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성서당/* 욥기 *

▼ 욥기 3:11-26 "죽고싶어" 가 "살고싶어" 로 되기 위하여

by 朴 海 東 2016. 2. 11.

"죽고싶어" 가 "살고싶어" 로 되기 위하여

욥기 3:11-26

묵상내용

죽음의 영에 눌려있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써
"죽고싶어 죽고싶어 죽고싶어"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구하는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죽음의 영인 마귀가 미혹하는 자살충동에 빠져가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주신 고귀한 생명을 포기하고
스스로 저승으로 들어가기를 구하게하며 죽음 예찬론자들이 되게 만든다

욥은 너무 큰 고통가운데 탈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자신의 출생을 한탄하며 [3:11-12]

죽음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인 것처럼
죽음 예찬론자의 독백을 쏟아내고 있다[2:13-17]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않으며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지금 욥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의 신앙을 놓고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벌어지는 쟁론의 와중에서 욥은 자칫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 있는
자살충동에까지 떨어졌을만큼 그는 자신의 인생에 최대 위기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탈출구로써 죽음을 동경할 만큼 위기 상황에 몰려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생명과 그 안에 있는 신앙으로 인해
그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게하는 마지막 보루요 마지노 노선이 되고 있음을 본다

----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 어찌하여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3:20 ]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나에게 생명을 주신이는 하나님 이시니
내가 이것을 인정하고 살아 남아야 한다는 고백이다.

내가 이유 없이 태어나고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이요 생명이라는 이 고백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자신을 생명을 유지하게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 교훈과 적용 ]------

죽고 싶어하는 사람마다 죽고 싶은 이유도 다 다른 것을 본다

어떤 사람은 굳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며
치명적인 병이 있는 것도 아니며 굳이 환경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음을 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왠지모르는 정신적 공황이 죽고싶다는 자살충동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 작가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태평양 전쟁 당시 삿뽀로의 아사이카와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숭배를 신념으로 삼고 학생들을 가르친 초등학교 선생이었는데

일본의 패전직후 모든 신념체계가 무너지면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자살하기 위해 해변가를 찾아간 이야기를 그의 처녀작 " 길은 여기에"에 적고 있다.

후에 그는 결핵에 걸려 요양소에서 알게 된 "다다시"라는 남성을 통해
진정한 신앙과 사랑에 눈을 뜨고 예수를 믿게된 후에는
척추를 갏아먹어 들어가는 척추 디스크 결핵이라는 무서운 질병에서도
불굴의 신앙으로 살아 남아서 일본 기독교계의 큰 별로 활동하다 주님 품으로 갔다

내가 아는 한 자매는 서울 *** 구청 **과에 근무하는 공무원인데
결혼하여 아이를 둘 이나 두고 남편도 근실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지만 죽고 싶어하는 기운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고등학생인 딸로 인해 교회를 처음 나가게 되었고
신앙으로 자신의 자살충동을 이겨보려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고한다.

그런데 어느날 정말 교회 가기가 싫었던 날인데
그날 억지로라도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한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 내가 준 목숨을 어찌 네가 함부로 하려고 하느냐..."는 소리 였다고한다

그것은 분명 설교자의 목소리가 아닌 설교중에 들려운 또 다른 목소리 였는데
이 일이 있은 후 이 자매는 죽고싶은 절망감을 떨쳐버리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가지려고 노력했으며 이로써 지금은 정상적인 직장근무와 교회생활도 잘 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내가 섬기던 교회에 *** 이라는 청년은 대학 졸업반 이었는데
따라갈 수 없는 학업 때문인지 아니면 내성적인 성격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 그랬는지 늘 죽고싶어하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그의 어머니 속을 무던히도 썩이다가 마침내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몇 번 면회를 가면서 느낀 것인데
뇌의 신경전달 물질인 토파민이 제대로 조절이 되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 같았다

그는 병원에 입원하여 6 개월동안 정신 신경과적 약을 잘 먹으면서
죽고싶은 충동을 기도와 신앙으로 극복하면서 마침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으며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여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고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 욥의 경우는 당면한 재앙과 고통 가운데서
지나칠 정도로 죽음을 사모하고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 있기를 원하는
독백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는 필시 그의 신앙을 무너 뜨리고자하는
마귀의 자살충동 유혹이 이렇게 나타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생명을 보존하게되는 근저에는
도무지 뭔가 뭔지 모르는 고통과 혼돈 가운데 둘러쌓여 있지만
이 모든 배후에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고 이끄심이 있다고하는 신앙 때문이었다.

"....하나님에게 둘러쌓여 빛이 아득한 자에게 어찌 빛을 주셨는고...[3:23]

비록 처절한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믿고 의뢰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고통을 신음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로 하여금 다음 장에서부터 이어지는 친구들과의 변론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순전함을 고수하는 이유가 되며 절망의 출구가 된 것같다.

결국 죽음 예찬론자가 되어 죽고 싶다고하는 한 사람을
죽음의 충동에서 구하게하는 구원의 빛은
아무리 캄캄한 어둠 가운데 놓여있다하여도 자기에게 생명을 주시고
빛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는 것을 욥에게서 배운다

아무리 절망에 우겨쌈을 당해도, 아무리 헤쳐 나갈 길이 보이지 않고
전후 좌우 사방으로 막혀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로 향하고 위로 향한 길은 결코 막히는 법이 없다.

힘들고 어려울 수록 고통 그 자체에 시선이 멈춰서 더 고통으로 빠져들기보다
눈을 주님께 돌려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빛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봐야한다.
그래서 죽고싶어 죽고싶어 죽고싶어가 살고싶어 살고싶어 살고싶어로 바뀌어야한다.

기도하기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것 같은 절망 가운데서도
거기 시선이 멈추어 낙망하지 않게 하시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빛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탈출구를 찾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