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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고린도후서 *

▼ 고린도후서 3:1-11 나의 만족은 어디로부터 인가…?

by 朴 海 東 2016. 2. 16.

나의 만족은 어디로부터 인가…?

고린도후서 3:1-11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 전체 개요]

오늘의 말씀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우리가 너희들에게 무슨 추천서가 필요하겠느냐는 강경스런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의심하며 적대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신약교회 시대에는 대개 전도자들이 낯선 교회들을 방문케 될 때에 그 교회들이 자신들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른 사도나 제자들 혹은 교회가 추천하는 편지를 들고 왔는데 하지만 바울 자신은 고린도교회에 자신을 검증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고 말씀으로 양육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에게 복음을 듣고 영적으로 성장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앞선 문맥의 말씀에서는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는데 오늘의 말씀에서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며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닌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렇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가 되도록 그들을 복음으로 낳고 양육한 바울 자신과 선교 팀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새 언약의 일꾼이 되게하셨으며 이것은 엣 언약과 비교할 때 율법조문의 직분과 비교되는 영의 직분이며, 정죄의 직분과 비교할 수 없는 의의 직분으로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스런 직분이라는 자부심을 피력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제: 나의 만족은 어디로부터 인가 ?]----------

오늘의 말씀에서 핵심적인 주제는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보다는 바울이 고백하는 바 "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만족"에 더 관심이간다.

동역자디도가 가져온 고린도교회의 소식과 답장을 받아 본 바울은 그간의 걱정과 근심과 눌림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린 듯이 기운이 소생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변화된 모습에 고무되며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된 너희의 모습은 곧 우리의 편지라고 하며 기쁨과 만족을 표시하는데 그러나 이 만족도 스스로 만들어내며 스스로 갖는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만족이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3:5]

----------------[ 교훈과 적용 ]---------------

언젠가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영적으로 다운이 되어 한적한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한 적이 있었다 나는 기도 가운데 주님의 위로를 구하며 무언가 허허롭고 공허한 나의 마음이 만족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했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답답하고 메마른 마음 그대로일 뿐 마음엔 어떤 위로도 만족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기도하다가 이렇게 공염불 같은 기도만 계속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봐야겠다고 생각되어 성경을 집어들긴 하였는데 어느 곳 어느 부분을 읽어야 좋을지 몰라서 그냥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무데나 펴면서 주님께서 나에게 주고 싶으신 말씀을 주시라고 펼쳤는데 그 때 읽은 말씀이 오늘의 말씀에 소개되고 있는 고린도후서 3장 이었다. 그리고 말씀을 읽어내려가던 중 3:5절의 말씀에 나의 시선이 멈춰졌고 필이 꼿히면서 무한 감동으로 마음에 닿아진 경험이 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3:5]

이 한 방의 말씀으로 납덩이처럼 무거웠던 나의 마음이 단 순간에 녹아지는 체험을 하였는데 그것은 내가 무슨 일이든지 나 자신 스스로에서 만족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어야 한다는 깨달음 이었다.

나는 이것을 나의 기도에 대해서도 적용하였는데 평소 기도할 때 마음에 기쁨과 만족을 얻기까지는 제대로 기도를 드린 것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으로 닿아졌다

그 이후로 나는 나의 기도시간에 기도하는 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 감정적으로 기쁨과 희열과 만족을 얻으려는 자세를 버리게 되었고 이런것 조차도 다 주님께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님께 말씀 드렸다 주님! 제가 기도드릴때 내 마음에 벅찬 희열과 감동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혹 이런 감정이 없을찌라도 개의치 않겠습니다. 오직 나의 만족은 주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므로 기도하는 나의 심령에 기쁨의 감정이나 희열 그리고 만족이 있던지 없던지 불문하고 이런 감정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의지적으로라도 기도할 수 있는 성숙한 자리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그 이후로 나는 기도할 때마다 내 심령 가운데 주님의 임재와 오직 주님으로만 채워지기를 바라며 기도하지만 감정적인 기쁨과 만족이 따라오지 않을 때도 개의치않고 의지적인 기도에도 전념하기를 배우게 되었다.

어찌 이 진리를 기도 생활에만 적용할 수 있겠는가....(?)
내가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나의 일상의 삶 가운데 나는 일시적인 세상의 것들로 만족하지 않기를 원하며 영구한 주님께로부터 오는 만족을 소원한다.

더욱 특별히 오늘의 말씀에서 바울이 변화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알게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만족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처럼 나의 만족이라는 것이 세상적인 무엇을 얻은 것 때문에 만족하는 저급한 만족이 아니라 새 언약의 일꾼답게 영적인 것, 그리고 주님께 속했고 교회에 속했고 영혼들에게 속한 것들로 인해 만족하고 기뻐하기를 원한다

기도하기

나에게 기쁨과 만족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
세상에서는 만족을 얻으며 살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그러나 바울이 가졌던 만족처럼
나의 만족은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만족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로부터 말미암는 만족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만족의 원칙을 나의 기도생활 뿐 아니라
나의 모든 신앙과 삶에 적용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