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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스가랴

▼ 스가랴 9:1-17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by 朴 海 東 2016. 5. 25.

 스가랴 9:1-17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달하는 구약 선지자들의 공통된 점은 그들의 예언이 하나님의 나라요 백성인 이스라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까지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열방과 민족들의 장래사까지 전달하게 하시는 것인데 특별히 이스라엘의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 선지자들인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 같은 선지자들은 지금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삼은 당대의 페르시아 제국 시대를 넘어 그리스 제국과 로마 시대에까지 그 역사적 지평을 넓히고 있다.

오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축과 관련 있는 페르샤 제국의 왕 다리오 1세의 시대를 넘어 [BC 522-486] 다리오 3세의 시대[BC 336-330]에 이르러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제가 지중해와 동방의 나라들을 연결시키려는 야심을 품고 동방원정에 나서서 당시 페르샤가 지배하고 있던 모든 나라들을 휩쓸고 지나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시작되고 있다.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 스가랴의 이 예언들은 실제 인류 일반 역사에서 알렉산더 대제의 동방원정에서 나타났는데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엣 지명을 상징하는 하드락 땅에서부터 시작되어 , 시리아의 엣 지명인 다메섹/하맛을 거쳐 [9:1-2a] 지중해의 서안 페니키아 지역인 두로와 시돈을 점령했고 [9:2b-4] 더나가서 불레셋의 모든 지역[9:5-7]을 차례로 점령해 나갔는데 스가랴를 통해 전달되고 있는 이러한 장래사는 다니엘을 통해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예고된 바 있다[단8-12장]

그러나 포효하는 바다의 어지러운 소리같이 세상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때에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안전할 것인데 [9:8] 이는 자기 백성의 보호자이신 메시야가 자기 백성을 찾아오실 것이며 그는 평화의 왕이시며 겸손하시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것인데 장차 그의 통치는 온 땅에 평화의 나라를 확장해 가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9:9-10]

군마를 타고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해 나간 알렉산더 대왕과 대조적으로 나귀를 타시고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은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에서 성취되었다 [마태복음21:5, 요한복음12:15]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9:9]


이 한 구절의 예언만으로도 스가랴 선지자는 성경의 독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선지자로 각인되고 있는데 복음서로 들어와서 이 구절이야말로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크게 확증하고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가랴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자기 백성을 찾아오시는 메시야를 이상 중에 바라보며 이 예언을 남긴 것일까(?)

겸손의 왕이시며 평화의 왕으로 자기 백성을 찾아오시는 이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전쟁의 장비들을 내려놓게 하고 이방에까지 화평을 전하며 평화의 통치를 바다에서 바다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는 이 예언 속에서 스가랴는 평화 없는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실 분을 바라본 것이다.[9:10] 
더불어 이 평화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온전히 성취될 것이지만 그 승리의 날이 이르기 까지 자기 백성을 위해서 대신 싸우시며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주님의 돌보심이 얼마나 지극하게 나타날 것인지 이어지는 말씀 가운데서 충만하게 나타나고 있다[9:11-17]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닿아지는 구절은 이 어지러운 싸움 가운데서 나의 요새로 돌아오라는 주님의 말씀과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마귀와 세상의 세력을 온전히 초토화 시키리라는 주님의 약속이다.

사로잡혔으나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오늘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네게 두 배로 갚을 것이라
내가 유다를 활처럼 당기고 에브라임을 화살로 삼았다. 
시온아, 내가 네 아들들을 일으켜 헬라의 자식들을 치게 하며
내가 너를 용사의 칼처럼 쓸 것이다. [9:12-13]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 스가랴의 예언대로[9:1-8] 알렉산더 대제는 동방 원정을 실현했고 그는 그가 정복하는 곳 마다 마치 헬라 문화의 전령 자처럼 헬라[이교도의 상징]문화를 심었는데 신구약 중간기에 나오는 유다의 역사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유다는 여기에 동화되지 않고 헬라문화를 배격하였으며 알렉산더 사후에는 도리어 독립국 가를 이루는 마카비 시대를 열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다 역사에 나타났던 이런 일들은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승리의 부분적인 성취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마귀와 세상의 세력을 헬라의 자식들을 메어치는 것처럼 승리하게 되는 일은[9:13] 나귀 타고 오셨던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시는 그 날에 성취될 것이다.[데전4:16-18]
그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9:16]
 

그러나 온전한 승리를 이루는 그날이 이르기까지 
내가 귀담아 들어야할 주님의 음성이 있는데 
그것은 갇혀 있는 것 같으나 소망을 가진 자로서 
대신 싸워주시는 주님의 요새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릇 요새(要塞)라는 것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만들어 놓은 방어 시설로써 이러한 요새를 구축하는 것을 요새화(要塞化, fortification)라고 한다.
다윗의 일대기를 밝혀주는 사무엘상하에서 다윗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루며 생과 사를 넘나들었는데 그가 위험속에서 구출 받은 경험들을 시편에서 고백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말은 여호와는 나의 요새시라는 것이다.

영어 단어에서 요새 Fortification 은 라틴어 fortis(강한)과 facere(만들다)에서 나온 말인데 적의 어떤한 공새에도 끄덕이 없는 강한 진지를 구축하는 것을 말하며 이 요새에 들어가면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곳에 나의 안정과 평안을 보장하는 요새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진정한 요새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윗의 고백처럼 그리고 오늘 말씀에 나오는 주님의 당부처럼 오직 주님 만이 나의 안정을 보장하시는 진정한 요새가 되신다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나의 든든한 요새인 것이며 아무리 안전하게 보이는 곳이라도 주님 함께 하지 않으시면 나의 요새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주님!
최후 승리를 얻게 되는 그날 까지 
나의 요새가 되시는 
주님께 단단히 붙어서
이 죄악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강한 용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