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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레위기*

레위기 11:1-28 죄[부정]에 대한 혐오감 키우기

by 朴 海 東 2016. 2. 4.

죄[부정]에 대한 혐오감 키우기

레위기 11:1-28


요즘 기도하는 제목 가운데 하나가 
죄에 대해 능구렁이 보듯 징그럽게[혐오스럽게] 볼 수 있는 마음을 달라는 기도이다

왜 죄를 짓게 되고 부정에 빠지게 되는가...?
결국 한 가지 이유 때문인데 그것은 죄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죄에 끌리기 때문이다 

오늘의 말씀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은 언약으로 자기백성된 이스라엘에게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해 말씀하시므로 
자기 백성들이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게 되기를 바라시며
사람의 본능 중에 제1의 욕구가 되는 먹는 문제에서부터 거룩을 배우게 하신다. 

같은 쥐라도 혐오스런 쥐가 있는가하면 
사랑스런 다람쥐가 있듯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지만 
그 지으신 모든 것이 그 생김새와 용모에 따라
사랑스러움과 혐오로 갈라지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로써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동물들 중에서, 바다나 강의 물고기 중에서 , 하늘의 새들 중에서서, 
들판의 곤충들에서 정한 것들이 있고 부정하여 혐오스런 것들이 있는 것 처럼
하나님의 눈 빛 앞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모습은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말씀[례11장]을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베드로에게 준 환상을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과 부정한 이방인을 구별하는 말씀으로 인용하셨다.

신학교 시절 함께 공부하며 가까이 지냈던 40대 중반의 만학도가 있었는데
그는 젊은 30대시절 이미 강철회사 사장 이었다.
하루 밤이면 어여쁜 술집 여성들을 옆에 끼고 술을 몇 박스씩 마셨을만큼 
죄의 낙에 빠져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살았던 사람이다. 

당뇨로 몸을 망치고 사경을 헤메게 되자 뒤늦게 회개하고 돌아와 금식하며
기도로 메달리는 중 하루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스물스물 녹아지더니 나중에는 사람의 모습이 나와 
자세히 보니 그는 그것이 자신의 모습 이라고 하였다. 
그후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목회를 하였고
후에는 강원도 영월에서 결핵환자들의 자활을 위한 공동체를 섬기다 주님 품으로 갔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오늘의 말씀에서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의 혐오스럼 가운데 있던 자신을 불러 내시고 
새로운 피조물되게 하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자신도 거룩하게 살아야 할 것을 요청 받는데
그 성결의 영역이 음식 분야까지 미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비결로써 
인간의 본능 중 제1욕구가 되는 먹는 것에서부터 
정하고 부정한 것을 분별하여 
자신을 통제[절제]해야 한다는것을 말씀 하심으로써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삶을 위한 절제에 익숙해져야 할 것을 교훈하신다.

구원 받았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내재하고 있는 죄적 속성 때문에
마귀가 내 안의 욕심을 부추기며 나를 죄와 부정으로 이끌고 시험할 때 
징그러운 뱀을 보듯 혐오하며 물리칠 수 있는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주님! 
간절히 구하옵나니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안되며 파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자신의 힘으로는 
거룩함의 요청을 다 이루기에 불가능함을 하시는 주여 
성령의 열매중 하나인 절제가 몸에 베이게 하사 
거룩에 민감하게 길들여진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 례위기 11장에 대한 신약교회에서의 적용 ]-----------

나는 오늘의 말씀에서 금기 목록중의 하나로 소개된 돼지 고기를 좋아한다.
묵은 김치에 돼지 고기를 썰어 넣어 만든 김치찌게도 좋아하며 
후라이 판에 구워먹는 삼결살 돼지 고지는 더욱 특별히 좋아한다

소고기가 비싸서도 그렇지만 돼지 고기가 고소하고 맛있기도해서 자주 먹는다 
그럼 나는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

음식에 대한 례위기 11장의 규례와 신약교회의 규례는 다른 것을 신약성경에서 본다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비교를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을 환상을 통해 베드로에게 보여주시면서 잡아 먹으라 하신다

유대인의 음식문화에 젖어있던 베드로가 거부하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다 [행10:15]

이젠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되는 새시대가 된것을 알리신 것이다

예수님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하며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시면서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하셨다 [막7:18, 19]

사도 바울도 어떤 음식이든 음식자체가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10:26]

그러나 만일 내가 먹는 음식으로 다른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한다면 먹지 않아야한다[롬14:15]

바울은 또한 초기 교회에서 음식문제로 혼란해하는 성도들을 가르치도록 디모데에게
한 지침을 보냈는데 그것은 "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고 했다 [딤전4:4]

따라서 례11장의 음식에 대한 규례가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얽어멜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구약에서 이 규례를 주신 것인가...?
이 규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상징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단지 이스라엘에게만 머물렀다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제 구원의 문이 온 세계에 열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도
이스라엘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나눈 이유는 
단지 이스라엘과 이방을 구별하는 수단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구별이 필요없게 되었으므로 례11장에 문자 그대로 메일 수 없다

그러면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겐 례11장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
결코 그런 의미는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규례를 지키므로 
자신들이 선택된 백성 인 것과 육체적으로 정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신약시대 성도들은 례11장을 배우면서 
자신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여 주심을 깨달으며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완전한 율법과 자유를 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풍성한 삶을 살아야한다

더불어 구약시대의 외적 육체적 정결은 
신약시대의 내적, 도덕적 정결과 비교된다는 것을 알아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도덕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더이상 음식문제에 메이지는 않지만 
음식 위생학적 관점에서볼 때 하나님께서 명하여 주신 먹을만한 음식의 종류들이
주로 초식동물들로써 실제로 우리 몸에 좋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급한 음식문화로
몸을 헤치기 보다 정결한 음식문화를 따르는것이 유익하다는 것에도 유념할 필요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