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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에스겔

▼ 에스겔 1:15-28 쌍무지개 뜨는 언덕에서 만나는 예수님

by 朴 海 東 2016. 2. 23.

쌍무지개 뜨는 언덕에서 만나는 예수님

에스겔 1:15-28

묵상내용

앞선 문맥[어제 말씀]에서는 네 생물에 옹위되어
바벨론의 포로민 정착촌 그발 강가에 살고 있는
제사장 에스겔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묵상하였는데

오늘의 말씀에서는 네 생물의 환상에 이어
네 바퀴[Wheel]에 대한 환상과[1:15-21]
궁창의 환상 [1:22 - 25] 그리고
보좌의 환상 [1:26-28]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미 네 생물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해하기를
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수호하는 천사
스랍/그룹들로 이해하였거니와[10:1,4 :사6:1-3]

이들의 얼굴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것들로서
사람/사자/소/독수리 형상으로 나타낸 것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 세상 어느 한 곳이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절대 통치 주권을 의미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1. 바퀴[Wheel] 환상 [1:15-21]


따라서 네 생물의 등장에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은
네 바퀴[Wheel]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네 생물과 함께 움직여지는 이 바퀴는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의 모든 통치 주권을 가지고
그의 부리시는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 세상의 모든 역사의 수례바퀴를 돌리시며
바퀴 안에 바퀴가 있다고 한 것은
이 바퀴가 사방으로 움직여 질 수 있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온 땅에 미침을 의미한다.

오늘의 말씀이 바퀴 환상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바퀴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쉽게 되어 지지 않는데
영어 단어에서 바퀴를 의미하는
“Wheel"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보다 더 쉬어진다.

젊은 시절 바다에 나가 배를 타고 다닐 때
나는 배를 조정하는 Bridge[조타실]에서
바로 이 바퀴[Wheel]를 잡아본 적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배의 모든 장비들이 현대화 되어
조타실에서 배의 방향을 조정시키는
이 바퀴[Wheel]가 작게 만들어져 있지만

가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전 범선시대에 사용했던 바퀴[Wheel]들은
사람의 상체만큼 크게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는 이 바퀴들은
그 둘레가 무서울 정도로 높은 것을 보여준다[1:18]

한 마디로 이 바퀴[Wheel]의 기능이란 것은
거대한 선체를 Wheel로 조정하듯이
하나님의 감찰과 섭리 아래서 조정되고 진행되는
세상의 역사 또는 인생의 전체 과정들을
상징하다고 이해하게 된다. [약3:6]

더불어서 이 바퀴에는 눈이 가득하다고 했는데[1:18]
이는 하나님의 눈 빛 앞에서 감추어 질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슥3:9. 4:10.계4:6]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신다[대하16:9]는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2. 궁창 환상 [1:22-25]


에스겔이 바라보는 환상은 이제 한 단계 더 Upgrade 되어
네 생물들의 머리 위 궁창을 바라보게 된다.

궁창 [Vault]이란 넓게 퍼진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하나님의 천지창조에서 둘째 날에 이 궁창을 창조하셨다
거기 쓰여 있는 기록을 보면
지상의 물과 하늘 위의 물을 궁창이 나누고 있다[창1:6-8]

에스겔은 생물들의 머리위에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을 보고
심히 두려웠다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거룩한 처소이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있는데
생물들이 두 날개로 몸을 가리고 있다고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수호하는 천사들이라 하더라도
그 거룩하심을 감히 감당할 수 없어서 [사6:1-3]
쳐다보지 않으려고 날개로 온 몸을 가린다는 것인다

그런데 바퀴들이 생물들의 움직임에 따라서만
움직여지는 것처럼 [1:29-21]
생물들은 오직 궁창 위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서만 행동하게 되는데

그들이 행할 때 그 날개의 소리가
많은 물소리와 같고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군대의 소리와도 같다고 한 것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주관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의 위엄이 가득 찬 음성의 반향으로 보인다.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후일에 밧모 섬에서
이 세상의 역사에 나타나는 일들을 계시로 받기 위해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에스겔과 동일한 경험으로써
많은 물소리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계1:15]

기도하기


3.보좌의 환상 [1:26-28]


바벨론 땅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이 본 네 번째 환상은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형상이다.
에스겔은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있는데
보좌의 형상은 수정과 같고 [1:22] 남보석 같은데[1:26]
중요한 것은 이 보좌에 앉아계신 이의 형상이
사람의 형상 같은데 [1:26]
불과 같고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 위에 있는 무지개와 같다고 했으니[1:28]

