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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창세기

▼ 창세기 23:1-20 후대를 위한 신앙의 증표 남기기

by 朴 海 東 2016. 3. 24.

후대를 위한 신앙의 증표 남기기

창세기 23:1-20

묵상내용

어제 구정 설 명절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이 묻힌
선영[先塋]을 찾는 것을 보았다.
무덤 앞에 절을 한들 죽은 조상이 찾아와서 절을 받는 것도 아닐텐데...
그리고 그 앞에 음식을 차리고 술을 부어 드린들 와서 잡수는 것도 아닌데...

왜 이것이 우리 민족의 한 제례문화가 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서
오히려 그것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것보다는 살아있는 자손들을 위해
선영[先塋]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그것들은 망자를 위한 것보다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 기능하는 것같다
원근각처에 흩어져 사는 자손들이라도 조상들의 삶의 흔적과 문화가 베어있는
조상들의 땅을 기억하고 그곳에 모여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남은 자들에게 선영의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이 헷 사람 원주민들이 사는 땅 막벨라 굴을
굳이 돈을 주고 사서 사라의 매장지로 삼아 선영을 조성한 것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게 만드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있는 믿음의 행동으로 보여진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들어와 살게 된 가나안 땅에서
사라와 함께 보낸 반평생은 나그네요 거류자로서의 삶이었다[23:4]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그 땅이 적어도 400년이 흐른 뒤에는
자신의 후손들이 차지하게 될 언약의 땅이 될 것을 믿었고 [창15:7-21]
지금 사라의 죽음을 계기로 언약의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자손대대로 이 땅에 대한 언약을 기억하게하는 장치로써 선영을 조성한 것은
그대로 적중하여 후손들의 마음이 항상 이 언약의 땅에 대한 기대와 기다림으로
살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믿음과 기대는
특히 애굽에 내려가서 생을 마감하게되는 야곱에게서 빛을 발했다

---- 내가 내 열조에게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 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 거기 장사 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창49:29-33]

--------[ 적 용 ]-------

1. 자손들을 위해 신앙의 증표 남기기

자손들에게 아름다운 신앙을 전수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신앙의 전통을 유업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한 것같다

요즘처럼 무덤을 쓰지 않고 화장을 하거나 수목장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는
이 시대에 굳이 선영을 만들만한 여건이 아니라면
무덤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라도 대대로 이어지는 자손들에게
나 자신이 믿음의 조상으로써 남겨지는 것 뿐 아니라

후손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서 이탈하지 않고
신앙의 가문을 이어가게하는 어떤 증표를 남기고 가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이 남기는 믿음의 행위에서 배운다.

나의 아내는 이미 ****를 준비해 놓았는데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더 깊이 생각해보고 나의 믿음과 기대를 담은 무언가를 남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

2. 자식의 자식을 보는 은혜 구하기

아브라함보다 먼저 부름 받아 간 사라의 죽음을 보면서 한 가지 애석함이 남는다
그것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이삭의 결혼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가는 아픔이다

아들의 결혼과 며느리까지 보고 거기다가 손주까지 보고 갈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사라가 하나님께 허락받은 수명의 한계를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며느리 손주까지 보는 것은 허락지 않았을까... 의하하게 생각된다

사라가 노년에 얻은 이삭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만일 며느리를 보게되면
고부간 갈등이 생길 것이고
분명 가정불화가 될 것이기 때문에 미리 데려가신 것일까...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의 결혼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사라의 죽음을 보면서
한 가지 기도 제목이 마음에 생긴다.
그것은 내가 적어도 내 자식의 결혼은 보고 부름받게 해달라는 기도이며
거기에 더욱 은혜에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자식의 자식들인 손주들까지 보고 갈 수 있는 은혜를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기도하기

자손들에게 신앙의 유업으로써 아름다운 믿음의 증표를 남기게 하소서
그리고 굳이 한 가지 은혜를 더 구한다면
자식의 자식까지 보고 갈 수 있는 은헤를 더하여 주옵소서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