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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사무엘하

▼ 사무엘하 18:24-33 더 늦기 전에 Now & Here !

by 朴 海 東 2016. 2. 18.

더 늦기 전에 Now & Here !

사무엘하 18:24-33

묵상내용

강이나 개울가에 사는 가시고기의 부성애[父性愛]는 참 독특합니다
엄마 고기가 알을 낳고 훌쩍 떠나버린 후
아빠 고기는 다른 고기들이 이 알들을 먹어버리지 못하도록
알에서 새끼들이 나오기까지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지키며
마침내 새끼들이 나왔을 때는 그동안 새끼들을 지켜내느라
너무 탈진된 자신의 몸통아리까지 새끼들에게 먹인 후
자신의 존재가 없어져 버리는 특이한 일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가 조창인 씨는 세상에는 이런 아버지들의 사랑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시고기"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썼는데
어머니들의 사랑과 또 다른 치원에서 보여주는
아버지들의 사랑을 써내려간 글로써 깊은 감동이 남아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다윗을 통해 보여주는 부성애의 절정을 보는듯합니다.
어찌보면 아들이 자기를 대적하여 일으킨 전쟁의 승패보다
아들 압살롬의 안위가 걱정되어 어쩔 줄을 모르고 소식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소식을 전하러 온 1, 2 차 보발꾼들의 소식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꼭지점이 터져버린 눈물샘에서
하염없이 눈물의 홍수를 쏟아내고 있으며
한 구절 안에서 무려 일곱 번이나 죽은 아들 압살롬을 부를 만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을 그리며 허공에 외치듯 절규하는 모습입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 충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 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18:33]


그러나 왕의 군대와 반란군의 대립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처음부터 다윗이 전쟁의 승리와 아들의 생명 두 가지를
모두 다 양손에 쥘 수 없는 성격으로 시작된 전쟁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저자가 이렇듯 애틋하게 절규하는
아비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생각해보게 되는데

그것은 죽음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갈라놓기 전에
오늘 이라는 현실에서 충분히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후회 없는 사랑을 남겨야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러고보면 압살롬이 이 반란의 전쟁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그술에서 돌아온 2년 동안에도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 여전히 용서가 되지 못해서
아들을 불러주지 않고 아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해
요압을 내세워 아버지와 다시 만나고 입맞춤을 하고 난 뒤에서부터
더욱 미움이 불길이 타오르며 역모의 칼날을 갈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 때 만났던 아버지의 아들의 입맞춤은 진정한 용서가 아닌
형식적 입맞춤이었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14:33]

왜 그리도 용서하기가 어려웠을까...(?)
진정한 용서와 사랑은 서로 어그러진 관계에서
일방이 항복하고 다른 일방이 항복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모두 Win - Win으로 나가기 위해
자기주장과 자기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함께 입 맞추고 얼싸 안아야하는 것인데
하고 싶지 않은 용서를 억지로 형식만 내다보니
이 거짓된 용서는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할 수 없었고
더 큰 미움으로 불타오른 후 반란으로 이어지고
일방의 생명을 잃고 난 후에서야 비로써
때늦은 용서와 사랑의 눈물샘이 터져버린 것을 보게됩니다

그러니 오늘 내가 마땅히 용서해야 할 사람이 살아있다면
더 이상 서로를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는 기회조자 잃어버려서
더 큰 슬픔과 비통에 빠져드는 일이 없도록
오늘 지금 여기서 [ Now and Here ]
진정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해야 할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드립니다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


서로 용서가 되지 않으므로 더 큰 사건이 터지기 전에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고
더 이상 용서하며 사랑할 기회조차 앗아가 버리기 전에
오늘 지금 여기서
마땅히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다짐하며 사랑의 품에 안고
진정한 용서와 사랑의 표시를 나타낼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