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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 누가복음 *

▼ 누가복음 4:16-30 꼭 은혜 받아야할 사람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by 朴 海 東 2017. 2. 2.

꼭 은혜 받아야할 사람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누가복음 4:16-30

묵상내용

1.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4:17]

예수님은 성경이 자기에 대하여
증거 하는 책이라고 하셨는데[요5:39]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 안에서도
특별히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과 관련된
이사야61:1-2절의 말씀을 특별히 좋아하신 것 같다.

나도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사명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정체성과 사명을 의심하는 사람들 앞에서나
혹은 내가 나 자신의 사명에서 흔들릴 때 굳게 서기 위해서라도
내가 평소 좋아하고 마음에 담고 있는 말씀이 있어야 되겠다.

비록 목공소 집의 아들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살아왔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바로 그 메시야[구원자]인 것을
기록된 말씀 안에서 찾으시고 그 말씀을 붙드신 예수님처럼
나도 책(성경)을 펴서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사명에 대해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을 수 있는 신앙과 삶이 되어야겠다.

2.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4:21]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人子]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10대, 그리고 20대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고향 마을에서 이제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가 예고한 바로 그 메시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사야61:1-2절의 말씀을 찾아 펴서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다.

평소 목공소 집의 아들로만 알고 지냈던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과 주장은 그들이 받아 드릴 수없는
충격적인 것 이었다.
그러나 연이어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은혜로운 말들을
놀랍게 여기면서도 종내는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는 프레임에 갇혀서
그들의 믿음은 더 이상 더 깊은 데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 복음서의 저자 누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배척하는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처럼 소상히 기록한 것일까(?)
누가복음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는 일관된 사상처럼
그가 비록 사람의 아들(人子)로 우리 앞에 서셨지만
그는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고 응하게 하신 분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인 것을 밝히 드러내고 있음을 본다.

오늘 아침에 묵상 글을 올리기 위하여 컴퓨터를 켰는데
왠지 모르게 오늘 날짜[2월2일]의 것이 나오지 않고
어제 날짜의 것만 나오기에 혼자 생각하기를
아마 생명의 삶 게시판 담당자가 마치 방송사고 일으키듯
오늘의 것을 올리지 못한 실수를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묵상 글을 올리지 못하고 혼자 오해하고 있으면서
우연이 컴퓨터의 하단을 보니 오늘 날짜와 시간이 나오지 않고
어제 날짜의 것이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문제는 나의 컴퓨터의 고장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설정에 들어가 오늘 날짜와 시간으로 재조정하고서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오늘 아침에 겪은 이 작은 경험을 생각해 보면서
인간 예수의 정체성에 프레임이 갇혀있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를 받아 드리지 못하는
나사렛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오늘 우리 시대 그리고 나의 주변에서도 많이 보는 것 같다.

하나님은 나의 작은 프레임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시다
크고 광대하신 그 분을 어찌 나의 좁은 생각의 틀 속에서
판단하고 배척할 수 있겠는가(?)
과감하게 나의 프레임을 깨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프레임 속으로 내 마음을 열 때
모든 것은 가능해지고 나도 비로써 빛을 얻을 수 있음을 배운다.

묵상적용

3. 왜 예수님은 고향사람들에게
이방인 사렙다 과부 이야기와 나아만 이야기를 하셨을까(?)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이 기다려온
메시야 인 것을 믿지 못하고 배척하는 나사렛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나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이 이사야의 예언처럼
이렇게 응한 것을 너희에게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내가 너희와 한 마을에서 함께 지냈던
지난날의 프레임에 갇혀서 나를 바라보기 때문인데
이제 너희가 마치 나를 처음 대하는 사람처럼
나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인증하는 예로써
이스라엘이 모두 친숙히 알고 있었던 엘리야나 엘리사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받아 드리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을 처음 대하는
이방인 사렙다 과부나 나아만이 은혜를 받은 것처럼

오히려 자신을 인간적으로 익숙히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보다
동네 밖의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며
한 걸음 더 나가 유대인들보다 이 은혜가
이방인들에게로 가게 되리라는 것을 여기서 암시하신 것 같다.

내가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에 너무 익숙해 있는 것 때문에
혹은 내가 유대인들처럼 성경에 너무 익숙해 있는 것 때문에
그보다 더 중요한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되겠고
나의 신앙과 삶 속에 인격적으로 상대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실체에 대해서 결코 놓치는 일이 없어야 되겠다.

4. 배척과 위기를 뚫고 나가신 예수님[4:28-29]

꼭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더욱 포악하게 변한다는 것을 지난 날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나사렛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돌변한 모습에서 보게 된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더 자신과 함께 지냈던 나사렛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은혜와 표적을 나타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과 함께 자란 인간 예수의 프레임에 갇혀버려서
예수를 받아 드리지 못하는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방인 사렙과 과부와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을 예로 들어 이야기 했는데
이것은 마치 불에 기름을 얹은 격이 되어
그들은 모두 화가 났고 예수님을 동네가 건설된 마을 끝
낭떠러지 까지 몰고 가서 밀쳐 떨어트려 죽이려고 했는데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이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는
신적 능력을 발휘하여 그들을 뚫고 나가신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발생되는 것일까(?)
마땅히 은혜 받을 사람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더 무섭게 배척하며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마땅히 은혜 받아야 할 자리에서 은혜 받지 못하므로
마귀에서 사로잡힌 나사렛 사람들처럼 되어
더 무섭고 포악하게 변질되지 않기 위하여
삼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교훈을 깊이 받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