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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1:1-11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질 때까지

by 朴 海 東 2016. 2. 15.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질 때까지

사도행전 1:1-11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 예수님의 당부 중에 마음 깊이 닿아지는 부탁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부탁이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누가복음서의 말미에 썼던 내용을 다시 한 번
반복하여 강조한 셈인데 거기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기까지 이 성에 머물라 [눅24:49]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지금의 모습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아셨다
그들은 전혀 새로운 사람들로 변화되는 것이 필요했다

악한 세상에서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려면
사람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일이기에 주님은 이렇게 당부하신 것이다 [슥4:6]

그런데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기까지 이 성에 머물러 기다리라는 말씀은
또 한 편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우상숭배가 가장 극심했던 아합왕의 시절
홀로 고군분투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위해 싸웠던 엘리야와
그의 사역을 계승하게되는 엘리사의 관계가 연상된다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하늘로 취하여 감을 입는 승천 직전에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이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지기까지 기다리며
기도하라는 당부가 필요했던 것처럼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도 자신의 스승이 승천하기 전
그의 사역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스승 엘리야에게 있었던 능력이 자신에게도 있기 위해서
끈질기게 간구하며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능력을 덧입기 위한 엘리사의 간절함은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에
이동하게 되는 길갈- 벧엘 - 여리고 - 요단강가에 까지 이르고
선지 생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가자

드디어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했으며
엘리사는 당신의 영감이 내게 갑절이나 있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왕하2:9]

여기서 갑절은 보통 재산 상속에서 장자에게 주는 분량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가장 극심했던 시절 엘리사의 사역을 잇는
장자[사역의 계승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엘리야가 승천하게 되면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엘리사는
엘리야와 똑같은 방식으로 요단강 물을 이리 저리 치고 길을 열어 건넜으며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상숭배가 극심했던 불신앙의 시대에
자기 스승이 했던 기적들보다 배가 넘는 열가지 이상의 기적을 행하며
여호와 하나니의 신앙을 위해서 싸운 것을 볼 수 있다.[왕하 2장-9장]

실로 엘리사는 그의 간절한 소원대로 엘리야의 승천과 함께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은 사역의 계승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엘리야의 승천과 함께 주어진 엘리사의 능력무장은
하나의 그림자며 예표가 되어
예수님의 승천과 함께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의 실제를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와 별로 다를바 없는 이 악한 시대에
복음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우리[나]에게도 동일한 요청이며 실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 우상숭배가 극에 달한 아합왕 시대에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하여 여호와 신앙을 위해 쓰임 받기를 원했던 엘리사처럼

나도 하나님의 자리에 물질이 자리를 잡고 있는 맘몬제일주의 이 시대에
여호와 신앙을 위해 싸울 사역의 계승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는가가 중요하며

주님의 제자들처럼 이 시대에 주님의 사역을 계승하여
위로부터 능력을 덧 입기까지 소원하며 기도하는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기독교 역사에서 영적 대각성 운동에 쓰임 받고 부흥을 주도한 인물들을 보면
한결같이 그들은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지기까지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통렬하게 괴로워하며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기 위해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한 사람들이었는데
주님은 엘리사에게 임한 능력처럼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에게 임한 능력처럼
그들에게 위로부터 능력을 덧 입히시어 사역의 계승자들이 되게한 것을 본다

예수님조차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위로부터 입혀지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역하시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렸는데
하물며 나같은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위로부터 입혀지는 능력이 필요하다.

---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10:38]

오늘 나도 이 악한 시대에 능력있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 승리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의 기름부으심 - 능력의 충만이 꼭 필요하다

물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사람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시며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심을 잘 안다. [[요14:17]
그러나 성령의 내주하심 뿐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통한 성령충만이 필요하다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성령충만의 내용을 보면
신학적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성령의 내적 충만과 외적 충만을 구분하고 있다

총신대 권성수 교수 같은 이는 성령충만을 "화끈한 방식의 특별충만"과
"조용한 방식의 보통 충만"으로 구분하는가 하면
고신대 안영복 교수 같은 이는 "생활상의 성령충만"과 "능력충만"으로 구분한다

로이드 존스/대천덕 신부/ 차영배 교수/ 김현진 교수 같은 이는 성령의 충만을
성령의 능력과 관계되는 "외적 순간적 충만"과,
성령의 열매와 관계되는 "내적 지속적 충만"으로 구분한다

어찌되었던 신뢰할만한 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성령의 충만은
이미 내 안에 내재해 계시는 성령의 임재와 충만 외에도
주님의 사역을 능력있게 수행하기 위해서 위로부터 부어지는 능력을 강조한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간곡하게 당부하시는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우기까지 "이 성에 유하라/기도하라"는 말씀은
시대는 변했지만 오늘 나에게도 동일하게 요청되는 효력있는 말씀이다.

기도하기

주님 !
약발이 떨어져서 제대로 기기를 다루지 못하는 리모컨처럼
내가 성령충만하지 못하므로
제대로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련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이 악한 시대에 주님의 사역을 계승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며 기다려야했던 제자들처럼
제가 쓸데없는 일들로 분주하게 돌아 다니는 자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는 자가 되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는 자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