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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누가복음 *

▼ 누가복음 3:1-9 세례 요한이 회개의 충격요법으로 사용한 독설

by 朴 海 東 2017. 1. 30.

세례 요한이 회개의 충격요법으로 사용한 독설

누가복음 3:1-9

묵상내용

아기 예수에서 소년 예수로 성장한 12세 때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이 복음서의 저자 누가는 어느덧 18 년의 세월이 지나간 어느 해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나이가 서른 살 쯤 되었을 때[눅3:23]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나가시는 길을 닦기 위해서
6개월의 시차를 두고 먼저 태어난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서두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문을 열고 있다.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서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카펜터(목수)로서 가정의 생계를 끌어나가고 있을 무렵
이미 어린 시절부터 광야의 아들로 자랐던 세례 요한은[1:80]
자신의 역할로써 세상에 등장시켜야할 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때가 도래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3:2]

이 복음서의 저자 누가는 그 때가 바로
로마의 두번째 통치자로 등장하는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였으며
당시 유대 땅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막강한 신뢰를 받아
유대 땅 전체를 독립적으로 다스렸던 헤롯 I세가 죽고 난 뒤여서
다시 로마 황제의 관할에 들어가게 된 것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티베리우스 황제는 유다의 심장부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지역은 자신이 파견한 본디오 빌라도가 통치하게 하였고
나머지 갈릴리와 이두메 그리고 아빌레네 지역은
헤롯의 세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와 그의 동생 필립 그리고
루사니아에게 분배하여 다스리게 하였는데[3:1]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가 죽고 카이우스 황제가 등극한 후에는
당시 분봉왕의 자리도 얻지 못하고 야인으로 지냈던
헤롯 1세의 또 다른 아들 아그립바가
로마의 세 번째 황제인 카이우스의 신뢰를 얻어
갈릴리 지역을 다스렸던 헤롯 안티파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 안티파스는 부인 헤로디아의 끝없는 권력 욕망에 휘말려
아그립바와 권력 쟁투를 벌이다가
카이우스 황제에 의해 스페인으로 추방당하게 되고
그 자리를 아그립바가 차지하게 되는데
이 왕이 바로 사도행전에 자주 등장하는 헤롯 아그립바 왕이 된다.

오늘의 묵상 서두에 이렇게 당시 정치적 상황을 쓰게 되는 것은
이렇게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당시 세상의 정치의 판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을 때에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진행은
잠잠히 흘러가는 구속사의 강물처럼 흘러가다가
마치 무수한 지류 천들이 큰 강줄기로 합류되듯이
이제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거대한 구속사의 강물로 통합되고
급류처럼 되어 급박하게 흘러가게 된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 요한이 선포한 회개의 세례 [3:3]

사가랴의 아들 요한이 굳이 세례 요한으로 호칭되는 것은
그가 요단 강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선포하면서
자신이 세상에 나타내야 할 분을 기다렸기 때문인데
이 복음서의 저자 누가는 그가 이사야의 예언을 따라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하는
자신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과 사명을 가지고
이렇게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3:4-6]

그런데 광야에서 외치는 그의 외침의 선포가
얼마나 우렁차고 담대했던지 사람들은 그가
혹 자신들이 기다려온 구원자[메시야]가 아닌지 기대했을 만큼
온 이스라엘을 진동시키는 회개의 선포자로 등장한 것 같다.

묵상적용

2. 세례 요한이 회개의 충격요법으로 사용한 독설[3:7-9]

세례요한은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듣고 요단강으로 몰려오는
유대인들의 허위와 위선을 깨트리고 이제 곧 등장하실
구원자[메시야] 앞에 겸손하게 세우기 위한 충격 요법으로
그들의 자존심을 깨트리는 독설적인 언사도 서슴치 않았는데
심지어는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호칭도 써가며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하며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음같이 너희가 임박한 심판 앞에
직면해 있다고까지 선포하였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직설적 쓴 소리의 화법들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얼마나 율법에 충실하고 열심이었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전하는 글에 의하면
발라도가 티베리우스 황제의 파견을 받아 총독이 되어
유대 땅으로 들어올 때 티베리우스 황제의 초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걸라는 명을 집행하려고 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광장에 모여 반대 시위를 하며
차라리 자신들의 목을 베어달라고
모두가 총독 앞에 목을 길게 내밀고 주청했을 만큼
하나님과 율법에 대해 열심이었던 사람들 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신들을 향해 던지는 세례요한의 독설은
그들의 신앙적 열심을 한 푼어치의 가치로도 인정하지 않는
가히 파격적인 독설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하나님과 율법에 대하여 가진 열심 때문에
자신들의 의로 충만한 그들에게는
이제 곧 등장하실 구원자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는데
이 복음은 자신이 죄인 됨을 인정하고 가난한 심령이 된 자들에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세례요한의 이러한 직설적 독설법은
그렇게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이해하게 된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나는 세례요한이 회개의 충격요법으로 사용한 독설들이
나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요즘 우리 시대는 회개의 메시지가 거의 상실된 시대가 되었다
우리들의 교회는 회개의 쓴 소리보다 위로의 메시지를 요구하며
세례요한이 선포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메시지보다
평화와 평강을 자장가처럼 들려주기를 바라는 시대가 되었고
거룩한 신앙에 세우기에 필요한
고난과 훈련과 연단의 메시지보다
세상 사람들이 절대 가치관으로 추구하는 성공주의와 번영주의
그리고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긍정적 마인드로 행복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세례 요한을 통해 회개의 충격요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독설들은 그 시대뿐 아니라
오늘 우리시대 그리고 나에게도 절실한 회개의 메시지라는 것을
이 아침 이의 없이 마음 깊은 도전으로 받아 드린다.

주님!
내가 독사의 자식입니다
내 안에 무서운 독을 뿜는 뱀이 있습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무섭고도 위협적인 상황에 처해있는데
내가 나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나는 주님이 필요 합니다.
주님 밖에는 해결할 수 없는 죄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베푸시는
사죄의 은총과 평안을 주옵소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구원하사
이제는 독사의 자식이 아닌
화평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함에 이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