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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창세기

▼ 창세기 20:1-18 잘 못하고서도 받는 신비한 은혜 이해하기

by 朴 海 東 2016. 3. 24.

잘 못하고서도 받는 신비한 은혜 이해하기

창세기 20:1-18

묵상내용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정말 절세의 미인이었나보다
이미 폐경이 되어 여성 호르몬의 분비도 말라 피부도 탄력을 잃었을 것이고
여성적인 매력이라고는 도무지 없을 것같은 90세 노령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랄왕 아비멜렉이 그녀를 탐내어 사람을 보내 그녀를 데려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래도 그것이 사실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라의 미모가 대단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보다 더 마음에 닿아지는 묵상의 소재는 "사라"에게서보다
아브라함의 신앙여정에서 반복해서 보여지는 부끄러운 실수와 죄악에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그 가정이 보호되고
아브라함의 위상을 높여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다

1. 아브라함과 그의 하나님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랄 왕 아비멜렉에 취함을 당한 그 밤
아브라함보다 더 당황하고 급하게 되신 분은 하나님 이셨다
왜냐하면 이미 사라의 몸에서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해주셨고[창18장]
그 실현이 일 년 이내의 가시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사라가 그랄 왕의 첩이 되어버린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겠는가 ...(?)

그리고 아브라함이 75세에 가나안 땅으로 부름을 받아 들어와서
이제 거의 100세의 나이에 접근하여 25년을 지내는 동안 수 없이 주셨던
언약들과 또 그 언약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이루실 일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그냥 그대로 물거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이제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가정은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와 운명도 함께 얽혀져있는 특수관계의 인생이며 가정이 되었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그랄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거짓말을 하고 아내을 빼앗긴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그의 죄대로 벌을 주신다거나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입장이 되셔서 우선적으로 일하시며
도리어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꿈에서까지 찾아가 위협하시며
사건의 전말과 자초지종을 설명해서라도 다시 사라를 돌려보내게 만드심을 본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사건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언약/약속에 대하여서만큼은
우리[나]의 약점과 실수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성취하여 나가시는 분임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시는 것으로 받아 들이게된다.

더불어 아브라함과의 관계에서 보여주신 이 모습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맺어주신 새 언약의 구원과 축복이
나의 약함이나 실수 죄악 때문에라도
결코 철회 되거나 포기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고 말것이라는 확신을 안겨준다.

2. 아브라함의 반복된 죄와 실수에서 배우는 것 [교훈]

오늘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부름을 받은 75세로부터 시작해서
100세에 아들 이삭의 수태고지를 전달받은[18장] 이후에 나타난 사건인 것을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적어도 25년 이상을 지난 싯점에서 경험하게 되는 사건이다

어떻게 보면 25년 전 처음 부름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저질렀던 죄를[창12장]
25년 후 다시 반복하게 되는 셈인데 그렇다면 그동안 아브라함에겐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나 신앙의 성장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말인가 ....?

왜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고 관계를 맺은 25년이 지난 싯점에서 또 다시
반복해서 짓고 있는 이런 죄에 대해 들쳐내심으로 부끄럽게 만드시는 것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깨서는 여전히 아브라함에 대한 보호와 신뢰를 끊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는가 하는 점인데 이 모든 것들이
" 성화적 성장과 견인" 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 이해가 되어지는 것같다.

우리의 신앙 여정이라는 것이 마치 아브라함이 경험하는 것처럼
주님과 깊은 교제와 사귐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싯점에서는 아브라함에게서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실수와 실패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들도 있는데

그러나 이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이 견고한 때나 약해졌을 때나
동일하게 이끌어가신 것처럼 오늘 우리[나]의 신앙과 삶에도
동일하게 개입하시고 동일하게 이끌어가시는
성화적 성장과 견인의 은총으로 함께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찌보면 아브라함보다 더 많았던
실수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인 것을 감사 드리며
때로 나의 실수와 죄악들이 보여지는 부끄러운 싯점에서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라고 있으며 성화의 과정에 있음을 확신케된다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자신의 실수와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정을 보호하시기 위해 일사천리로 나셔서 일하심을 보면서
그는 심히 부끄러웠지만 또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회복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결코 인과응보적 원리로만 풀리지 않는 기이한 일들과
하나님을 경험하게 만드시는 신비한 관계가 나에게도 있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겠다

기도하기

주님께 잘 했을 때보다
주님께 잘 못하고서도
주님의 부요하신 은총을 체험하게되는
신비한 신앙의 관계를 내가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나의 작은 소견으로 제한하지 않는 주님의 크심을 누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