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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열왕기상 *

▼ 열왕기상 20:35-43 두 가지 포퍼먼스 행위계시가 던지는 교훈

by 朴 海 東 2016. 2. 22.

두 가지 포퍼먼스 행위계시가 던지는 교훈

열왕기상 20:35-43

묵상내용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이상한
포퍼먼스[행위계시 연출] 두 가지를 접하게 되며
여기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첫 번째 의문은
아합에게 보내어 심판 메세지를 전달하게 하는 선지자에게
그냥 보내서 메시지를 전달하면 될 터인데
왜 굳이 전달자의 얼굴이 상함을 입게 하시고
또 상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수건을 뒤집어쓰고 가게 해야 했는지 의문이고

두 번째 의문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지자가
그냥 가도 될 터 인데 굳이 자기의 친구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명령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치라고 하고 차마 치지 못하는 그 동료가
때리라고 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돌아가기는 길에 사자에게 물려서 죽게 된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연출하시며
지시하신 행동계시라는 점에서 이의가 없으며
다만 왜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1. 첫 번째 포퍼먼스[위장 연기]


첫 번째 의문으로써 심판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지자가
굳이 자신의 얼굴이 얻어맞고 상함을 입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 선지자와 아합 왕 사이에
서로 아는 사이라는 점에서 이유를 찾게 됩니다[20:41]

이 세상에서 사람을 면전에 두고 바른 말 쓴 소리를
가장 하기가 어려운 대상은
서로가 잘 아는 사이일 때 이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선지자를 시켜서 아합 왕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입장이고 보면
정말 이 선지자는 맨 얼굴로 아합 왕을 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선지자는 정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 드릴만한 영적 수준에 깨어 있었고
또 주신 메시지가 어떤 내용이든지
액면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참 선지자 였기에
하나님께서 이 무거운 책무를 그 선지자에게
맡기신 것으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따라서 이 선지자는 변장된 모습으로 왕을 기다리다가
마치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책망할 때 썼던 비사처럼
먼저 한 비유를 들어 아합 왕의 잘 못을 들쳐 내어
아합이 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자신의 잘못을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자인하게 한 다음에[20:40b]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야 하리라]


드디어 얼굴을 가렸던 수건을 벗고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20:42]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달하는데는
하나님 외에는 어느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2007, 한국교회부흥100주년 성회에서
주강사로 나섰던 고 옥한흠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이 많은 중에
가장 통렬하게 회개한 것은

교인들에게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하고
변질해서 전했거나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통렬하게 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교인들이 듣기를 좋아하든지 말든지
어떤 모양으로든지 심지어는 포퍼먼스를 통해서라도
가감없이 전해야 하는 것을
아합을 찾아간 선지자를 통해 마음 깊이 되새깁니다

묵상적용


2. 두 번째 포퍼먼스[연기]


두 번째 의문으로 제기되는 것은
이 선지자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은 후
자신과 아합 왕이 서로 알아볼 수 있는 관계여서
맨 낯으로 대면하기가 어려워서 얼굴에 상함을 입고
수건을 뒤집어 써야하는 과정에서
왜 굳이 같은 선지자의 무리 중에 있는 친구에게
자신을 때려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그 친구가 차마 친구지간에 때리지 못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했다고 하여 돌아가는 길에
사자에게 물려 죽게 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이 난해한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묵상하게 되면서
이 포퍼먼스[행위계시로 나타난 연기] 속에는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메시지를 바르게 받고 또 바르게 전달할 만한
선지자들이 거의 없어서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가기가 참 난처한 이 선지자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하시며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지도 못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할 수도 없는
당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종으로
이 사건을 일으키게 하셨다고 받아드리게 됩니다.

실제로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아합이 자신의 죄 값을 지고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가는
길르앗 라못 전쟁터로 올라갈 때에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그 때 여호사밧이 이 전쟁의 결과를 물어볼만한
선지자가 어디 있느냐 물었을 때
당시 400여명의 선지자가 소집 되었는데

그들 모두가 거짓 선지자들이어서 하늘에서 부린
거짓말 하는 영이 그들의 입에 있게 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2:6, 22:19-22]


3. 두 포퍼먼스에 대한 교훈과 적용


따라서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바
두 가지 포퍼먼스가 던져주는 정말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 앞에 바르고 정직한 진정한 말씀 사역자는
[사자에게 죽은 친구처럼] 자기와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또 [아합이 알아본 것처럼] 아무리 잘 아는 사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엄중함 때문에
이러한 모든 인정 선을 초월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을 집행할 수 있느냐로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진위를 구별하게 된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리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20:42]을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제쳐놓고 살려준
아합에게 심판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선지자의 무리 중에 발생된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한 경종이 된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엄중한 뜻을 제쳐놓고
자기 마음대로 처리한 아합 왕에 대한 심판 뿐 아니라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을 제쳐놓고
인간관계나 인정 선을 초월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명령/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자기 맘대로 저버리는 말씀 전달자들에 대한 심판을 통해

오늘 우리[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얼마나 두려워 떠는 자세로
이 말씀들을 받들어야 하는지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주님 !
주님의 말씀과 뜻을 제쳐놓고
자기 생각대로 해버린
아합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시고

또 주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인정 선을 초월하지 못해서
화를 자초한
선지자의 친구처럼
되지 않게 하옵소서

서로 아는 사이의 사람이라도
그것이 높은 지위의 사람이든
그것이 친구 사이의 사람이든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엄중함
그 이상을 넘어서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