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성서당/* 베드로후서*

▼ 베드로후서 2:1-14 바른신앙을 위하여 한 눈 팔지 않기

by 朴 海 東 2016. 2. 11.

바른신앙을 위하여 한 눈 팔지 않기

베드로후서 2:1-14

묵상내용

언젠가 가족 켐핑을 가게되어 충청도 금산방향의 어느 큰 강가에서 텐트를 치게
되었는데 마침 그 강가 숲에는 **에 있는 구원파 모 교회가 와서 수양회를 하고
있었다.
강변 마을에는 주점을 겸한 상점이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가끔 필요한것을 사러
그곳을 드나들게 되었는데 당시 놀랐던 것은 수양회에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주점에 들려서는 전혀 어색함 없이 낮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말문을 트게되어 내가 묻기를 어떻게 성경을 배우는 수양회에 참석하면서
대낮에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미 구원받은 자신들은 율법에 속한 것 같은 이런 저급한 수준의 얽메임들은
다 초월하고 벗어났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같은 예수를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여도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배워서 이렇게 이질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궁금했다

여기서 구원의 문제나 음주 문제를 가지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에 있어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가에 따라 신앙의 사고와 사상을 형성하게 되고
그것이 나를 이끌어가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제의 말씀에서는 성도의 거룩한 삶과 또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로써 주님의
재림을 언급하였으며 주의 재림을 미리 예고한 성경의 권위를 강조함과 아울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거나 풀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했는데

오늘의 말씀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자신들의 입맞대로 해석하고 이론을 만들어
사람들을 멸망으로 끌어가는 이단들에 대한 경고와 심판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AD 1세기 초기교회 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모든 이단들의 정체와 뿌리는
우리의 구원과 신앙생활의 기준으로 주신 기록된 말씀으로써 성경을 맘대로 해석하는
것에서 나오며 더불어 역사적 기독교의 교리나 전통을 무시하는데서 나오는 것 같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수직적 관계를 맺은 한 성도의 신앙은 또한 수평적이며
역사적 신앙으로써 신구약과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이런 것들을 무시하는데서 이단들이 출현하는 것같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특별히 지나친 금욕주의적 신앙에 대해 안티 반응으로 나온
어떤 이단들의 가르침과 거짓 교사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 지금 이시대에 등장하는 모든 이단들의 근원적 뿌리가 되고 있는 한 분파로써

초기교회 시대에도 존재했던 "노스틱 이단에 속한 "바실리데스"파 이거나 혹은
"카르포크라테스"파에 속한 이단들로 추정된다

이들의 구원관은 사람의 육체속에 갇혀있는 영혼이 육체와 물질세계에서 해방되는 것
인데 이 구속은 참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누스[NOUS] 곧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Irenaeus,Against Heresies,1,24,3-4]

그런가하면 카르포크라테스파 이단은 신앙지상주의를 표방함으로 극도의 방종생활을
가르친 노스틱 이단인데 육체에 속박되어 있는 영혼만이 중요하므로 참 내가 아닌
육체는 모든 욕망을 채워도 무방하다고 가르쳤다

신비주의와 육욕주의는 상반된 것이 아니고 피차상조하는 것이며 방탕은 오히려
영혼이 해방을 얻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니까 이 세상과 육체에 대한 지나친 적대는 한편으로는 병적인 금욕주의를
낳은 반면 다른 한 편으로는 방탕생활을 방임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 같다.

초기교회에 나타났던 이러한 이단들은 기독교 역사 전반을 관통해 오는 가운데
그 모습과 이름은 달라도 같은 뿌리와 사상을 가지고 등장하는것으로 보여진다

오늘날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 목회자들이 교회를 잘 케어하고 감독해야 할
이유는 신학의 역활이란 마치 한 성의 망루에 올라가서 적의 침입을 살피는
파숫꾼 처럼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를 해치는 이단 세력들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 적 용 ]--------

베드로 사도가 초기교회의 이단들을 경계했던 오늘의 말씀 가운데 특별히 강조되는
이단들의 특성으로써 호색과 방탕/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으로 행함/낮에 즐기고
노는 것/음심이 가득한 눈으로...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는 자들이라고 하는데

초기교회 이단들에게서 나타났던 이러한 특징들이 오늘날 제대로 신학을 공부하고
정상적인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신학을 많이 공부하고 똑똑하며 설교도 잘하며 존경과 추앙을 받던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지만 어느날 이러한 이단적 특성들에 오염되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회를 떠나게 되는 모습들을 보이게 되며

어떤 목회자들의 경우는 이단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신의 행동들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신비주의적 거짓 사설을 만들어 연약한 영혼들을 무너뜨리는 일을 오래 지속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아서 어느날 하나님께서 만 천하에 공개적으로 치부를 드러내서라도
역사적 전통교회의 주류에 서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게된다

따라서 오늘의 말씀에서 경계하고 경고하는 말씀들은 지금 이 시대에 등장하고있는
특정 이단들에 대한 경계와 경고가 되는 것 뿐 아니라,정상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모든 교회와 목회자들에게도, 동일한 경고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들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하나님의
양무리 된 성도들의 성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지도자가 성도들을 참 목자이신
주님께 시선을 향하게 하지 않고 자신을 따르게 만드려고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단들 속에 역사하는 영에 잡히고 이런 위험에 빠질 수 있음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차를 몰고 가다가 전방을 주시하지 않고 무언가 호기심에 마음을 빼앗겨서
한 눈 팔다가 사고를 내는 것 처럼 신앙생활에서도 자신의 욕심을 따라가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하여 준 역사적 기독교의 신앙 전통에서 벗어나
한눈 팔다가 사고 치고 이단에 빠질 위험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수직적 신앙에서 뿐 아니라 신구약 성경에
기초한 교회의 역사적 전통과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평적 관계에 자신을
잘 세워 나갈 수 있도록 바른신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이 될 수 있어야 겠다.

기도하기

주님의 교회, 주님의 양무리들을 잘 먹이며 보호하기 위해서
나에게 세워주신 목양의 자리를 잘 지키게 하옵소서

주님의 목장에 몰래 들어와 어그러진 말로 양들을 호리는 이단들을 경계하게 하시고
더불어 양들과 함께 오직 참 목자시며 목자장 되신 주님께만 시선을 향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