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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열왕기하 *

▼ 열왕기하 10:12-27 중단 없는 개혁을 위하여

by 朴 海 東 2016. 2. 22.

중단 없는 개혁을 위하여

열왕기하 10:12-27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 전체적으로 정리하기]

1. 중단 없는 개혁을 위하여

달리는 말에 채찍이라고 거의 100년 만에 나온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가 예후는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선지자들의 외침으로도
이뤄내지 못한 개혁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에 들려준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아합 왕가의 여름 별장이 있었던
이스르엘 궁에서 시작된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철저한 개혁을 추진해 나가는 중
오늘의 말씀에서는
수도 사마리아로 나가는 여정에서 이뤄낸 일과
마침내 사마리아에 도착하여
바알의 잔당을 싹쓸이하듯 멸절 시키는 것을 보여준다.

1) 이스르엘에서 사마리아로 가는 여정에서

(1) 반역의 싹 자르기

일단 혁명이 일어나면 그동안 권력에 붙어서
기득권 세력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사람들이
척결 1순위가 되는데
한 번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면
이런 사람들은 도망가거나 혹은 잠적해버림으로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척결하려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고
또 많은 시간도 소요되는 법인데

오늘의 말씀에서 예후는 사마리아로 가는 여정에서
태후 이세벨이 이미 죽은 것도 모르고
사돈 집안의 어른 이세벨에게 문우를 드리러 가는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조카들:대하 22:8]
40명을 한 번에 한 웅덩이에서 쓸어버림으로
훗날 나타날 수 있는 위협의 싹까지 잘라버린다.

(2) 개혁의 동맹군 얻기

대개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이 일으킨 혁명이나 개혁이
여론의 비판을 받지 않고
도리어 여론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신문사나 방송국을 장악하는 일이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공을 들여서 하는 것은
자신들이 일으킨 혁명의 정당성을 보장받기 위해서
나라의 덕망 있는 사람들을 영입하는 법인데

이런 의미에서 혁명가이며 종교개혁가인 예후가
이스라엘 100년 가까운 역사에 그 누구라도
상상도 못한 종교개혁을 시도하면서
민심의 향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레갑 집안의
여호나답을 만난 것은 정말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그의 아들 호밥은
사막 길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눈이 되어 주었고[민 10:31]
후에 그 후손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살며
여호와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조상 레갑이 전해준
다섯 가지 규례를 따라 살아가므로 [렘35장]
이스라엘 중에 존경받는 가문이 되었는데

이런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인 것은 그만큼 예후의 입지를
확고하게 하고 개혁의 성공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이스르엘에서 수도 사마리아로 올라가는 길에
후일에 있을지도 모르는 아합 왕가 반역의 싹들을
미리 잘라버리게 된 것과
또 개혁의 응원군으로
여호나답과 레갑의 자손들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아니면 될 수 없는 일 이었다.

2) 개혁의 완성을 추진한 사마리아에서

한 번 개혁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 예후의 칼날은
아합 집안을 진멸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너무 오버해 나간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심지어는
아합 집안과 친밀 관계를 유지한 모든 사람들과
더 나가서 제사장들까지 죽였는데 [10:11]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 사마리아에서의 개혁은
바알 숭배자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만드는
계책을 써서 진멸시킴으로 개혁의 완성을 도모하고
한 걸음 더 나가 그동안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상징적 칠천 인들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11:18-27]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고발하기 위하여
호렙산을 찾아온 엘리야에게 [왕상 19장]
이스라엘의 장래 역사 구도를 말씀하시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예후라는 인물을 언급하시고 [왕상19:16]
또 그에게 권력의 힘을 주셨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 회복을 위해
엘리야의 예언을 따라서 개혁의 햇 불을 쳐들고
개혁을 추진해나갔을 때 만사가 잘되는 중에
더욱 잘되게 하셨는지도 잘 이해하게 된다.

모든 만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손을 빌려서 하시되
하나님 앞에 준비된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

엘리야나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도 이뤄내지 못한
이스라엘 여호와 신앙 회복을 위한 개혁을
예후를 통해서 이뤄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 앞에 잘 준비된 한 평신도는
구조적 비리로 가득한 이 어두운 사회 악 속에서
오히려 성직자들보다
더 크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한 사람 예후를 통해서 엿보게 된다.

물론 예수님 이후 우리 시대는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들이어서 [벧전2:9]
더 이상은 성속의 구별이 없고
성직자/평신도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교회 울타리 안에 행동반경이 정해지는
목회자들보다 이 어두운 사회 구석구석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에게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기회는 더 크게 열려있어서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 사람 예후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한 낱 아합 왕가의 따까리 신하에 불과했던 예후가
엘리야를 통해 언급되고
엘리사를 통해 사명이 주어졌을 때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우상숭배 죄악으로 점철된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큰일을 성취한 것을 보여주는 오늘의 말씀은

오늘도 이 어두운 죄악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제2 제3의 예후 같은 인물들이 나와야 한다고
도전해 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드린다.

주님 !
바알 숭배보다 더 무서운
맘몬 숭배로 어두워진 우리 사회에서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바알과 바알 숭배자들을 발아래 밟고 섰던
예후의 신앙과 용맹을 따를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