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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사무엘하

▼ 사무엘하 12:1-14 [한절묵상: 12:13] 짧은 쾌락 긴 고통 / 용서와 회복

by 朴 海 東 2016. 2. 18.

[한절묵상: 12:13] 짧은 쾌락 긴 고통 / 용서와 회복

사무엘하 12:1-14

묵상내용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예수님을 빼 놓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요셉이지만 가장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다윗이다 .

죄와 또 그 죄가 주는 고통을
다윗만큼 처절하게 느껴본 사람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땅 위의 성도들이 예수 믿고 구원 받았지만
여전히 육신에 남아 있는 죄적 속성 때문에 괴로워하며
거룩함에 이르기를 그토록 갈망하는 사람들의 표상으로 보이는데
어딘지 우리[나]와 닮은 데가 많은 것 같은 다윗에게
더 마음이 가고 동정하게 되며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오늘의 말씀에서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방문을 받고
죄를 지적당하며 또 죄로 인한 보응이 선포될 때에
지금까지 회개하고 싶었지만 회개가 되지 않아서
괴로웠던 그의 마음에
마침내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회개의 봇물이 터져버린 것 같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나이다[12:13>


이 얼마나 길고 긴 고통의 터널에서
괴로워하며 신음했던 자의 고백인가

오늘의 말씀에서는 단지 한 마디로 표현된 죄의 고백이지만
오늘의 말씀과 관련된 시 51편과 시32편을 들여다보면
다윗은 이 한 마디 고백 속에는
그동안 이 죄 때문에 영혼이 눌리고 허덕였던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한 마디로 담아서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짧은 쾌락 – 긴 고통

다윗이 범죄 한 후 아기까지 낳은 후에 긴 시간이 지나서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죄를 지적하는 것을 보면
그토록 하나님과 생생한 교제를 나눴던 다윗의 마음이 망가져서
답답한 고통의 날들을 보낸 것이 적어도 1년 이상 지난 것 같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기쁨을 삼던 자의 마음에 찾아온 이 고통을
이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회개해야 한다는 부담이 그 마음을 짖 눌렀으나 회개도 되지 않는
긴 고통의 시간들을 그는 시편 32편에서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뻐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시32:1-4]


그런가하면 시편 51편은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방문을 받고
그동안 회개하고 싶었지만 회개가 되지 않았던 마음에
욕심을 잉태하여 죄를 가졌던 자의 자궁이 터지고
양수를 쏟아내듯 죄를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본게된다.

하나님이여 !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나의 죄악을 도말 하소서 ....
하나님이여 !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좇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들어 주소서
하나님이여 !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2. 용서와 회복
다윗이 범죄 한 후 거의 일 년 이상이나 지속된 하나님과 교제의 불통은
그가 그의 일생 가운데 경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회개의 기회를 붙잡았고 막혔던 문을 열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 하리이다 [12:13]


다윗은 비록 자신의 앞길에 죄로 인한 보응을 예고 받았지만
하나님과 막혔던 교통의 문을 열게 된 것에 비교하면
이런 죄의 보응들은 자신을 더욱 겸손하게 낮추시고 성결하게 하는
사랑의 징계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징계는 그 자체로서 고통이지만 하나님의 손에서 받는 징계라면
이로써 더욱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묵상적용

[ 다윗이 경험한 죄의 용서와 보응 적용하기 ]

목회 초년 시기에 한 청년이 내게 와서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기도원에 가서 몇 날 금식을 하고 왔다고 하며
이제 자신의 죄는 용서 받았지만
죄의 보응이 있을 거라는 말을 하기에
이 청년이 진정한 죄 사함의 기쁨을 회복한 사람인가...(?)
왠지 모르는 의구심이 내 마음에 남았다

죄가 상처라고 한다면 죄책감은 그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처가 회복되면 고통도 사라지는 것처럼
죄가 용서되고 회복되었다면 죄책감도 보응의 두려움도
갖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 된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여 주신 십자가 앞에서
내가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으며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받으신 죄의 보응 외에
내가 덧붙이기 할 죄의 보응이 달리 또 있을 수 있는 것인가 ...(?)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다윗이 경험한 죄와 보응을
마치 수학공식 대입하듯 적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회개하여 용서는 받았지만 죄의 보응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이는 진정한 용서와 회복이 아니며
그것은 마귀가 주는 두려움이라고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사람이 동물이나 짐승들을 길들이기 위하여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는 것처럼 같은 원리를 따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녀들을 길들이기 위해
보상과 보응을 사용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며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인격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유아기적 신앙일 때는
보상과 보응의 원리가 적절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기적 수준을 벗어나 장성한 자들에게
구약적 보상과 보응을 그대로 대입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 관계를 수학공식처럼 대입하고
두부 모 자르듯 규격화하며 획일화시키기보다
각 사람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성향과 분량대도 상대해주심을 나는 믿는다

하나님으로 기쁨을 삼고 살던 다윗이
거의 일 년 이상이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꽉 막혀서 고통 하다가
마침내 회개의 봇물을 쏟아내고 용서와 회복을 경험한 축복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던 것처럼

흉한 죄인인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용납 받은 죄 사함의 기쁨은 보응의 문제를 떠나서
이 이상 더 큰 가치와 축복이 내게 달리 없음을 나는 확신한다.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범죄 한 후 마음이 괴로워서 회개하고 싶지만
회개가 되지 않았던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낸 그 자체로서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막혀있는 소통의 문을 여시기 위해
다윗보다 더 마음이 괴로우셔서
선지자를 통하여 먼저 찾아오신
동일한 그 사랑으로
오늘 나를 상대해주시며

나보다 더 나의 죄를 사하기를 원하시며
나보다 더 나의 평안을 염려하여 주시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눈물이 괴입니다

오 주님 !
나의 평범한 일상 가운데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며 살 때에도
내가 주님과 소통의 교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 한 가지만으로도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을 결코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