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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 마태복음 14:1-12 목잘린 세례요한은 개죽음 당한 것인가(?)

by 朴 海 東 2016. 2. 8.

목잘린 세례요한은 개죽음 당한 것인가(?)

▼ 마태복음 14:1-12 (2)

 

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 마태복음 14:1-12

하루를 시작하는 이른 아침
오늘은 나에게 무슨 말씀을 주실까
두근거리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생명의 삶 묵상 책을 펼쳐 듭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설날 새해 아침 인데
동편 하늘에 떠오르는
햇살 같은 밝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울한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지는 이야기처럼
마음 아픈 세례요한의 죽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와 갈릴리의 실권자였던 헤롯이
자신의 양심을 건드리며 바른 말 하는
세례요한을 잡아 들였다가
자신의 생일날 자기 앞에서 춤 한 번 잘 춘
자신의 정부 헤로디아의 딸에게
함부로 내뱉은 약속 때문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체면 때문에
세례요한의 목을 잘라 내어주는
마음 아픈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성경에 이렇게 실려 있게 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1. 목 잘려 죽은 세례요한은 개죽음 당한 것인가 ?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따라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님의 오시는 길을 닦고 세상에 알렸던
저 위대했던 광야의 외치는 자 - 세례요한이
이렇게 한 소녀의 요청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너무 애석하고
이런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정말 너무 하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러나 정녕 목 베임 당해 죽은 세례요한의 죽음은
과연 한 권력자의 칼날에 휘둘러진 헛된 죽음일까요...(?)

이 사건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는 가운데
그의 죽음은 결코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라
사명을 따라 태어나서
충실한 사명자의 인생을 살았던 삶의 모습 그대로
그의 죽음조차도 세상의 악함을 고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하는 어떤 선지자들의 죽음처럼
숭고한 죽음으로 사용 되었다고 받아 드리게 됩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당시대의 권력자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 이는 세례요한이
살아난 것이 아니냐는 양심의 가책과
고통으로 시달리게 되는 것을 봅니다.[14:1-2]

더불어 세례요한의 죽음이 비록 비참하게 보이더라도
결코 개죽음 같은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허용된 죽음인 된 것은
마치 릴레이 계주에서 이뤄지는 바톤 터치처럼 되어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구약의 마침표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명처럼 세례요한은 그의 죽음을 통해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마침이 되었고 [11:13]
이제 그가 증거 했던 대로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하고 있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목 잘려 죽은 세례요한의 죽음이
애석하기 그지없지만
그의 죽음이 담고 있는
많은 의미들을 생각해보며

나도 사명을 따라 살다
사명을 따라서 죽어야 함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립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어찌해볼 수 없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 그 이후 영원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두려워하게 하시며

한 자루 타는 촛불처럼 주님을 밝히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로 존재하다
자신의 인생 촛농을 다 사르고 간
세례요한의 촛불을 나도 밝힐 수 있게 하소서


더불어 사람의 눈에 보기에 개죽음 같이 보이는
세례요한의 죽음 때문에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그의 숭고한 죽음 앞에
내 마음의 꽃다발을 드려
각별한 존경을 표할 수 있게 하옵소서.

Tip.
오늘은 음력 새해 첫날 설 명절이 되어
이 땅의 많은 가정들이
죽은 조상들 앞에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이는 모두 귀신에게 속는 일이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고전10:20~21절]

더불어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살고 가느냐는
삶의 장단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세례요한처럼
비록 일찍 생을 마감하고 떠날지라도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로 평가되는
삶의 무게에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묵상적용

2. 함부로 약속하지 않기 [14:7]

헤롯은 자신의 생일날 춤으로 기쁘게 한
자기 정부 헤로디아의 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함부로 뱉은 약속 때문에
자신의 양심이 허락되지 않으면서도
세례요한의 목을 잘라 내어주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한 마디로 사람이 이성적 사고를 잃고
감정에 복받쳐 함부로 약속하면
얼마나 큰 실수를 하게 되는지 잘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중히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인 감정의 동요를 받아
함부로 한 약속 때문에
뒷감당 하느라고 힘들었을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지난 성탄절에 중국인 유학생 교회 학생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 대접하면서
너무 마음이 기쁘고 들뜬 나머지
몸이 약한 아내와 상의하지 않은 채
오는 구정 설날에도 초청할 것처럼
이야기 한 것 때문에 나도 어제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약소하나마 함께 외식할 비용을 써야했는데
아무튼 손 대접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주님께 칭찬 받을 일이지만
감정을 따라 함부로 한 약속 때문에
치러내야 하는 부담이 되었던 과정을 생각해보면서
약속은 함부로 할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깁니다.

주님 !
헤롯의 분별없는 약속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보여주는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감정을 따라서 하는
즉흥적인 약속을 남발하지 않게 하시고
또 약속한 일들은 꼭 치러내야 하는
엄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하여
약속하기 전 먼저 주님께 묻고
말할 수 있는 지혜가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