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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에스겔

▼ 에스겔 3:1-15 말씀 사역자를 강하게 무장하는 삼중 장치

by 朴 海 東 2016. 2. 23.

말씀 사역자를 강하게 무장하는 삼중 장치

 에스겔 3:1-15

묵상내용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어떤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아
사명자의 길에 선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에스겔은 바벨론 그발 강가
홍수의 언덕으로 알려진 텔아빕에서
홍수로 무너지고 페허가 된 곳을 개간하도록
인질로 잡혀와 노역에 내물린 이스라엘 포로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 아직 포로로 잡혀오지 않고
본토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데
에스겔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시다.

그래서 어제 말씀에 이어서 오늘의 말씀에서도
다시 한 번 그가 무엇을 어떻게 어떤 자세로
전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는 거듭 거듭 말씀하고 계신다.

신기한 것은 대부분 하나님이 사람들이 소명을 받게 될 때
모세/기드온/이사야/예레미야/아모스 등의 선지자들에게서
보게 되는 것처럼 제발 나를 보내지 말아달라고
간청하며 할 수만 있으면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에스겔의 경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아무런 변명이나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에스겔에게 세 가지로 무장시켜 주신다.

1. 이 두루마리를 받아서 먹으라. [3:1-3]


그의 이름 에스겔[예헤제켈]이 가진 의미가
하나님이 나를 강하게 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이름 그대로 그를 굳세고 강하게 하시기 위해
가장 먼저 두루마리[말씀]을 먹고 창자에 채우게 하신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이것은 단순히 지식으로만 깨닫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은유적 표현에 대해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영적 독서”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는 개가 자신이 좋아하는 뼈다귀에 푹 빠지듯이
깊은 묵상을 통해 성경말씀을 완전 소화시켜서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에스겔이 하나님이 주신 두루마리[말씀]을 받아먹었을 때
그것이 입에서 달기가 꿀 같았다고 했는데 [3:3]
비록 그가 받은 말씀이 심판에 따른
애곡/애가/재앙의 말들로 가득 차 이었지만[2:9]
이 말씀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꿀같이 단 것이 될 수 있었다.
[시19:10 119:103,렘15:16, 계10:9-11]

하지만 이제 그의 입에서 꿀 같았던 이 말씀을
패역한 백성들에게 전하는 순간 그것은
쓰디쓴 맛으로 변하게 될 것이었다.

주님 !
사람이 자신이 먹은 식물을 힘을 의지하여
어떤 수고로운 일들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내가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양식을
충분히 먹고 꿀같이 단 말씀이 주는 힘으로
어떤 쓰디쓴 일들이라도 감당할 수 있게 하소서

기도하기


2.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리라[3:4-9]


네가 말씀사역으로 상대할 사람들은 완고한 사람들이니
네가 그들을 얼굴과 얼굴로 마주볼 수 있도록
너의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리라.

사람들을 상대할 때 부드러운 눈길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음은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 (?)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는
에스겔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받아 드릴 자들이 아니라
거절하고 조소하며 도리어 하나님을 대항할 자들인데

이러한 현상은 이미 본토에서 예언사역하고 있는
에례미야 에게도 나타나서 그는 말씀을 전할 때
거짓 예언자로 정죄를 받으며
침 뱉음과 수염 뽑힘을 당하고
심지어는 몇 차례나 구덩이에 던져지기도 하였다.

이제 에스겔 역시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수욕을 각오해야만 했다.

하나님께 패역하고 배반하여
마치 가시와 찔레의 숲으로 들어가며
전갈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가서 살게 되는 것처럼
정말 할 수 만 있으면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향하여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그들 이상으로 강하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 그의 이마를 그들보다 굳게 하시고
화석보다 강한 금강석 같이 만들어 주시며
그들의 뻔뻔한 얼굴을 상대할 수 있도록 그의 얼굴에도
철판을 깔고 말씀을 전할 수 있게 강하게 무장시켜서
이제 패역한 자기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보내신다.

주님 !
에례미야 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는 주의 백성들을 향해
눈물의 선지자로 보내셨는데
에스겔에게는 화석보다 강한 금강석 이마를 가지고
그들에게 나아가 받아먹은 말씀을 토하게 하셨나이다.

주님 !
오늘 나에게는 이 시대에 어떤 유형의 종으로
주의 말씀을 위하여 사용해 주시렵니까(?)
에례미야에게 있었던 눈물과
에스겔에게 있었던 금강석보다 강한 이마를 가지고
패역한 이 시대를 향하여
담대히 나갈 수 있는 말씀의 종이 될 수 있게 하소서

묵상적용


3. 근심하고 분한 마음에 임한 여호와의 권능[3:14]


에스겔에게 재차 삼차 소명의 다짐을 주신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첫 번째 말씀 사역의 장소로 이끌어 가신 곳은
바벨론 그발 강가 홍수의 언덕으로 불려지는
텔아빕 이었다 [3:15]

텔아빕 이라는 지명이 가진 이름의 뜻은
홍수의 언덕이라는 곳인데
이곳에는 본래 바벨론이 전략적인 농업 개간지역으로
관계수로를 이용한 거대한 농토가 있었던 곳이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범람으로
이 강들의 한 지류천이 되는 이곳에 홍수가 나서
크게 황패하게 되었음으로
잡아온 유다인 포로민들을 이곳에 정착시켜서
이곳을 다시 개간하도록 노역에 내몬 것 같은데
이제 에스겔은 이 포로민 정착촌에서
그가 감당해야 할 말씀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실 때
에스겔의 마음이 근심하고 분하게 되었다고 했는데[3:14]
여기서 근심하고 분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그도 하나님의 가슴과 눈빛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바라보게 된 것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회개보다 패역과 반역으로
홍수의 언덕 텔아빕이 가진 이름보다 더욱 황패해진
그들 영혼에 대한 근심과 그들의 죄악 된 모습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그의 마음에서 끓어오른 것으로 이해된다.

근심과 거룩한 분노 이 두 가지 요소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나서는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할 자세인 것을 에스겔에게서 배운다.
이 근심과 거룩한 분노의 감정도 없이
어찌 죄와 패역에 찌들어져 완악하게 된 사람들을
감히 상대나 해볼 수 있겠는가.......(?)

주님 !

가시와 찔레의 숲속으로 들여보내며
전갈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들여보내는 것처럼
에스겔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보내실 때에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토하며 쏟아낼 말씀을 위하여
두루마기 말씀을 먹게 하셨고

그들의 완고한 이마보다 더 강한 이마가 되도록
화석보다 강한 금강석 이마를 갖게 하셨으며

근심하고 분한 마음 가운데 주의 권능이 임하여
첫 번째 사역지인 텔아빕으로 이끄셨습니다.

사명을 주실 뿐 아니라 그 사명을 수행해 낼만한
강한 무장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의 돌보심이

오늘 패역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도 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향해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갈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