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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마태복음 *

▼ 마태복음 26:36-46 에수님의 기도에서 배우는 것들

by 朴 海 東 2016. 2. 22.

에수님의 기도에서 배우는 것들

마태복음 26:36-46

묵상내용


1.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도의 자리에서 머물기[26:36]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마침표를 찍어야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도의 자리에서
그리고 기도의 모습으로 마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 배신자 유다가 체포 조를 이끌고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위기의 순간이어서
결코 기도할 만한 상황도 여건도 아니었지만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다락방에서 나와서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의 동산으로 들어가셨고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것으로 승부를 거셨습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삶을 마감하는 시간에 이르렀을 때
야곱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침상머리에 의지해서라도 기도한 것처럼
그리고 종교개혁의 아버지 깔뱅이
임종의 시점에 이르렀을 때
시편 51편을 암송하는 기도로 마감한 것처럼

나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건한 모습으로써
기도하는 자세로 주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2. 슬픔과 고통을 느낄 때 [26:37]


어쩌면 기도의 자리에서 쏟아내기 시작하신
예수님의 슬픔과 고통의 격정은
이미 다락방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 슬픔과 고통에 밀려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다락방에서보다
기도의 동산으로 향하게 되신 것으로 보입니다.

기도의 동산으로 가서 슬픔과 고통을 기도로 풀어내신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서
나도 살아가면서 이러저러한 슬픔과 고통들이 생길 때
이 때가 더욱 주님 앞에 기도할 때인 것을 알고
주님 앞에 슬픔과 고통을 쏟아낼 장소를 찾아 가서
내 마음을 물같이 쏟아서 기도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3.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 [26:39]

1) 기도의 도전 정신으로 나아가기


기도는 영에 속한 일이기 때문에
육신의 한계를 가지셨던 예수님이나 제자들이나
우리 모두에게 결코 쉽지 않은 영적 사역입니다

따라서 기도하기가 어려운 시험에 처했을 때
기도를 물같이 쏟아서 할 수 있는
기도의 깊이에 들어가려면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의 꿈틀거림처럼
내 영이 내 육의 한계를 터지고 나오는
기도의 문턱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더라도
십자가를 앞에 놓으신 이 절대 절명의 순간에
정말 기도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주님의 영이 기도의 문턱을 넘어
아버지께 닿아지는 기도를 할 수 있기 위하여

무려 3번이나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시는
기도의 도전을 하십니다.

나도 기도의 줄이 잡히지 않고 힘들어서
기도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
거듭 거듭 거듭 세 번이나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시며 기도에 도전하신
예수님의 거룩한 도전 정신을 배우겠습니다.


2) 특별한 기도행위로 기도의 문 열기


예수님은 마음이 너무 심란하여
기도의 줄을 잡지 못할 만큼 기도가 어려웠을 때
행동하는 기도로 기도의 난관을 돌파 하셨습니다.

기도의 자리에 세 번이나 도전하신 것도 그렇고
마음에서 쏟아지는 기도가 어려우시니까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신 겸손의 표시로
얼굴을 땅바닥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감당할 수 없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기도했고
엘리야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기도했으며
예수님도 땅바닥에 얼굴을 대시고 기도하시므로

말로 하는 기도 이전에
행동으로 하는 기도가 있다는 것과
정말 기도가 힘들고 나오지 않을 때는
이런 행동하는 기도를 통해서라도
기도의 마음을 얻어야함을 배웁니다.
나도 기도가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수님과 선지자들이 사용했던
행동하는 기도의 한 모델을 따르고 싶습니다.

기도하기


3) 기도의 집중을 위한 단순한 기도 반복하기


기도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여러 내용을 기도하기보다
분명한 목적을 위하여 단순하게 한 가지 내용을 가지고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예수님의 기도에서 배웁니다.

한 가지 내용으로 거듭 거듭 반복기도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의 내용이나 분량보다
기도의 무게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6;39]

이 단순한 내용의 기도를 반복적으로 집중하셨을 때
마치 볼록렌즈가 태양빛을 천이나 종이의 한 점에 모아
강력한 스파크를 일으키고 불을 일으키는 것처럼

마침내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을 때
십자가를 앞에 놓고 심란했던 예수님의 마음에
아버지의 마음이 점화 되었고
아버지께서 부어주신 마음으로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실 힘을 얻으셨습니다.


4. 한 시간 기도할 수 있는 능력 키우기 [26;40]


예수님은 가장 외롭고 힘든 밤을 기도로 돌파하실 때
가장 측근의 세 제자를 데리고 나가셨으며
그들도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곧 닥칠 시험이 예수님에게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더욱 특별히는 베드로에게 있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락방 만찬 상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 그랬는지
피곤하고 졸린 눈을 이기지 못하고
잠을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하셨는데

여기서 말씀하신 “한 시간/ 1 Hour" 이야말로
우리가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로써 기도 시간인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의 하루 평균 기도시간이
보통 15분-30분이라고 하는데
정말 어려운 시험의 때에는 주님의 말씀대로
한 시간 만이라도 깨어 기도할 수 있다면
어떤 시험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하루에 일곱 시간 기도 한다”는 책을 쓴
박종훈 집사의 책을 읽어보니
평소 3시간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영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기도로 악한 영들과 싸우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는 간증 글을 보았는데

과연 주님의 말씀처럼 한 시간 기도에 깨어있음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마귀의 시험을 분별하고
깨어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때
베드로에게 주신 예수님의 안타까운 조언을 기억하면서
최소한 한 시간이라도 기도에 깨어있기를 배우겠습니다

묵상적용


5. 기도의 최종 목표로써 “ 아버지의 뜻”에 맞추기


겟세마네 기도동산에서 드리신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그 기도의 내용과 기도가 지향한 목적은 한 가지인데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 정신은
오늘 그의 제자로써 이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과 부딪혀
기도하며 살아야하는 우리[나]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모범 답안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제 그만 조상에게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수명 연장을 구했을 때
병이 고침 받고 15년을 더 살기는 했지만

이 수명이 연장된 기간에 태어난 “므낫세”라는 아들이
유다왕국 역사에 전무후무한 악한 왕이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맞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게 보이고
받아 드리기 어렵게 보여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기도와 결단에서 배웁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에 아버지의 뜻을 맞추어 달라기보다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맞출 수 있기를 소원 하셨고
마침내 기도할 수 없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기도의 도전 정신으로
거듭 거듭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시면서
마침내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에게 충만하게 부어지는 기도의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것도 없이
악한 원수들이 자기에게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오히려 원수들을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보라 !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주님 !
기도하셨기 때문에
닥쳐오는 위험을 두려워하기보다
아버지의 뜻을 이뤄드리는 기회로 삼아서
도리어 위험을 향하여 당당히 나아가신 모습을
나의 신앙과 삶에서도 언제나 배울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