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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열왕기상 *

▼ 열왕기상 17:1-16 하나님께서 차려 주시는 식탁

by 朴 海 東 2016. 2. 22.

하나님께서 차려 주시는 식탁

 

묵상내용

어제 오후와 밤사이에 적당히 내려준 비로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며 상추, 토마토가
싱싱하게 생기를 얻었습니다.
누렇게 떠가던 잎들이 파랗게 생기를 얻은 것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생기가 솟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비를 흠뻑 맞은 세 고랑의 밭에 비닐을 씌어서
이미 사다 놓은 고구마 순 50 개를 심으려고 합니다.
주님 !
주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의 밭에도
온갖 잡풀들이 제거되고
성령의 단비로 흠뻑 적셔져서 생기로 솟아오르며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들로 기쁨을 드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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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없으리다 [17:1]


개국 이래 반란에 반란을 거듭해온 북 왕국 이스라엘에
오므리 왕가가 들어서서 모든 반란을 평정시키고
아합의 통치에 들어가면서 탄탄대로가 열릴 것 같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철저한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아합의 궁전에
길르앗 디셉사람 엘리야를 보내 자연재앙을 선포하십니다.

아합은 자신이 다스리게 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자신보다 더 큰 위엄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없고
자신의 말보다 더 큰 권위의 말은 없는 줄 알았는데
뜻 밖에 등장한 선지자 엘리야로 인하여
폭주 기관차 같았던 그의 일방통행 식 통치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빨간 불의 제동이 걸립니다.

시돈왕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 들여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가
더 이상 소망이 없을 것 같은 이 나라에
그래도 왕과 맞설 수 있는 선지자가 등장하고
자연 재앙을 경고하는 그 자체로써
아직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의 나라가 된 이 나라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과
여전히 애증의 사랑앓이라도 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 앞에서
오늘 우리 시대 우리들의 교회와 세움 받은 종들은
이 나라의 통치자들이 잘못 나갈 때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처럼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 맡았고 전달하는 자들로서
나라의 통치자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선지자적 기상과 선지자적 사명을 가져야 함을
엘리야를 통해 배웁니다.

주님 !
오늘 이 시대에 세움 받은 우리들의 교회가
세상의 권세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선지자 엘리야의 기상과 용기로 나아가
주의 말씀으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되도록
선지자 적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소서


2. 하나님께서 차려 주시는 식탁 [17:2-15]

1) 까마귀를 통하여 [17:2-7]


아합의 궁전에 가서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자연재앙 심판을 선고한 엘리야를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맨 먼저 보내시는 곳은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흐르는 물을 마시게 하며
까마귀들이 아침과 저녁으로 공수하여 주는
떡과 고기를 먹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왜 하필이면 까마귀일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까마귀는 다른 조류들과 달리
얼마나 먹는 욕심이 강한지 자기 새끼들조차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며 자기 먹을 것만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조류로 유명한 새입니다.

그런데 그런 까마귀가 제 먹을 것 먹지 않고
선지자에게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며 안 되는 초자연적 역사로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이 받은바 사명을 다하도록
일용할 양식에 책임을 져주신 것을
엘리야 - 까마귀의 관계에서 넉넉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젊은 시절 다녔던 직장을 내려놓고
신학에 입문하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갈 때
내가 어떻게 그 비싼 수업료 마련하며
자식들을 키우고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이삿짐 트럭에 몸을 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 년의 세월이 흘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내가 먹고 살았으며
모든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움 받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니
정말 주님의 돌보아주시는 은혜가 아니었다면
도무지 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이 아침에 주신 말씀으로써
엘리야 -까마귀의 관계에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 !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리라는 약속을
내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에
주님은 신실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저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따라
신실한 말씀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묵상적용


2) 시돈 땅 사르밧 과부를 통하여 [17:8-15]


엘리야 자신이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기근이 시작되어 그릿 시냇물이 말라지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엘리야를 시돈 땅에 속한
“사르밧”의 한 과부의 집으로 보내십니다.

무슨 풍족한 양식이 있는 부잣집이 아니라
겨우 한 끼 먹고 죽어야 하는
가난한 집에 신세를 지게 만드시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그 과부에게 명하여
너에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는 말씀에서[17:9]
큰 감동을 느끼게 되며
예수님께서 자신이 자라나신 곳 나자렛 마을에 가서
자신을 배척하는 동네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년 육 개월 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눅4:25-26]


까마귀에서 선지자 엘리야를 돌보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은
이번에는 시돈 땅의 사렙다 과부와 선지자를 엮으시는데
먼저 사렙다 과부에게 말씀하시고
이어서 선지자에게 말씀 하셨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를 보게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가 되었을 때에
나의 상식적인 생각을 앞세워서
돈이 있을만한 부자나
풍족한 사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사렙다 과부에게 말씀 하신 것처럼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사람이 있음을 믿어야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감동하시고 알려 주시는 대로
그 사람을 찾아가 만나야 하는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앞서했던 의문으로써
왜 하필이면 까마귀인가 하는 의문처럼
왜 하필이면 사렙다 과부인가(?) 가
또 하나의 의문으로 마음에 닿아집니다.

열왕기의 저자는 여기서
이스라엘에 극심한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가중시킨
시돈 땅의 공주로써 아합에게 시집온 이세벨이라는 여자와

같은 시돈 땅의 한 가난한 과부로서
아합과 맞서는 엘리야를 보호하게 되는 이 여인을
하나의 영적 대결구도로써
여기에 밝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자라나신 곳 나자렛 마을에서
이 여인을 들먹이시며 하신 말씀 가운데는
이 여인이 바로 이렇게 될 만한
하나님께 향한 신앙[믿음]이 있었다는 것과
또 이렇게 쓰임 받을 은혜를 받았다고 하신 것인데

오늘 이 시대에도 시돈 땅 사렙다의 과부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있어서
자신의 삶은 매우 어렵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사역을 위해 함께 하도록
준비해 놓으신 손길이 있다는 것에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어제 내가 꼭 펴내야 할 신앙서적 출판을 위해
나에게 꼭 도움을 주어야할 관계이고
또 도움을 주실만한 넉넉한 분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그는 내가 내 마음에 담고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자신이 최근에 독일산 “아우디” 자동차를 샀다고
자랑은 하면서도 혹시 내가 무슨 도움을 청할까봐
내가 다른 말을 못하도록
미리 방어벽을 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주님께 물어보지 않고
괜히 나의 상식적인 생각으로만 전화한 것 같아
왠 종일 주님 앞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무거웠던 어제 하루가 지나고
이 아침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까마귀 - 엘리야 - 사렙다 과부의 관계를 묵상하면서
어제 무거웠던 마음이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사람이 따로 있으니
너도 엘리야처럼 이런 원리로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사람도 너도 모두,
나로 말미암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깨우쳐 주시는 말씀으로 확신을 갖게 됩니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까마귀 새끼의 먹을 것 하나까지도 챙겨주시는
사랑과 자비에 풍성하신 주님 !

오늘 이 시대의 천국일꾼으로 살아가면서
이 나라의 일꾼들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굳게 의지 하므로
세상의 물질 앞에 비굴해지지 않는
말씀 사역자의 자존을 지킬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