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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 열왕기하 *

▼ 열왕기하 10:28-36 내 안의 금송아지를 넘어서기 위하여

by 朴 海 東 2016. 2. 22.

내 안의 금송아지를 넘어서기 위하여

열왕기하 10:28-36

묵상내용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나뉘어진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세워좋은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 우상은 그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바알과 아세라 등과 같은 우상들까지 새끼치고 들어오게 만든 원조 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금송아지 우상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오늘의 말씀은 이스라엘 100년 가까운 역사에 처음으로나온 우상의 척결자 예후 조차도 이 우상 만큼은 척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고 하는 아쉬운 이야기로 오늘의 말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로보암이 끌어들인 죄 곧 벧엘과 단에 세워졌던 금송아지 숭배 죄악이 왜 그렇게도 끈질기게 없어지지 아니하고 남겨지는 죄악이 되었을까요 (?)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10지파를 떼어가 건설하게되는 북왕국의 시초를 들여다보면 이 죄의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그 때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처럼 북 왕국 이스라엘을 세우게 되는데 이 왕국의 기초를 놓으면서 그의 마음에 가장 큰 근심으로 파고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새로운 왕국이 건설된 이후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전통 절기와 제사를 드리기 위해 남 왕국 유다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왕래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이 점차 남 왕국 유다 쪽으로 기울어지고 자신의 왕국이 약해지고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우려였습니다.

이러한 근심과 우려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방법으로써 그가 고안해 낸 것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이것이 북 왕국 이스라엘이 건설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이라고 내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야심[탐심]이 담겨있는 이 금송아지 우상이 던져주는 유혹은 얼마나 큰 미끼가 되었는지 종교 개혁가로 등장하여 새 나라를 건설하게 되는 예후조차도 피해가지 못하는 유혹으로 남겨졌고 그는 결국 이 우상만큼은 그대로 남겨두게 되는데 결국 예후의 개혁도 하다만 절반의 개혁으로 끝나버린 셈이 된 것입니다.

묵상적용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개혁의 완성을 이룰 것 같았던 예후의 개혁이 절반의 성공으로 남겨지는 아쉬운 모습을 이 아침 묵상하면서 예후가 마지막까지 척결하지 못했던 이 금송아지는 오늘 우리[나]에게는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 100년 사에 한 번 나온 개혁가 예후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 마음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이 금송아지 이야기를 통해 열왕기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 금송아지의 정체는 오늘 나에게 무엇인지 지난 온 나의 신앙과 삶 속에서 돌이켜 볼 때에 이 금송아지는 곧 내가 주님 앞에 부름 받아 갈 때까지는 결코 떠나지 않으며 끝없는 유혹의 미끼로 내 안에 남겨질 “ 탐심”의 죄악이라고 결론짓게 됩니다.

주님의 충성스런 종 바울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예수님이 곧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야라는 것을 깨닫고 눈이 뒤집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천지개벽적인 변화를 체험하였어도 그 자신 역시 끝까지 버릴 수 없었던 것, 아니 버릴 수 없었다 기 보다 그 마음에서 지우고 싶었지만 지워지지 못하는 한 가지 죄악을 고민하며 이야기 하였는데 그것은 로마서 8장의 환희로 나가기 전, 그의 마음에 지옥의 계곡을 경험하게 한 로마서 7장의 고민으로써 “탐심”의 문제 였습니다.

이것은 북 왕국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여로보암에게 있었던 금송아지로 표현된 탐심이었고
이것은 종교 개혁가 “예후” 조차도 비켜갈 수 없었던 금송아지 곧 “탐심”이라는 우상 이었으며 이것은 오늘 우리 손에 들려진 신약성경의 삼분의 일을 쓰게 되는 사도 바울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문제라고 실토한 “탐심” 이라는 금송아지로서 [롬7:7-24]
바울은 모든 죄악의 근저에 끝까지 버티고 남아 있는 탐심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골3:5]


내 마음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은 탐심이라는 금송아지를 없애려고 하기보다 내가 이 땅에서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없어질 수 없는 이 놈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죽어 없어지는 방법으로 나의 탐심이라는 금송아지를 넘어서는 것인데 바울은 이 것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에서 찾았으며 오늘 이 죄악의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우리[나]에게도 이 방법을 따라오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3:1-4]


주님 !

내 마음에서 지어버리고 싶으나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금송아지,
탐심이라는 우상 때문에
끝도 없이 알을 까고 나오는
탐욕의 죄악들이 나를 괴롭게 합니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여로보암도
이스라엘 백년사에 등장한 개혁가 예후도
결코 넘어서지 못했던 이 금송아지
탐심의 우상을 넘어서는 방법으로써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지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았던
바울의 비결을 저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고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쳐준
바꾸어진 생명에서
내 삶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가지며
나의 전 인생을 걸고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