 타게 되는 것에도 불구하고
손을 내밀어 만져주시는 것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처럼 우리의 약함과 질고를
친히 담당하시는 메시야성을 보여주었다면

백부장과 예수님과의 만남에서는
예수님이 부정을 타지 않게 되도록
집에 모시기를 죄송스러워 하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라도
말씀만으로 고쳐달라는 믿음에 반응하여
능히 말씀만으로도 고쳐주신 것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신성을 보여주는데

이로써 이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이 두 가지 치유 사건을 통해
각각 예수님이 어떤 분 이신가를
충만히 드러낸 셈이 된 것 같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기록하는
복음서 저자들의 일차적 관심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케리그마[선포]적으로 드러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오늘의 말씀에서는
예수님을 감동시킨
이 가버나움 주둔군 백부장이
마음에 진한 감동으로 남게 되는 것은

너도 가서 이처럼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더 나가서 이 감동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데 까지 나아가게 하라는
특별한 교훈으로 마음 깊이 받아 드리게 된다.

주님!
감동이 메마른 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과 선행으로
그리고 주님께 향하여
범사에 감사와 믿음으로 감동을 드리는
나의 신앙과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