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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에스겔

▼ 에스겔 26:1-21 Tyre[두로]의 멸망이 주는 역사적 교훈

by 朴 海 東 2016. 3. 29.

Tyre[두로]의 멸망이 주는 역사적 교훈

에스겔 26:1-21

묵상내용

1. 열한째 어느 달 초하루에 임한 여호와의 말씀 [26:1]

바벨론의 예루살렘 2차 침공 때 많은 엘리트 집단이 인질로 잡혀가는 와중에 에스겔도 다니엘과 같은 인재들과 함께 잡혀가게 되어 자신은 홍수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텔아빕 포로민 정착촌에서 개간사업에 내몰리면서 예언사역을 하게 됩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십일년 째가 되었고 바로 그 해[BC 587년]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3차 공격을 받고 완전히 함몰되어 전민족적으로 포로로 잡혀오게 된 바로 그해 어느 달 초하루에 주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게 되는데 그 예언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서북쪽 해안가와 섬에 자리를 잡고 있는 두로에 대한 심판 경고 입니다.

2. 두로[TYRE]에 대한 지정학적/역사적 배경

여기서 두로는 지중해 해안 국가 시돈에서 남쪽으로 32KM 지점에 위치한 엣 두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지중해 바다쪽으로 800 미터 정도 떨어진 큰 섬에 있는 두로를 포함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두로인들은 여기에 난공불락의 성을 세웠고 후에 바벨론 왕 디그랏빌레세 3세와 살만에셀 5세도 이곳을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했을만큼 대단한 도시국가를 이루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에스겔에게 임한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들 중에 왕인 느브갓네살이 기원전 585년부터 572년까지 13년 동안 두로를 포위하여 함락시킴으로써 일차적으로 성취되었고 후에는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 때 바다로 향하는 800 미터 정도의 제방을 쌓아서 결국 함락시키게 되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왜 하나님은 두로를 다른 나라들보다 더 크게 심판하셨을까[26:2]

그런데 앞서 심판을 경고했던 다섯 나라[암몬/모압/에돔/세일/블레셋]들에 대한 경고는 짧막한 몇 구절로 지나가는 것에 비해 두로에 대한 심판 경고는각 나라들에 비해 무려 열배 이상이나 될 만큼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두로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였기에 앞서 등장했던 다섯 나라 전체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지면을 활애해서 두로의 심판을 엄중히 경고 하시는가 하는 점 입니다.
실제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는 26장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28장까지 길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 무언가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대해 벼르시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 열거된 나라들은 단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정도였다면 두로의 죄악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자신들이 얻을 반사이익을 기대하며 예루살렘의 멸망은 곧 자신들의 영광으로 직결시켰다는 것 입니다.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르기를 아하 만민의 문이 깨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26:2]


당시 지중해를 끼고 있는 팔레스틴에서 예루살렘은 고대 근동지방의 지리적 요충지로서 육상 무역의 중심도시 역활을 했다면 두로는 해상중계 무역의 중심 도시로써 예루살렘과 쌍벽을 이루는 경쟁국가 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두로의 입장에서 볼 때 예루사렘의 멸망으로 자신들에게 돌아올 큰 이익을 계산한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두로에 대해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버려 맨 바위가 되게 하며[26:4] 완전히 몰락하여 겨우 어부들이 그물이나 치고 말리는 곳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고 되고 있습니다[26:5]

그리고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 의해 그리고 후에는 알렉산더가 해상제방까지 쌓으면서 두로를 침공하여 초토화시킴으로써 완전히 성취하게 됩니다

묵상적용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두로와 예루살렘의 경쟁구도처럼 어쩔 수 없이 국가대 국가 또는 단체대 단체 혹은 개인대 개인의 경쟁구도를 가지며 살 수 밖에 없는 현실 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두로의 악한 심보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감정 차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나의 이익으로 직결시키는 심보야말로 더 크게 심판 받아야할 죄악 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흑수저, 금수저의 논란을 넘어서서 금수저의 대열에 낀 사람들이 계속 금수저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힘 없는 사람들의 불행을 밟고 자신들의 유익을 챙기는 불공정 관례가 깊어진 것을 곳곳에서 봅니다
어제 인터넷 신문을 보니 경북대학교 로스쿨의 한 교수가 로스쿨 입학과 관련하여 불공정 사례들을 고발했는데 그는 만연한 불공정 경쟁이 중단되게 하고 이 사회의 평범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로스쿨계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 불공정을 고발하는 책을 낸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가하면 4.13 총선을 앞두고 엊그제 마쳐진 각당의 국회의원 후보 선정에서도 정당한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의 인맥과 권력에 휘둘려서 후보자들을 선정하는 바람에 국민들이 더러운 정치판의 이야기들을 여과없이 방출하는 방송들을 시청해야하는 불쾌감도 있었습니다.
공정한 심판에 의해 진행되는 스포츠 게임처럼 모든 경쟁들은 공정해야하는데 이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성인 사회가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도 공평한 출발선 상에 세워놓고 달리게 하는 경쟁구도가 되야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의와 공평의 심판관이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로가 예루살렘에 대해 가진 악한 심보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밟고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악한 심보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게 된다는 것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 엿보게 됩니다.

가장 좋은 경쟁은 서로에게 윈윈[Win - Win]이 되게하는 것이고 이렇게 될 수 없다면 공정한 경쟁을 통해 패자의 입장에서도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경쟁이 되어야 그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예루살렘과 경쟁구도를 가지고 쌍벽을 이루고 있던 두로가 왜 그토록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가를 묵상하게 되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추어보며 부디 이 나라와 이 사회가 공평과 정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주님!
이 나라, 이 사회에
공평과 정의가
강같이 흐르게 하여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