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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스가랴

▼ 스가랴 7:1-1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금식

by 朴 海 東 2016. 5. 2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금식

스가랴 7:1-14

묵상내용

1970년대 후반에서부터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한국교회에 불어 닥쳤던 기도의 열풍은 한국 교회에 큰 부흥을 가져왔고 또 처처에 많은 기도원들이 생겼으며 금식기도가 매우 성행한 시기였습니다.
마치 기도 하기만 하면 만사가 해결되는 기도 만능주의 시대를 연 것 같았고 게다가 금식의 열기도 뜨거워서 금식으로 고치지 못할 병이 없으며 금식으로 해결되지 못할 것이 없는 풍조가 만연하여 금식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는 또 마[魔]가 끼어드는 법이어서 이러한 종교적 열풍을 타고 많은 부작용도 생겨났는데 어떤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이 금식에 관련된 성경의 한 구절[정확히 말하면 문맥을 무시한 반 구절]을 떼어다가 교회당이나 기도원의 이 곳 저 곳에 붙여놓고 병 고침을 바라거나 기타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게 하는 해프닝도 있었는데 그 구절은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문맥을 무시한 채 완전히 자기들에게 좋은 한 부분만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 써 먹는 말씀 이었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야 58:6]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진정한 금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이 구절에서 첫 단락의 문구만을 잘라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무조건 금식하고 보게 만드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아갔으니 참 가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당시에는 이 금식에 관한 구절을 인용하는 교회나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에서 내노라고 할 만한 분들이었기 때문에 감히 여기에 대한 도전을 하지 못하고 그냥 이 흐름으로 끌려가는 추세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신앙과 삶이 괴리된 채 금식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 아닌데 그간 너무나 금식만능주의에 함몰되어 끌려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뒤늦게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란 다름이 아니라 나의 신앙과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흉악한 결박에 묶인 사람들, 멍에의 줄에 매인 사람들 그리고 압제 당하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해주며 모든 멍에를 꺾어주는 것 같은 말씀에 대한 삶의 실천을 의미했는데 이러한 신앙과 삶에 관련된 부분은 모두 잘라내고 내 문제 해결을 위한 것에 해석의 초점을 맞추어서 “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다른 사람의) 흉악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이 아닌 자기의 결박을 푸는 것에 목표를 두고 금식기도 하게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런 이기주의적인 기도와 금식의 억지가 없고 역겹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금식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오늘의 말씀은 금식에 대한 올바른 사상을 다시 한 번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을 위한 금식이 아닌 진정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지적해 주는 말씀입니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슥7:5-6]


한 마디로 너희가 먹고 마심이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고
너희 자신을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너희가 금식하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금식이 아니라
너희 자신을 위한 금식이 된 것이 아니냐는 책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수 없이 많이 들어도
그 말씀에 대한 순종 없이 마음을 금강석 같이 굳게 하면서
정작 자신에게 절박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린다면
어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금식이 되겠느냐는 것인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꽉 막혀 있으면서
금식이라는 요식 행위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묵상적용

금식의 첫 번째 목적은 주님 앞에 잘 못 살았던 것을 회개해야 하는데
마음먹은 대로 기도가 되지 않고 기도의 문도 열리지 않을 때
주님 앞에 자신을 겸비하게 낮추는 자세를 갖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또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보는 것처럼 그리고 모세나 에스더에게서 보는 것처럼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겠는데
자신의 나약함을 심각하게 인지할 때에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기를 절박하게 바라는 마음에서
금식 기도에 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금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책망하시며
금식 이전에 먼저 선결되어야 할 것을 지적 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7:9-10]


하나님과 나 사이에 꽉 막혀있는 문제는 그대로 남겨둔 채
자신의 어떤 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밥을 굶어가며 기도하는 것은 금식이 아니라 굶식이 되며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금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받아 드립니다.

금식 이전에 더욱 중요한 것은 신앙과 삶이 괴리되지 아니하고
예배와 삶이 일치되는 삶을 지향하여 나갈 때
거기에는 내가 굳이 밥을 굶어가며 금식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묶인 것들을 풀어주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오늘 주신 말씀과 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에서
다시 한 번 확증하게 됩니다.

이것은 절대 금식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금식 이전에 더 중요한 것으로써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며
또 이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한하며 주님 앞에 더욱 낮아져
금강석 같이 굳은 자신의 마음을 깨트리고 낮추는 목적으로
금식하는 자들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마음 깊이 받아 드립니다.

--[이사야58:3-1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금식은]--

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