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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사무엘하

▼ 사무엘하 18:1-15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

by 朴 海 東 2016. 2. 18.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

사무엘하 18:1-15

묵상내용

참 이상한 전쟁이 발발하였다
자식이 자신의 아비를 향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아비는 자신의 부하들을 내보내는 출정식에서
자신의 부하 장수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죽이지 말고
너그러이 대해 달라는 특별 부탁을 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대로 아히도벨의 모략이 기각되고
자신을 위해 모략을 제안한 후새의 모사가 채택되었을 때
비록 숫자적인 열세를 지니고 임하는 전쟁이었지만
어느 정도 승산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는 세 명의 장수들에게
더욱 특별히 이 부탁을 하고 있다.

이 날의 전투는
숫자가 많은 압살롬 군대에게 유리한 벌판이 아니라
숫자적 열세를 안고 싸우는 다윗의 군대에게 유리한
수풀의 전투가 되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 날의 전투가 매우 맹렬하여
2 만명 가까운 전사자가 나왔는데
칼에 죽은 자 보다 수풀에서 죽은 자들이 더 많았다고 하니

아마 이 전투가 벌어진 마하나님의 수풀은 협곡이 험하고
습지와 절벽들이 많아서 다윗의 부하들에게 쫓긴
반란군들이 늪지에 빠졌거나
계곡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군사전략 전문가인 다윗이 처음부터
반란군들과의 격전지로 이 마하나임 수풀을 선택한 것은
적중하였고 압살롬의 군대는 이 작전에 말려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다윗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기는 하지만
자신이 원했던 방향으로 이 반란을 종식시키지는 못한다
반란군의 괴수가 되버린 자신의 아들을
죽이기보다는 생포하여 데려오기를 바랬던 그의 바램은
이 부탁을 가장 성실하게 수행해 주어야 할
요압 장군에 의해 묵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무성한 상수리 나무 가지에 걸려
공중과 땅 사이에 매달려 있었음으로
충분히 생포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요압은 자신의 주군인 다윗의 부탁을 묵살하고
창으로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이고
자기 방식대로 전쟁을 종식시켜버린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주요한 테마가 되고 있는
반란군의 수장 압살롬의 처리 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리고 다윗의 관점과 요압의 관점에서
서로 상반되는 교훈들이 마음에 남겨지게 된다.

1. 하나님의 관점에서 :
하나님의 전쟁[싸움]에 사사로운 인간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 것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을 혼란에 빠트린 압살롬과 그의 군대는
반란군이었고 또 이 나라의 정통성을 주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을 가지고 치뤄지는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부성애를 초월하지 못하고
이 전쟁에 개인적인 감정을 개입시킨 것은 잘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미 아히도벨의 계략이 기각되고
후새의 모사가 채택되게 되는 배경에서
하나님은 이 반란의 주모자가 되는 압살롬을 멸하시고
해를 주시고자 작정하셨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7:14]

오늘 내가 신앙과 삶 가운데 접전하게 되는 영적 싸움에서
때로는 나와 가장 가까운 혈육의 문제가 얽혀질 수 도 있는데
혈육 이전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영적싸움에 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6:12]

묵상적용


2. 다윗과 그의 신하 요압의 관점에서 :
신하는 자신의 왕과 주군에게 신의와 충성을 다해야한다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을 가진 이 전쟁에서
요압의 행위처럼 압살롬을 죽이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윗의 바램처럼 죽이기보다 생포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최종 판단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고
여기에 대한 책임도 최종 결정자인 다윗 자신이 가지게 될 것 이었다

요압은 단지 자신의 주군이며 왕인 다윗의 명령에 대해
신하로써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 이었다.
그러나 요압 역시 이 전쟁에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킨 것으로 보인다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그술로 도망가 있었을 때
압살롬을 데려온 것도 그리고 압살롬의 얼굴을 보지 않는 왕에게
부자간 상봉을 주도하게 한 것도 요압 자신 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이 과정에서 압살롬이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의 보리 밀밭을 불로 태워버린 것에 대한 악 감정이 있었고[
또 압살롬이 살아있는 한
디윗의 궁에서 자신이 2인자의 자리까지 위협받을 수 있으며
자신의 뜻도 마음껏 펼 수 없으리라는 이해관계를 앞세운 것 같다.

따라서 요압의 입장에서는 압살롬이 살아있는 것보다
죽어 없어지는 것이 더 좋았고
이러한 그의 개인적인 감정은 왕의 부탁까지도 묵살하고
얼마든지 생포할 수 있었던 압살롬을 죽여 버리는 것으로 나타난 것 같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충성을 다 해야 할
자신의 왕이며 주군인 다윗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며 왕의 명령을 묵살해 버린
요압은 다윗의 참 신하가 아니며 결코 충성된 신하가 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왕에게 충성한 것이며
이러한 그의 심리상태는 결정적인 순간에
왕의 명령을 기억하시라는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8:10-14]
왕의 부탁을 묵살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다윗은 반란군을 제압하고 승리하였으나
승리를 승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격한 슬픔을 이 전쟁에서 드러내게 된다[18:33]

------[교훈과 적용]-----

충성되고 신실한 종의 제1 조건은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그 주인의 마음에 합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요압은 다윗의 궁에서 자신의 왕이며 주군인 다윗에 대해
가장 마음을 잘 헤아리고 충성해야 할 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생각과 자기 판단과 자기감정을 앞세워
생명을 걸고 지켜드려야 할 왕의 명령을 묵살한다.

왕의 뜻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요압의 이런 성격은
사울 왕가와 평화롭게 합치기 위해 찾아왔던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죽이는 과정에서도 나타났고
지금도 또 오늘의 말씀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어지는 말씀에서 다윗의 뜻을 역행하여
압살롬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죽이는 과정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따지고 보면 다윗은 자신의 왕가에 가장 큰 힘을 실어준 것 같은
요압으로 인해 또한 가장 큰 골칫거리와 아픔을 지니고 산 것 같다
따라서 다윗은 자신이 임종에 즈음하여
후계자로 즉위하는 솔로몬에게 요압의 이러한 행실들을 언급하며
태평시대에 불의한 피로 자기 허리띠와 신발에 묻힌 요압이
그의 백발로 편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는 유훈을 남기는데[왕상1:5-6]

가장 가까운 왕과 신하의 관계이며 주군과 종의 관계 같았으면서도
가장 멀리 겉돌았던 다윗과 요압의 불행한 관계가
오늘 나의 왕이시며 나의 주군이신 예수님과 나 사이에
조금도 끼어들지 않게 할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한다.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

주님의 명하시는 말씀 앞에
조금이라도 나의 뜻을 개입시키거나
역행하는 우를 범치 않게 하소서

나의 왕이시며 나의 주군이신
주님의 마음 잘 헤아려
주님의 뜻 이뤄드리는 충성된 종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