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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열왕기하 *

▼ 열왕기하 2:15-25 저주가 치유와 축복이 되게 하소서

by 朴 海 東 2016. 2. 22.

저주가 치유와 축복이 되게 하소서

열왕기하 2:15-25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은 엘리야의 승천 이후에
여리고로 다시 돌아온 엘리사와
그의 선지 생도들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통해
승천에 대한 바른 교리적 교훈을 전해주며

더불어 엘리사가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면서
여리고 성의 저주를 축복으로 되돌려 놓은것과

또 우상숭배의 도시로 변질된 벧엘의 저주를 통해
그 당시 뿐 아니라 이 성경의 모든 독자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삶의 지표를 제시한다



1. 성도의 승천에 대한 바른 교리적 교훈[2:15-18]


엘리사가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를 작별하고
다시 여리고 성으로 돌아왔을 때
그 성의 선지 생도들은
엘리야의 승천을 믿지 못하고
혹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어 가시다가
어느 산에나 혹은 어느 계곡에
옮겨 놓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아합의 통치 시절에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가
엘리야에게 말했던 것같은 우려였다[왕상18:12]

선지 생도들이 엘리사가 부끄러워지도록까지
강청하면서 그를 찾아오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늘 엘리야 승천의 참 목격자인 엘리사의 말을
믿지 못한 불신앙에서 비롯된 헛된 생각이었고

그들은 삼일 동안 산과 계곡을 헤매며
헛고생만 하다가 돌아왔는데
열왕기 저자는 엘리사와 선지 생도들 사이에 있었던
이 일과 엘리사의 책망을 통해 성도의 승천에 대한
분명한 교리적 교훈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받아드린다.

구약이 보여주는 에녹이나 엘리야의 승천처럼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이 보여주는 것처럼
장차 있을 성도의 승천은
산채로 하늘로 올리우다가
로켓트 삼단 변신하듯이 영으로만 데려가고
몸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승천이 아니라

또한 산채로 하늘로 올리우다가
어느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산채로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는 승천인 것을
어리석었던 여리고 선지생도들의 헛된 생각과
헛된 수고를 통해 다시 한 번 정립하게 된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3:17]

기도하기


2. 그 성[여리고]의 저주가 축복이 되게 [2:19-21]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승천을 향해 나아갔던
길갈 - 벧엘 - 여리고 - 요단의 여정을
이번에는 거꾸로 되돌아오는 여정을 취하면서
여리고에서는 축복을
벧엘에서는 저주를 선포하고
거기서 길갈 [갈멜산]으로 나아갔으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수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듯이
당대의 수도이자 우상숭배의 도시인
사마리아를 향하여 나아간다.[2:24]

더불어 예수님의 공생애 첫 기적으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처럼 [요2장]

엘리사의 공생애 첫 기적으로써
물이 좋지않아 모든 토산을 떨어뜨리는
여리고 성의 물 근원을 찾아가
소금을 뿌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좋은 물로 바꿔놓은 기적을 이룬다.

여리고 성이 이렇게 좋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물이 좋지 않아서 이 물을 마시는 여인들에게
낙태의 위험을 주고
모든 토산을 떨어지게 한 것은
이미 여호수아 시절에 있었던 이 성에 대한
저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수6:26.왕상16:34]

미신적이 사람들은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
소금을 뿌리는 풍습이 있는데
사실 소금이란 것을 이런데 사용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소금은 좋은 것이라고 하셨는데[눅14:34]
모세 율법이나 레위기의 제사 예법에서[레2:13.민18:19]
소금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예수님이 가나의 한 촌락에서
마리아의 간곡한 청을 따라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처럼
엘리사는 성 사람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
그 성의 샘 근원으로 나아가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으로써 소금을 뿌리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선포하였는데
그것은 이 물이 고쳐졋다는 것과
다시는 이 물로 인한 죽음
곧 여인들이 태의 열매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이 성의 모든 토산이
다시는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축복을 선언한다.

한 마디로 여호수아 시대에 선포되었던
저주가 축복으로 전환되는 한 상징의 도시가 된다.

오늘 내가 사는 도시가 범죄의 소굴처럼 되어
영적으로 황페하여 지고
마귀의 영역에 내어준 것처럼 되며
아무런 생명과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버림받은 도시처럼 되어있다 하여도

그곳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고
하나님의 축복이 선포되면
저주라도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엘리사의 여리고 성 치유를 통해 배우게 된다.

오 주님 !
죄악으로 넘쳐나며
심판과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도시가
저주에서 치유와 축복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주옵소서.

묵상적용


3. 축복이 저주로 바뀐 도시가 주는 교훈[2:23-25]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상징인 소금을 뿌리며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함으로
여리고의 저주를 축복을 바꿔놓은 엘리사의 발걸음이

이제 다시 벧엘에 이르렀을 때 그 성의 아이들이 나와서
엘리사를 조롱하며 놀려되었는데 이는 그 성이
영적으로 얼마나 타락된 도시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이 조롱한 말을 보면 "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말이었는데
이는 엘리야가 하늘로 들림 받은 승천의 소문이
이 성에까지도 전달된 것으로 보이며

그 조롱하는 아이들은 엘리사 역시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 보라는 경멸적 조롱이 담긴 것으로
이는 엘리사 한 사람에 대한 인격모독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사역을 두려워하기 보다
무시하고 조롱하는 그 도시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며

이미 여로보암 시절에 금송아지 숭배 단이 세워진
이 도시가 얼마나 무섭게 타락된 도시가 되었는지
그 도시의 아이들을 통해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호와이 이름으로 조롱하는 아이들을 저주할 때
숲에서 나온 암곰 두 마리가 42명을 찢어 죽인 것은
비단 이 아이들 뿐 아니라 그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로써 구약 성경의 벧엘은
축복이 저주로 바뀐 도시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와 첫 제단을 쌓아던 곳이며
[창2:8] 야곱이 돌베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만났고
벧엘 언약의 유명한 축복을 남긴 그 도시가 [창35:15]
저주의 도시로 황페화되고 변질된 모습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영혼들에 대한
무서운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지금 세계에서 한 도시 안에 가장 많은 교회당
십자가 불을 밝히는 이 도시가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가지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이 도시가 하나님의 도시가 되고 성시화 되는 것은

오늘 이 도시에 있는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가
우리 후대와 자녀들에게 어떻게 신앙을 전수하며
어떻게 빛을 밝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 아침 마음 깊은 각성과 교훈으로 받아 드리게 된다.

주님 !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땅, 이 도시와 우리들의 자녀들이
하나님 경외함을 잘 배워서
축복이 저주로 바뀐 벧엘처럼 되지 않게 하시고
저주가 축복으로 바뀐 여리고 처럼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