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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민수기

▼ 민수기 13:1-24 나의 가고 서는 것 주의 뜻에 있으니

by 朴 海 東 2017. 6. 22.

나의 가고 서는 것 주의 뜻에 있으니

민수기 13:1-24

묵상내용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잊지 못할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이 발생된 장소가 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광야의 행진과 관련하여
모세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아쉬운 사건이 되면서
안타까운 장소는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고 있는
바란 광야의 북부 "가데스 바네아" 라고 생각되는데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을 보냈던 그 날의 사건 이후
38년 뒤에 광야여정을 회고하면서
가장 먼저 잊지 못할 회한의 장소로써 가데스 바네아를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신1:1-46]

따라서 오늘의 말씀을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신명기 1장에서 민수기 13 장 쪽을 바라보며 읽으면서
오늘의 말씀이 다 밝혀주지 못하는 더 깊은 내용들을
들여다 보게 되는데 대략 다섯 가지로 정리가 된다


1. 11일이 38년으로 연장되는 통한의 가데스 바네아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여호와의 산 호렙/시내 광야에서부터 가데스 바네아 까지는
불과 11일 이면 도달되는 그리 먼 광야 여정은 아니었다.[신1:2]

그런데 이스라엘은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가면서도
원망과 불평으로 점철된 여행이 되다보니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또 최근에는 미리암의 사건으로
7일을 더 지체하다 보니 거의 몇 달이 걸린 여행이 된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손치더라도 하나님께서 본래 계획하신
가나안 입성의 날이 이처럼 짧은 여정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가데스 바네아 에서 있었던 불신앙의 사건으로 인하여
11일의 거리가 후에 38년이 되어
매마른 광야를 맴돌았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고도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때가 되매 주시는 축복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지 아니한 결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오늘의 말씀으로 주시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다시 한 번 일깨운다


2. 정탐꾼 파견을 본래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를 출발하여 하세롯을 거쳐
바란 광야로 들어와 가나안의 접경이 되는
가데스 바네아로 진입하게 되었는데
이미 출발할 때 부터 60만 대군이 조직되어 있는
전투대형 행군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가나안 진군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탐꾼들을 보내어 또 다시 40일을 지체하게 되는데
이는 본래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

오늘의 말씀을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신명기 1장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모세는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에 이르렀으니
두려워말고 주저 말며 즉시 올라가라고 명을 내리지만[신1:21]
백성들은 주저하며 먼저 정탐꾼들을 파견할 것을 간청함으로
모세도 이 말을 선히 여겨 받아드리고 있으며[신1;22]
하나님께서도 이 제안에 대해 허용적으로 바뀌신 것을 보여준다.


3. 12 지파에서 선발된 정탐꾼들은 각 지파의 지휘관들 중에서
비교적 젊은 사람들로 선발되었다


이스라엘이 광야 행진을 앞에 놓고 어떻게 진영을 배치하며
어떻게 행군의 순서를 정할 것인지 인구조사를 하였는데
당시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인구조사에 나섰던
각 지파의 수령 지휘관들의 이름이 [민1장]
여기서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참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지휘관들은 제단이 봉헌 되는 날 각 지파를 대표하여
예물을 드리며 그들의 이름이 다시 한 번 언급되는데[민7장]

오늘의 말씀에서 소개되는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 모두
다른 이름인 것을 보면 행진을 시작하게 된 싯점으로부터
불과 몇 달 사이에 물갈이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아마 각 지파의 지휘관들 중 비교적 젊은 지휘관들이
기동성을 요구하는 정탐 사역을 위해 선발된 것으로 이해된다.

묵상적용


4. 12 인 정탐꾼들의 정탐 경로


바란 광야 북부는 가나안의 남부 신광야와 맞닿아 있는데
정탐꾼들의 정탐 루트는 이곳 가나안의 남부 신광야에서 출발하여
시계바늘 방향을 따라 가나안의 북부인 하맛의 길목인 르홉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남부 네겝 지역으로 내려와
고산지대에 위치한 헤브론에 이르게 된다.

이 민수기의 저자 모세가 특별히 정탐꾼들의 정탐과 관련하여
헤브론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은
믿음의 족장 아브라함-이삭 -야곱이 모두 여기 헤브론 쪽에
많은 사연들을 남긴 곳이며 또 그곳에 무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정복해야할 땅으로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또한 바로 그 곳에 가나안의 최대 강적이 될 수 있는
아낙 자손[거인들]이 살고 있다는 점을 명기함으로써
그 땅을 정복하기 위한 의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5.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13:20]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한 번은 군사들을 이끌고 물이 없는
황량한 지역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군사들은 행군에 지쳐가자
임기웅변 식 꾀를 내어 저 앞에 보이는 산 만 넘어가면
그 곳에 살구나무가 가득하여 실 컨 먹을 수 있다고 하자
군사들의 입 안에 침이 돋고 산을 넘어 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실제로는 없는 살구 열매까지 이용하는 조조의 계략을 보게 된다.

그러나 모세는 정탐꾼들을 보내면서 실제로 비옥한 그 땅의
열매들을 가져오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증명하며
이 실물을 보게 되는 군사들이나
백성들이 이 땅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고
정복의 의지를 불태우게 하려는 것을 엿보게 된다.

따라서 정탐꾼들은 돌아오는 귀로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두 사람이 어깨에 메었다고 했으니
포도 한 알이 사람 주먹만 한 크기일 것이며
석류와 무화과는 사람의 머리통만 했을 것인데
이는 실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을 증명하는 실과들이 되었고
바로 꿈에 그리던 바로 이 약속의 땅 앞에 지금 그들이 지금 서 있으며
이제 들어가서 얻으라는 믿음의 도전 앞에 그들을 세우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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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을 정리하면서 마음 깊은 울림으로 닿아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수 없이 약속하신 것들을
인간의 신중함(소심함)을 앞세운 두드려 봄을 통하여
그르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앞에 놓인 축복의 땅 가나안은
이미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해서
수 없이 후렴처럼 반복하며 그 후손들이 받을 것이 약속되었는데
출애굽 제 1세대는 적어도 아브라함 때로부터 시작하여
오백여년이 지난 즈음, 바로 이 축복의 약속을 받게 되는
그 절호의 시기에 생존한 당사자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보다 인간적인 신중함을 내세운 결과로
정탐꾼들을 보내게 되고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약속보다는 현실적 판단을 앞세운 선택으로 그르치게 되는 것을 본다.

주님!

11일이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을
몇 달에 걸려 도달한 이스라엘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기보다
행진을 멈추고
또 다시 정탐꾼들을 보내 것을 보면서

때로 나의 인간적인 계산과 소심함이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으며
크신 하나님을 제한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바란 광야에서 떠오른 구름 기둥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머물지 않고
아직 언약궤 위에 떠있어
갈 길을 재촉하였는데

인간적인 생각으로 정탐을 요구하며
40일을 지체한 결과가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이제 내일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주님 !

이스라엘이 정탐꾼들을 보내는 것이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후에는 치명적인 실수가 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본래 원치 않은 것을
내가 원하여 억지로
허가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구름기둥의 이동을 따라가는 것처럼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내가 멈추고 서야할 곳을
분명히 따라갈 수 있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