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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사무엘하

▼ 사무엘하 12:15-23 한절묵상:12:15]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

by 朴 海 東 2016. 2. 18.

한절묵상:12:15]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

사무엘하 12:15-23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 마음에 닿아지는
세 구절이 있어 묵상의 소재로 삼게 됩니다

1.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 [12:15]

공의와 정의를 집행하는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에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 대행자로서 백성을 대표하는 왕이
간통을 통해 낳은 왕자를 얻었다고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의 손상이자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의 속성에도 맞지 않는 출생 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불륜으로 태어난 이 왕자의 출생을
"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
라는 호칭을 부여함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좋았을 아이가 태어난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태어나지 않으면
차라리 자신에게 좋을 아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태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배신하여 팔아넘기는 가륫 유다에 대해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저에게 좋았을 뻔 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마26:24]

다윗은 자신의 피붙이로 태어난 이 아이가 살기를 바래서
그토록 금식하며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마침내 이 아이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 아이가 죽지 않고 산 것보다
아이와 다윗 자신을 위하여
차라리 죽어서 하나님의 품으로 간 것은 잘 한 것 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쓰라린 슬픔이지만
이 징계 속에는 더 깊은 사랑과 축복이 숨어 있습니다
일단은 태어났던 아이가 먼저 떠난 것이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고백처럼 후일에 다시 만날 소망을 남겨두었습니다[12:23]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아진 자세가 되어
칠 일 동안 금식하며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동안
이러한 사실들을 깨달았기에
아이의 죽음을 알았을 때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였으며
일어나 몸을 씻고 의관정제한 후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나]의 가정에 태어난 아이를 위하여
주님 앞에 드리고 싶은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 [ 우리 가정에 주신 자녀를 위한 기도 ]------


주님께서 우리[나]의 가정에 태어난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시고
생명을 부여하여 살게 하셨사오니

이왕에 우리 가정에 선물로 주신 이 아이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아이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정말 잘된 아이로 자라게 하소서

묵상적용

2. 다윗의 기도관[祈禱觀] [12:16]

병들어 죽어가는 아이를 살려보려는 다윗의 기도에서
정말 자신이 드리는 기도에 대해 응답 받기 원하는 자의
진지한 기도의 자세가 무엇인지 배웁니다

그것은 단순한 간구의 차원을 넘어
금식/ 철야 / 땅 바닥에 엎드림 등의 자세로 나타나는데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진지하고
가장 낮아진 자의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도 보게 되는 기도이며
또 내가 비상한 시기에 배우고 따라야 할 기도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이나 다윗 모두
자신들이 바라고 소원 기도대로 되지 못했으나
이렇게 진지하게 기도하였으므로
기도한 내용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기꺼이 이의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좋고
자신들을 위해서도 유익하다는 것을
진지한 기도 가운데서 분명히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겸비한 자세로 진지하게 기도한 사람들은
자신이 기도한 바에 대해
하나님께서 Yes로 답변하시든 No로 답변하시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기도 응답인 것을 확신하게 됨을 배웁니다.

3. 다윗의 내세관[來世觀]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12:23]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갓 태어나서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생과 내생을 오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내가 그 아이에게로 가는 날이 있을 것을 암시 합니다.

만일 사람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이라면
세상에 이것보다 더 허무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생에서 헤어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음을 바라보는 다윗의 내세관에서
나도 언젠가는 내가 먼저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을
(요단강) 건너가 만나게 될 그날을 희망 중에 바라봅니다.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

주님이 계시므로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이 있고 천국이 있음으로
이 세상에서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 볼 날이 있음을 만만 감사드립니다
이 소망을 붙잡고 낙심하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힘차게 살아가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