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교회의 교훈을 우리 교회에 적용하기
▼ 민수기 16:12-22
묵상내용
어제 오늘의 말씀에서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은
광야 40년 여정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에 발생한 것 같다.
이 불행한 사건을 끝으로 해서 이어지는 민수기 20 장은
광야 40년을 마감하는 마지막 해에 있었던 일로
다시 가나안 접경인 가데스에 돌아와 있는 이스라엘이
므리바 물가의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때가 바로 (출애굽 제 40년)정월로 소개되고 있다.[20:1]
비 한 방울 오지 않고 쌀 한 톨 얻을 수 없는 광야에서
40 년을 헤맸으니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하심 가운데 지냈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지쳤고
불만과 불평이 목에까지 차올랐으리라고 생각이 되며
어쩌면 고라 일당은 이런 광야 40년 세월에 대한 울분을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표출시킨 것이라고도 이해해보게 된다.
그러나 고라와 함께 당을 지어 반역한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의 부름을 거절하며 대적하는 말 가운데서
그들이 이처럼 광야에서 40년을 지낼 수밖에 없었던
무서운 불신앙을 읽게 되는데
그들이 지난 광야 40년 세월을 회고하는 이야기 속에는
하나님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조금도 없고
오직 인간 지도자 모세의 지도력 부족으로
자신들이 이같이 죽도록 고생만 하며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이 막혀버린
출애굽 1 세대들이 무슨 희망으로 살 수 있었을까,
동정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비록 하나님을 믿지 못한 죄로
이 고생을 하며 지냈을지라도
자신들 부모세대 때문에 함께 고생하는 자신들의 자식들만이라도
부모 세대의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섬기며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기를 소망으로 삼고 살아야 마땅하였지만
그들은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오직 자신들에게 이런 복이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며 총회를 뒤집어엎으려 하였으니
신앙적으로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너무 잘못 나간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반역의 절정은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앞에 모아놓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는 찰나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것이다
40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하는 험악한 위기의 순간에
그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던 것처럼[14:10]
이스라엘 총회의 판을 깨트리고 뒤집으려는 고라의 반역이
온 회중을 모아놓고 시도되려는 위기의 순간에
다시 한 번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서
지금 이 회중을 이끌고 인도하는 것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신 것을 드러내시며
그의 진노와 심판을 타나내시고 있는 것이다. [16:19-21]
묵상적용
이스라엘 총회를 이끌고 있는 모세와 아론의 권위가 도전을 받고
판이 깨지려는 위기의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 깊이 닿아지는 화두가 있다면 그 것은
하나님께서 신앙공동체 교회에 세우신 인간 지도자들에 대해
내가 어떤 상관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 이라는 것은
이미 출애굽 때부터 시작해서 충분히 검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야 40년이 마쳐가는 시점에 이르러서까지
그들의 권위와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그렇게 대적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것 뿐 아니라
은혜가 메말라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으며
이러한 일들은 오늘 우리시대 하나님 자기 피로 값 주고 세우신
신약교회에서도 충분히 적용되어야 할 말씀을 받아 드리게 된다.
교단 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교단이나 교회들이
한 교회를 이끌어 가는 담임목사[위임 목사]를 세우고자 할 때
처음 청빙해와서부터 적어도 2년 동안은 임시목사로 예우하며
그가 우리 공동체[교회]를 이끌어갈 만한 지도자인지
검증 기간을 가지게 되는데
이렇게 충분한 검증 기간을 거쳐서 지도자로 세워졌다면
그 인간 지도자를 통해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바라보며 따라가는 것이 성경적 믿음이라고 받아 드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충분한 검증을 거쳐서 지도자로 세워졌다하여도
어떤 교회들은 자체 교회 규정[정관]을 만들어서
보통 7년 혹은 10년을 주기로 지도자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하여
인간 지도자의 지도력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기도 하는데
이는 연약한 인간 지도자를 깨어있게 하고 영적 긴장으로 이끄는
매우 좋은 제도로도 이해하게 된다.
주님
인간의 눈에 보기에
초라하게 보이는 교회와 인간 지도자라도
그 위에 엄위하신 주님이 계신 것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따라갈 수 있는 천국백성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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