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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사무엘하

▼ 사무엘하 20:1-13 신앙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by 朴 海 東 2016. 2. 18.

신앙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사무엘하 20:1-13

묵상내용

신앙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1.파벌주의를 경계함 [20:1-2]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고 왕이 귀환 길에 올랐을 때
서로 왕을 모셔가려는 유다지파와 이스라엘 간의
쟁탈전이 벌어졌을 때까지만 해도 참 좋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통일과 화합을 위해
다윗과 같은 지파인 유다지파가
은근 슬쩍 뒤로 빠져 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서로 왕을 모셔가려는 이 행복한 쟁탈전에서
유다지파 사람들의 강경일변도 발언은[19:43]
남은 열지파의 심기를 자극하였고
이런 심기 틈새를 교묘히 파고든
또 다른 기회주의자 “세바”의 분리 선동에 의해
다윗 왕국은 또 다시 위기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20:1]


-------[ 교훈과 적용 ]------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들의 교회는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들어와 한 몸을 이루는 곳이므로
교회의 하나 됨 그 자체는 정말 기적에 가까운 것이고
주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이 아니고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하나 됨을 잘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다윗에게 근친이 되는 유다지파가 다른 열 지파를 위해
양보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처럼
교회에서 목회자와 절친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 전체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언제나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로서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교회의 파벌주의에 휩쓸릴 수 있고
또 교회를 쪼개어 분리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세바”같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재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고
모처럼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화합과 평화가
성사되려는 시점에서 다시 찾아온
파벌주의자 “세바”의 선동과 민심의 이반은
하나님의 나라요 백성으로서 우리들의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위하여
어떻게 서로 양보하고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교훈으로 닿아진다.

2. 부정함을 경계함 [20:3]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 왕궁에 돌아왔을 때
이미 압살롬에 의해 더럽혀진 후궁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왕국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언제라도 튕겨져 나올 수 있는 위험요소가 되어버렸다

열 사람의 후궁들에게 개인적으로는 딱한 일이 되었지만
왕국의 안정과 평안을 위하여
그들은 별실에 갇혀야했고 생과부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기 위해
그 녀들을 제거하기보다 따로 별실에 별거하게 하며
양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끝내고
평생에 관계하지 않으므로 왕궁의 안정과 질서를 도모하였다

때로 신앙공동체 안에는 그냥 두어도 좋을 것 같은 일들이
그대로 방치하므로 악성 누룩처럼 번져서
해를 끼치는 일들이 있는데
사사로운 관계나 감정에 매이지 않고 사전에 조치하므로
안정과 평안을 도모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묵상적용

3. 인사[人事]는 곧 萬事[만사]다

압살롬의 난이 평정하는 과정에서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해달라는
왕의 부탁을 묵살하고
얼마든지 생포할 수 있었던 압살롬을
죽여서 제거해버린 요압의 처사에 대해
다윗은 요압에 대한 원망과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압살롬 편에 섰던 사람들까지도 포용하는 의미에서
화합정책을 쓴 것도 물론 있었겠지만

이미 요압을 대신하는 군대장관으로
아마사를 임명한 것이나[19:13]
또 세바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아마사를 총사령관으로 삼은 것을 보면 [20:4]
요압에 대한 다윗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던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한 편 요압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반란군의 수장으로 배신을 때린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삼고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모병을 떠난 아마사가 기한 내에 오지 못하자 [20:5:]

이번에는 자신의 동생인 아비새를 책임자로 세워
자신보다 위에 세우자
어떤 분통함과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요압의 굴욕감은 다윗이 임명한 아마사를
비겁하게 무방비 상태에서 칼로 찔러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세바의 진압작전은
요압의 지휘 아래 들어가게 되었으니[20:11]

요압은 자신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인 것이
다시금 드러내었는데
그러나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마26:52]
솔로몬의 등극 후
그 자신도 칼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왕상2:34]

오늘의 말씀은 세바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다윗의 인사 정책이 어떻게 나타났고
어떤 결과로 귀착되었는지 보여주는데
다윗은 왕국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
현실을 인정하고 능력 위주로 인사 정책을 편 것보다
다분히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게 되거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고 한
지혜자의 말처럼[잠14:4]

다윗과 요압의 관계는
다윗 왕국의 건국초기부터 마지막까지도
서로에게 뗄라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면서
서로에게 고통이 된 관계인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로서 다윗 왕국에 얽혀진 이런 이야기들은
오늘 하나님의 나라로서 우리들의 교회 신앙공동체 안에
날줄과 씨줄처럼 엮어져있는 동일한 이야기로 닿아진다.

그러나 다윗과 요압 사이의 이런 갈등관계에도 불구하고
이 왕국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왕국이며
하나님께서 주도해 가시는 나라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교회도
아무리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여도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인도자가 되시는
우리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왕되신 주님이시여 !

오늘 우리들의 신앙 공동체가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어떻게 현실을 인정하고
어떤 방향을 나가야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신앙공동체가
아직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불완전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이 다시 돌아오시는 그날까지
가장 성경적인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때를 따라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가 언제나 함께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