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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시편

▼ 시편 10:1-18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성도가 가져야할 자세

by 朴 海 東 2016. 11. 10.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성도가 가져야할 자세

시편 10:1-18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불현 듯 최동훈 감독이 만든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1930년 대 나라를 잃은 조국은 상해에 임시정부를 설립하고 일제에 항거하는 방법으로 조선에 암살단을 파견하여 중요한 인사들을 처단하게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제가 심어놓은 첩자 염 석진[이 정재 분역]이 일본군의 밀정으로 잠입하여 수많은 고급 정보를 일본군에게 넘겨주고 같은 조선인으로서 조국을 배신하게 되는데 마침내 시대가 바뀌어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그는 재판정에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당시 미군정 하에서 반공을 이데올로기로 한 이승만 정권을 힘입어 도리어 경찰국장의 지위를 누리게 되고 재판정에서도 무죄를 선언 받고 나오게 되는데 당시 암살단으로 활약했던 안 옥균[전 지현 분역]과 또 한 사람의 의혈단 단원을 통해 그는 도시의 뒤 골목으로 유인되고 그곳에서 처결된다. 그 때 암살단원이 배신자“염 석진”에게 왜 조국을 배신했느냐고 묻자 그는“조국이 이렇게 해방될 줄 알았나!”라고 말하면서 두 사람의 총구에 쓰러지게 된다.

어디 이것이 염 석진 한 사람 만의 이야기가 되겠는가(?)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일제천하가 끝없이 이어지는 줄 알고 일제에 아부하며 조국을 배신했는가하면 그래도 조국 해방의 신념을 가지고 불굴의 독립군으로 자신의 삶을 던진 사람들도 있었던 것을 우리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공평과 정의와 진실이 사라지고 불의와 불법과 거짓이 판을 치며 폭력을 사용하는 자들이 이기는 것 같은 암울한 현실에서도 밤이 깊으면 곧 새벽도 올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정의와 진실 편에 서는 사람들은 오늘날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의 심판이 쉬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까(?)
불의한 권력을 가진 자에게 줄서기를 하며 적당히 불의와 타협하는 자들이 잘되는 것 같은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도 믿음과 양심을 지켜야하는 성도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시편 저자의 고민이었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편의 기자는 불의가 횡횡하는 시대에 하나님은 이 악한 정경을 감찰하지도 않으시고 침묵하시는 것 같은 현실에서 절망하며 탄원적인 기도를 드리다가[10:1-11]
이 고통이 격정적으로 폭발한 10:12-13절을 기점으로 해서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고 짓누르는 슬픔이 위로와 환희로 바뀌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이 시편 저자의 마음에 이러한 반전을 가져오게 한 것일까(?)
시편의 저자가 악인들의 말을 인용하여
주께서는 보지 않으시며 감찰하지 않으시는 세상이라고 편견에서 벗어나,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 하나이다”
고백하게 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지난 날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소망의 빛으로 나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10:16].


그렇다 세상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누르며
불의와 불법이 판을 치고
공평과 정의가 사라진 세상인 것처럼 보여도
지난 날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던
놀라운 일들을 돌아본다면 우리[나]도 시편의 저자처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세상을 비관하는 것에서
정녕 하나님께서 보시고 아시며
주의 손으로 갚으신다는 소망의 믿음으로 나올 수 있다.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영원무궁한 왕이 되시어
자신들을 가나안에 들어와 살게 하신
자기 조상들의 역사가 기록된 말씀과
또 자신의 당대에 그 땅에서 이방의 나라들이
쫓겨나갔던 일들을 추억하면서
[아마 이 시편10 편 역시 다윗의 작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잠시 다운 되었던 그의 믿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오늘의 묵상을 정리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성경의 역사에서나 일반 역사에서
그리고 좁게는 내가 지나온 지난날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은 너무나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내주셨는데
내가 시편 저자와 같은 역사적 안목을 갖지 못해서
나도 자주 현실을 비관하고 실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아침 나도 시편 저자의 믿음과 고백처럼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을 세세히 아시며 감찰하시고
공평과 정의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스리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 되심을 고백 드리며
이 믿음 가지고 불의한 세상과 맞서는 의로운 자로서
굳세고 힘차게 살아가야할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한다(*)

기도하기

주님!
공평과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절망하는 시편 저자의 탄식과 탄원에서
나도 동일한 탄식과 절망을 느꼈지만

또 한편 주님께서 이 세상 역사 가운데 개입하신
성경에 기록된 구속의 역사를 비롯하여
세상의 일반 역사 속에서도
그리고 보잘 것 없는 나의 신앙과 삶 속에서도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살아계셔서
세상의 만사를 감찰하시며 주관하시는
영원무궁한 왕이 되신다는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주를 의지하는 외로운 자들의 기대가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시는 이 말씀을 힘입어
나도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묵상적용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의 존재]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Reward]이 이심을 [그의 인격]
믿어야 할지니라.[히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