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34:1-16 양과 목자
바벨론 그발강가 포로민 정착촌 텔아빕[홍수의 언덕]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전달하는 에스겔의 붓끝은
1- 3장에서 선지자로 부름 받은 자신의 소명을 밝혔고
4- 24장에서 이스라엘의 죄악과 심판을 경고했으며
25-32장에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심판을 전했는데
33 장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이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부름 받은 소명을 밝히고
34장 - 47장까지 파멸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한다.
그런데 이 회복은 바벨론 포로 후 귀환 때 뿐 아니라
메시야 시대까지 내다보는 역사적 지평을 가지고 전달된다.
오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목자들로 세워진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욕심과 자기 태만으로 말미암아
굶주리고 병들었으며 잃어진 양들을
참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
안전한 처소로 다시 데리고 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리라[34:16A]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시어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러 오신다는 이 약속은
마침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성취 되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눅14:36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해치느니라...........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10:12- 15]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하신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양들을 위해 영생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3년 동안 목자수업과 훈련을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사랑의 문답을 통해 자신의 양들을 맡기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 내 양을 먹이라[요2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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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장 반복적으로 많이 나오면서 마음에 닿아지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양” 이라는 단어 인데
짧은 구절 속에서 무려 10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양을 맡은 목자들이
살진 양을 잡아먹으며 그 기름을 먹고 털은 입되
양은 먹이지 않고 돌보지 않아서 병들고 약해졌으며
흩어져 유리방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파멸은
그 책임이 양의 목자로 위임받은 목자들 곧
그 당시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죄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 시대로 확대해서 해석한다면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맺어지는 모든 지상 교회에서
교회가 잘못되고 양들이 피해를 입게 될 때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목회자에게 있다고 하시는 것이다
물론 주님의 목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
모두 순한 양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뿔 달린 염소들도 있어서 같은 우리에 있는
다른 양들을 괴롭히기도 하며 목자를 뿔로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목회자에게 두는 것은
그는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이 세워주신 초장[목장]에서
성도들과의 사이에
양과 목자의 관계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지난 날 내가 맡았던 교회에서
뿔 달린 염소들에게 많이 받혀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신앙 공동체가 행복하지 못했다면
모두 내 책임이고
나의 부족과 부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왜 양들이 즐겨 따르는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지 못하고
양과 목자 사이에 사랑의 교감을 갖지 못하는
불행한 목회가 되는 것일까 (?)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장 강하게 어필되고 있는
“나의 양” 곧 하나님께서 나의 양이라고 하시는
교회 성도들을 맡아서 목양하게 되는
목자의 자세에 그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주님의 목장 곧 한 신앙 공동체의 목자가 된 목회자들은
교회에 성도[양]들의 숫자가 많던지 적던지
그 양들은 모두 주님의 양들로써 내가 임의로 위탁 받은
양과 목자의 관계 인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주님의 양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고 해도
나는 그 양을 바라보기보다
그 양의 주인이신 주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양을 맡기시면서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내가 양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양들을 사랑하게 되고
혹시 양들로 인하여 고통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이 양들의 주인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해결 받아야 한다.
양의 참 목자이신 주님과 나[목회자] 그리고 양의
삼각관계 속에서 목양이 되지 않고
양과 목자의 1:1 관계에서만 양을 하게 되면
교회 안에서도 돈이 많은 사람 / 많이 배운 사람
사회적 위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갖게 되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되고
주님이 바라시는 진정한 목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내가 목양에서 실패했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데서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양들을 사랑하게 되기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세속적인 관심이 가득해서
주님과 양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일만한
여지가 없게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주시는 그 사랑의 힘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양들도 다 품을 수 있으며
주님의 양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므로
나의 기쁨과 행복을 삼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주님 !
이 세상에 두신 주님의 양들을 위하여
오늘 나를 목자의 자리에 세워주심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서로 행복하게 하심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양을 이용하는 목자가 아니라
양들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주님을 닮은 참 목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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