이러한 보좌의 형상 위에 계신
사람의 모양을 가진 하나님은
곧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것은 후에 다니엘이 본 환상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단7:9, 13]

여기서 특별히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에
비 오는 날 구름위에 무지개가 언급되고 있는 것은
홍수 심판 후에 노아와 맺은 언약처럼[창9:8-17]

우리 인간의 한계와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며
구원의 언약을 맺으시고 이 언약을 따라서
장차 인간의 구원자로서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사람의 아들로 오실
인자[人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에스겔은 이 영광스런 보좌 앞에 압도도어 엎드렸다
그리고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듣게 되는데
이제 이후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유다 뿐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와 열방들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긍극적 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요 백성인 이스라엘을 중심한
“하나님의 세계 경영”의 통치 방식이
인간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지 말씀하시게 되는데

1)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 예언 [4-24장]
2) 이방 나라들에 대한 예언 [25-32장]

3) 유다의 회복에 대한 예언 [33-39장]
4) 예루살렘에 다시 세워지는 새 성전을
---비전 가운데 바라보는 환상이다[40-48장]

묵상적용

신비한 환상과 상징적 계시들
그리고 영적 세계의 일들로 가득 차 있는
에스겔서를 그냥 묵상하기에는
마치 단단한 음식을 그냥 먹는 것 같고
굽지 않은 고기를 그냥 날걸로 먹는 것 같아서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난해한 책이며
닫혀 진 책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묵상에 들어가기 전에
본문 이해를 충분히 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묵상보다는 본문 주석에 가까운
묵상 글을 쓰게 되는데 그렇다 할지라도
에스겔 묵상을 통하여 지금까지 나에게
닫혀 진 책으로 존재해왔던 에스겔의 말씀을
보다 더 잘 이해하며 친숙하게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어제 묵상의 소재로 주어진 네 생물의 환상에 이어서
오늘 주어진 에스겔이 바라본 세 개의 환상 가운데
정말 가슴 깊게 닿아지는 말씀이 있다면

바퀴 환상과 궁창의 환상 그리고 보좌의 환상이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서 인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 주권이 인간 세상 저편에서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수행하는
네 생물로 상징된 그룹, 천사들과
네 생물에 의해 움직여지는
세상과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로써
바퀴[Wheel]에 관한 이야기와

더욱 특별히 궁창 위 하늘에서
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이 놀랍고도 장엄한 오늘의 말씀 앞에서

이 놀라운 계시의 말씀을 바벨론 땅 그발 강가
포로민 정착촌 에스겔에게 찾아 와 보여주심으로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까지
이 놀라운 신비에 속한 이야기들을 알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며
그 아들 안에서 우리를 자녀 삼으신
우리들의 하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찬양 드리게 된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강렬하게 남겨지는
한 단어는 보좌에 계신 인자 같으신 이의 형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 무지개 ”인데
이 무지개가 비 오는 날의 구름에 있는
“무지개”라고 하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아직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궁창 위에 수정 같고 남보석 같은 영광스런 보좌 위에서
사람과 같은 형체를 가지시고
불같은 사방의 광채에 둘러싸여 계셨던 영광의 주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우리[나]에게 오셔서
비 오는 날 구름 위에 무지개처럼
나에게 언약의 쌍무지개가 되어주시고
소망의 주님의 되어주신 것이다.

무지개는 그냥 마른하늘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폭풍우 비바람이 지나가고 떠오르는 것처럼
주님은 죄와 어둠 가운데 지내며
마귀의 종이 되어 어둠의 시간 속에 묶여있는 나에게
밤의 시간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처럼
보잘 것 없는 나의 인생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광명의 시간으로 이끌어주셨다

이것은 마치 에스겔이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와
홍수의 언덕으로 불러지는 그발 강가 “텔아빕”에서
홍수로 무너진 곳을 개간하도록 노역에 내몰리며
희망을 잃고 살아갈 때 어느 날 뜻밖에
네 생물의 호위를 받으시며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다시금 낙심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살도록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세계 경영의 비젼을 보여주시며
자신의 영광을 무지개의 형상으로 보여주신 것과 같다.

주님 !
포로 된 땅에 끌려와서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세계경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주시며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무지개로 나타내 주신 것을
오늘 동일하게 나의 위로와 나의 희망으로 붙들게 됩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풍조는 나날이 갈리 우고
세상은 소망이 없게 보이는 것 같아도
이 모든 것 위에서 주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며
나에게 무지개 언약 되시는 주님을 꼭 붙잡고 나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