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회개해야 할 罪
▼ 예레미야 50:21-32
죽을 때까지 회개해야 할 罪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도구- 세계의 방망이가 되어
애굽도 모압도 암몬도 에돔도 게델과 하솔과 엘람...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요 백성인 유다까지도
그 징계의 손에 맡기셨을 만큼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바벨론이
하루아침에 역공을 당하고 비참하게 무너지며
이 지구상에 그 나라의 존립을 다시 세울 수 없을 만큼
황무지로 변하는 철저한 파멸을 보여주고 있다 (50:23)
바벨론은 승승장구하였고 적수가 없었으며 너무 잘나갔다.
최소한 경쟁자는 있어야 견제가 되고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달리 경쟁상대가 없을 만큼
유일한 세계의 방망이로 삼았을 때
바벨론은 모든 것이 제 잘난 멋으로 되는 일인 줄 알았고
자신을 손에 잡고 막대기로 사용하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자가
자신을 붙잡고 사용하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너무 앞서나갔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심판의 수위 조절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한 나머지 하나님의 백성 유다를 너무 심하게 다루어
도리어 하나님을 거스리는 자 / 하나님의 반대 입장에 서는 자/
하나님과 다투는 자가 되고 말았다 [렘50:24.33. 슥1:15]
한 국가이든 개인이든 너무 잘나가면 스스로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제 분수를 잃어버리는 것이 교만의 생리인 것 같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한때 자신의 도구로 사용했던
바벨론을 원수로 삼아 싸우시는 모습을 통해
오늘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았더라도 내일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자리에 서게 될 수 있음도 보여주는
두렵고 떨리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 붙잡혀 쓰임 받을 때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과 주권적 섭리를 따라 되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해서
안타까움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임 받지 못해서 탄식하므로 시들어가는가?
내가 오늘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 받는 기회를 붙잡았다면
어거스틴의 참회록 고백처럼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교만과 정욕의 죄악은 죽을 때 까지도
회개하는 자세로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라도 내가 잡혀먹을 수 있는 죄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나님의 회중들 앞에 서서
뜨거운 가슴으로 설교를 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도
다음에 또 말씀의 단에 올라갈 때
그렇게 설교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왜냐하면 내 능력과 재주로 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붙잡고 사용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늘 나의 사업이 승승장구하여
십일조를 백만 원, 천만 원, 억 단위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잘 나가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시고 나에게 기회를 주시고
지금 나를 사용해 주시는 것을 잊어버리고
바벨론의 교만처럼 나 잘나서 절로 되는 것 처럼 교만할 때
욥의 그 많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라갈 수 있었던 것처럼
다 잃어질 수 있으며 건강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나의 지위와 권력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자리에 있는것 같아도
그 권세가 언제까지 유지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나님께서 걷어 가시면 우리 정치 역사에서도 보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심복을 통해서도 암살당하거나
민란으로 쫓겨나거나 새로운 적수를 만나게 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면서 일반역사의 사건들 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아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말미암고 또 주께로 돌아간다는
하나님 주권 사상으로 자신들을 세워야 한다(롬11:36)
그래서 잘 나갈 때 더욱 조심하여야 하고
겸손히 주와 동행하기를 배워야 한다
나는 다만 주의 손에 붙잡힌 지팡이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바벨론은 이 단순한 "쓰임 받음의 법칙"을 알지 못해서
크게 쓰임 받은 만큼 크게 쓰러졌으며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교만하여 패망한 나라의 본보기가 되어졌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
오늘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리에 있다 하여도
내일의 나를 보장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깨어있지 않으므로 교만과 정욕에 잡히고
하나님과 원수 되는 자리에 서게 될 수 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이 죄에 대하여 깨어있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죽는 날 까지라도 이 죄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게 하옵소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 !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 따르셨던 모습을
내 마음에 품게 하시고 잘 따를 수 있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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