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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에스겔

▼ 에스겔 33:21-33 시간이 걸리고 더디더라도 전달해야할 소식

by 朴 海 東 2016. 4. 7.

시간이 걸리고 더디더라도 전달해야할 소식

에스겔 33:21-33

묵상내용

[ 오늘의 말씀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

1. 도망자가 알려온 예루살렘 함락 소식[33:21-22]


오늘의 말씀은 예루살렘의 함락 소식을 가져온
한 도망 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은 주전 587년 여름 인데
이 도망자가 바벨론 그발강가 포로민들의 정착촌
텔아빕으로 가져온 고국의 함락 소식은
주전 586년 12월 경 이었으니[33:21]
적어도 일 년 반 정도가 지나서 알려진 셈 입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좋지 않았던 그 시절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4개월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스7:9]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나서 도착한 셈 입니다

아마 모든 도로가 바벨론 군사들에게 통제되고 있던
그 당시 상황에서 이 도망자는 우여곡절 끝에
많은 시간을 지체하면서 도착이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도망자를 에스겔에게 보낸 것은[33:21]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 온지 5년째가 되던 해[1:1. 3
그가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 시작했던 예언사역이
이렇게 7년 만에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도망자가 소식을 가져오기 전 날에
그의 도착을 미리 알려 주셨는데 이것은 마치
사사시대 왕을 원하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이 도착하기 하루 전 미리 알려주시고
다음 날 만나게 하신 방법과 동일합니다[삼상9:15].


2. 그 땅에 남은 유다의 잔류민들에 대하여[33:23-29]


이 도망자가 가져온 예루살렘 함락의 소식을
전달받게 되는 시점에서 부터 에스겔의 입이
다시 열려서 예언사역을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유다 땅에 그대로
잔류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대한 예언 입니다[33:23]

그들은 다시 잔류민들의 힘을 모아 국권 회복 운동을
펼치려고 한 것 같은데
그러나 그 땅이 죄악으로 너무 더러워져서 [33:25-26]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도모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도리어 모두 망하고
그 땅은 황폐하여 질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33:27-29]

3. 듣고도 행치 않는 포로민들에 대하여 [33:30-32]


에스겔은 계속해서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번에는 자신과 함께 포로민 정착촌에 살며
자신의 입으로 나온 말씀을 7년 동안 들었으면서도
변화가 없는 포로 민들에 대한 책망 적 경고 입니다

그들은 도망자가 전달해준 소식을 알게 되고
에스겔이 그동안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다는 을 인정하는 듯하면서도[33:30]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할례 받지 못하여서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신뢰하지 않으며
말씀 전달자를 말 잘하고 노래 잘하는자 정도로 취급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책망 합니다.[33:31]

그리고 이렇게 듣기만하고 행치 않는 자들에게 남는 것은
때 늦게 선지자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며
그래도 그 때가 좋았다고 후회하게 될 것을 경고 합니다[33:33]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궁금증으로 닿아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입으로 예언하신
유다와 예루살렘의 함락이 성취 되게 하셨는데도
무려 1년 반이나 지나서 그 소식을 듣게 하셨는지(?)

그리고 도망자가 도착하기 전날 미리 알려 주셨다면
굳이 일년 반을 기다릴 것 없이 위로 적 차원에서라도
즉각 알려주셔서 그동안 에스겔의 입으로 전달케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을 알려 주셨다면 좋으련만
왜 하나님은 이렇게도 지체하시고 기다려서
말씀 성취의 확증을 전달하게 하셨는지 의문입니다

이 의문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님은 그의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인간의 역할을 매우 중시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영적 세계가 아니라
바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기 때문에
그 현장의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되는
인간의 역할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엿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도행전에 나오는 최초의 이방인 성도
고넬료가 기도중에 주의 사자가 전하는 전갈을 받았을때도
주의 사자가 직접 복음을 전해줄 수 있었는데도
굳이 욥바 피장이 시몬의 집에 와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 전달과 그 말씀의 확증에 있어서
말씀의 목격자 되고 현장의 증인이 되는
증인들의 역할을 중시하신다는 것을 엿보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루살렘의 함락 소식을 가지고 온 도망자가
분명 바벨론 군사들의 도로 통제를 피하여서라도
산을 넘고 들을 지나 계곡을 통과하면서까지
그 길고 긴 길을 걸어 소식을 가져온 것처럼

내가 말씀[복음]전달을 위해서라면
말씀 전달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인간도구로서
어떤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꼭 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내가 전하는 소식은
도망자가 가져온 것 같은 패배와 함락 같은 소식이 아니라
예수 십자가와 부활 승리의 소식이며
슬픈 소식이 아니라 기쁜 소식이고
멸망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북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압록강변 **에서
북한 무역부 소속 공산당원을 만나게 되어
성경을 펼쳐 들고 복음의 엑기스만 뽑아서 전달했는데
이 사람은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어찌나 적극적이며 흥분된 표정으로 받아 드리는지
말슴을 전하는 내 자신이 감동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50대 초반의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처음 들어보며
성경도 처음 본다고 하였는데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이 사람에게 이 복음의 소식이
전달되기 까지는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인데

오늘의 말씀에서 예루살렘의 함락 소식을 가지고 온
도망자가 거의 일 년 반 만에 도착된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더디게 전달된 소식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오늘도 성취된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아직 듣지 못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 세상 곳곳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인간 도구로써
이 말씀을 가지고 이 세상 어느 곳까지라도
가야한다는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