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7:1-13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헬몬산과 가까운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서
예수님은 적어도 일주일 가까운 시간을
제자들과의 시간에 집중하신 것같다
그리고 아직 그 지역에 있었을 때에
베드로/요한/야고보 세 제자를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해같이 빛난 모습으로 변형이 되시며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대화 하시는데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에서는
이제 곧 닥치게될 예수님의 "별세"에 대해서
대화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눅9:26]
별세란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세상에 와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일을 완성하시고
별세 곧 다시 세상을 떠나실 것을 의미하는데
이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십자가를 앞에 놓고 있는 아들을 격려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위로가 담겨 있는 바
그것은 빛난 구름 속에서 들려온
하늘 아버지의 음성을 통해 확인 되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17:5]
하늘 아버지의 사랑받는 친 아들 되심을 인증하는
이 소리는 공생애를 시작하는 초기에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도 들려왔는데
이제 공생애 구속사역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러서
다시 한 번 들려오고 확증되고 있다.
비록 30 대 청년 예수로 서 있었지만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본래 가지셨던
찬란한 영광을 재현시키는 이 황홀경을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목격했던
베드로는 훗날 자신의 편지에서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고 적고 있다.[벧후 1:16-17]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人子]이 되시어
그의 피조물 가운데 들어와 사셨으며
이제 자신의 몸을 십자가의 제물로 드리기 전
그의 죽으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히고
그의 죽으심을 통하여 성취하게 될 구속사역을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상의한 이 놀라운 사건은
아직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변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함부로 발설될 일이 아니어서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세 제자에게
자신의 부활이 있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이 금기사항은 다른 아홉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이 사건은 예수님 부활 후에야 다른 제자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고 이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자신이 전해들은 바를 이렇게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늘의 묵상을 정리하면서 마음에 남는 것은
왜 구약의 많고 많은 주의 선지 종들 중에서도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등장 했는가 인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마태가 이 복음서를 처음 기록하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14대씩 세 번에 걸쳐 나누어
구속사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처럼 [마1:17]
이 본문 또한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서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출발시킨 인물로서 의미가 있다면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극에 달한 시대에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고
심판을 주청한 선지자인데
그 때 모세가 섰던 호렙산 동일한 곳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심판과 그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전달받았던 인물이고[왕상 19장]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된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갱신 시키기 위해 오신 분으로
이 세 분의 만남 속에서 이스라엘 전체 구속 역사의
온전한 의미가 완성되고 있다.
더불어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
구속사역의 성취와 열매는
오늘 하나님의 진정한 이스라엘로서 그의 교회를 통해
이 세상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드리게 된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주님!
30대 청년 예수로
우리 인간들 가운데 들어와 사셨지만
당신은 아버지와 동일한 영광을 입으신
하늘 아버지의 독생자 되신 것을
변화산의 변형사건을 통해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 때 빛난 구름 속에서 들려왔던 음성처럼
하늘 아버지께 인증 받으신
주님과 같은 분이
이 세상에 달리 없는 줄을 알아서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최고의 권위로 삼아서
잘 순종하고 따르는 나의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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