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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창세기

▼ 창세기 38:12-23 시아비 잡아먹고 담보물 붙잡은 다말의 교훈

by 朴 海 東 2016. 3. 24.

시아비 잡아먹고 담보물 붙잡은 다말의 교훈

창세기 38:12-23

묵상내용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 계시의 경전으로써 성경에
결코 들어가지 않으면 좋을 것같은
불륜 중의 불륜의 이야기를 오늘의 말씀으로 읽었다

왜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을 인간의 구원자로 보내시는 계보의 라인에
이런 불륜 중의 상불륜의 이야기까지 들어가게 하셔야만 했을까....(?)

하나님을 떠나 동물화 되버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어떤 흉한 죄인도 하나님의 구원 라인에 들어올 수 있다는 계시의 싸인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 비쳐 주시는 것이 아닌지...생각하며 묵상의 글을 옮긴다

1.창녀에게 들어갈만큼 죄에 담대했던 유다...당신과 당신의 자식은 누구인가 ?

물론 오늘의 말씀의 시작은 유다가 창녀에게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변명아닌 변명의 구절을 밑바탕에 깔고 시작되고 있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자기 아내[수아의 딸]이 죽고 난 이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내 사별 후 많이 외로웠고 또 자신의 집을 떠나 타지인 딤나에
올라갔으니 주변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을거고
그동안 참고 지냈던 욕정이 처들고 발동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유다 그는 자신이 장차 인간의 구원자로 오실 구원자가
"유다 자손의 뿌리"라고 불려질 이 영광스런 호칭의 주인공이 될 것을 [계5:5]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고보니 야곱의 네 번째 아들 유다에게서 장차 나오게 될 구원자의 예언은
아비 야곱의 임종시에 주어지는 예언에서 서광이 비쳐난 것을 감안할 때[창49]
아직 유다는 자신이 갖게되는 축복의 위상과 가치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것같다

아무튼 유다는 창녀인줄 알고 들어간 자기의 며느리 다말을 임신시키게 되었고
쌍둥이 형제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되었으니 이 불륜의 아들 베레스를 통해
영광스런 메시야의 계보가 이어져 나가게 된다 [마1;3]

왜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본래 자식들인 "엘" "오난" "셀라"라고 하는 정상적인
후계 구도를 통해 유다의 대를 이어가게 할 수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왜 비정상적으로 출생시킨 자식이며
또 어떻게 보면 창녀인 줄 알고 들어갔으므로 창녀의 자식이라 할 만한
이 "베레스"를 영광스런 구원자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하신 것일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밑바닥 인생들의 자리까지 내려오시므로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망가진 사람들 곧 자신의 반인륜적며
비도덕적인 삶의 모습 때문에 구원의 소망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까지도
다 품으신다는 싸인을 이 사건을 통해서 비쳐주시는 것으로 받아 들인다.

2. 시아비를 잡아 먹고 담보물을 붙잡은 다말의 교훈

창녀의 복장으로 시아비를 속이고 시아비에게 붙어먹은 며느리 다말은
거룩한 언약의 아들이면서도 창녀에게 들어간 유다 만큼이나
죄에 대해 대담한 여인처럼 보여진다.
어떻게 창녀의 복장과 너울로 자신을 가리고 시아비를 유혹할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다말의 비도덕성을 탓하기 전에 그녀가 유다 가문의 씨를
그토록 갖고 싶어했다는 것과 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할 비책으로써 시아비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자신의 몸을 판 담보로 잡았다는 것은 다말의 뛰어난 지략과 용기를 엿보게한다.

다말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붙잡은 유다의 담보물 이야말로
장차 하나님 앞에서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한 내가
하나님께서 생명의 담보물로 내려주신 아들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인간으로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흉한 죄인의 자리에 서시어 나와 동일시 되어주시고
모든 죄와 저주를 한 몸에 담아내신 예수의 십자가를
자신의 담보로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놀라운 은총을 이아침 다시 한번 나의 것으로 붙들고 확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계보에 특별하게 이름을 올리는 네 명의 여인들 중
처음 두 명의 여인들인 다말과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모두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리고 담보물을 붙잡고
살아난 것들이 공통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하려고 했던 이 여인들의 간절함이
그녀들의 비도덕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월한 빛을 발하는 것은
구원이란 그만큼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아 내야할 절박한 명제이기때문이다.

기도하기

어떤 흉한 죄인이라도
예수의 생명과 바꾼 십자가 담보물
꼭 붙잡고 나오면 살 수 있는 구원의 비결을

딤나의 창녀로 변장한 다말의 사건을 통해
이 아침 계시의 빛으로 비쳐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심히도 부끄러운 이야기 속에 보화처럼 숨겨서 주시는
이 귀한 구원의 도리를 내가 꽉 붙잡고 나가게 하옵소서

더불어 스스로 부끄러운 인생을 사는 것 때문에
주님 앞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말씀이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