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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시편

▼ 시편 72:12-20 예수 나의 왕으로 모신 자의 축복

by 朴 海 東 2017. 12. 29.

예수 나의 왕으로 모신 자의 축복

 

시편 72:12-20

[오늘의 시편: 새번역 시편72:12-20]

그는, 가난한 백성이 도와 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건져 주며,
도울 사람 없는 불쌍한 백성을 건져 준다.
그는 힘없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가난한 사람의 목숨을 건져 준다.
가난한 백성을 억압과 폭력에서 건져, 그 목숨을 살려 주며,
그들의 피를 귀중하게 여긴다. ..........(중략)

땅에는 온갖 곡식이 가득하고, 산등성이에서도 곡식이 풍성하며,
온갖 과일이 레바논의 산림처럼 물결칠 것이다.
그 백성은 풀처럼 성읍 곳곳에 차고 넘칠 것이다.

그의 이름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태양이 그 빛을 잃기까지 그의 명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뭇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고,
모든 민족이 그를 일컬어서, 복 받은 사람이라 칭송할 것이다.


1.
과부 사정 과부가 알아주고 홀아비 사정 홀아비가 알아주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의 사정 지독한 가난을 경험해본 사람이 알아줄 수있고
근심 걱정 고통 가운데 허덕이는 사람의 사정은
인생 고난의 깊이에 들어간 본 사람이 알아줄 수 있다.

간혹 우리 시대에 지도자 잘 못 만나서 고통당하는 나라들을 보면
가난이 무엇인지 고난이 무엇인지 인생의 깊이를 거치지 않은 채
권력의 정점에 올라 다스리는 사람들의 지도력 부재 때문에
백성들이 굶주림과 헐벗음과 혹은 내란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참혹상을 보게 된다.
가깝게는 우리 머리 바로 위에 있는 북한이 그러하고
지금 수년 채 전쟁 통에 시달리는
동남아 일부 나라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도 보게 된다.

그들은 아비의 마음으로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끌어안아 줄만한 마음이 없어서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백성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지도력 부재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기보다는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며 폭력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은 멀리 내다 볼 것도 없이
이 땅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기도하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통치자]는
자기 백성의 가난과 고난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어서
그들의 가난과 고통과 억울함을 어루만지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이 성경의 원 저자이신 성령께서는 성군 다윗의 기도詩를 통하여
진정한 지도자[왕: 통치자]는 어떤 모습 이어야 하는지 보여주시며
더 나가 궁극적으로 모든 왕의 왕이시며 모든 주의 주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말씀이라고 가르쳐주신다.

2. 오늘의 시편이 가리키는 자기 백성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마을 요셉과 마리아가 가정을 이룬
가난한 집의 맏아들로 태어 나서서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의 동생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가난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체험하며 지나신 분이시다.[마13:55-56]

후에 공생애 사역 가운데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비유들 가운데
밤에 손님이 왔는데 먹일 것이 없어서
이웃집에 가서 강청하여 떡을 얻어오는 이야기들은
그냥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난한 자신의 가정에서 절로 나온
생활의 이야기를 그렇게 나타내신 것이다. [눅11:5-8]

예수님은 어린 동생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파 우는 거 때문에 마음 아프기도 하셨는데
작은 마을 나사렛 마을의 목공소 집의 변변치 않은 수입으로
열 식구 목구멍 풀칠하기도 어려운 지독한 가난을 몸소 경험하시고
아버지 요셉이 돌아가셨을 때는 자신이 가업을 이어받아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서른 살 쯤 되시어 가정을 부양하시던 일을
이제 그만 동생들에게 맡기고 집을 떠나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제자들]에게 선포하신 천국 헌장으로써
가장 먼저 선포하신 팔복의 으뜸으로
(지금) 너희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라고 선포 하셨다[눅6:20]

기도하기

오늘의 시편 첫 구절이
“그는, 가난한 백성이 도와 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건져 주며,
도울 사람 없는 불쌍한 백성을 건져 준다.
그는 힘없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가난한 사람의 목숨을 건져 준다.[72:1-2]로 시작되는 것은
인생의 지난한 가난의 고통을 경험하신 분으로써 하시는 말씀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 보다 훨씬 앞선 시대를 살았던
다윗의 시편 72편을 그대로 인용하는 듯
장차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야[구원자]를 그리면서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시는 분
으로 묘사하고 있다.

3. 그러나 오늘의 시편에서 이러한 지도자를
더욱 눈부시게 조명하는 내용은
그가 가난한 자들의 생명을 강포한 자의 손에서 건져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되리라는 것인데[72:14]
이는 그가 사람의 가치를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요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나 외모로 하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히 여겨 그들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며
그의 나라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신원하여 주는 분으로 묘사한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러한 지도자[왕: 통치자]가 받을
칭송과 영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72:15]

그의 다스리는 나라는 하늘의 복을 받아 자연계에도 복을 받아
산꼭대기의 땅[식물이 자랄 수 없는 쓸모없는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열매들이 레바논[산림]같이 흔들리며 그의 백성들이 사는 성은
인구가 증가되기를 땅의 풀같이 왕성하리라고 한다.[72:16]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72:17]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나]는 이러한 지도자[왕:통치자]를 가졌는가 자문하게 되며
이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성취된 것으로 받아 드리게 된다.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이 바른 지도자[왕]이 되기를 바라며
드려진 이 기도가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완성되어
내가 그의 복된 다스림을 받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중의 복인지 마음 깊은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며
내가 그의 복을 받아 누리는 자로써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백성 된 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천국백성의 헌장으로써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할 것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더불어 그의 통치가 의와 공평과 정의에 기초하는 것처럼
나도 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그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것처럼
나도 그가 보여주신 사랑을 따라서
이 사랑의 실천자로 살아야할 것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어제는 가족 함께 가까운 김포공항에 가서 외식하고 영화도 보았다는데
벌써 600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신과 함께 -죄와 벌- ”을 관람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 말에 이런 영화가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 가운데 방영되고 있는 것은
사람은 신 불신을 떠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혼의 존재여서
내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런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저승에 온 망자가 그를 안내하는 저승 삼차사와 함께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비록 불교적 바탕에서 만들어진 영화여서
내용 그대로 받아드릴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자기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신이 자신의 몸으로 산 한 평생에 대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을 가질 수 있었다.

망자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다행히 원귀가 되지 않고
구천에 머무는 49일 동안
이 심판을 잘 통과하기 위해 불가에서는 49재를
천주교에서는 50 제[탈상미사]를 드리는데
불가에서는 망자가 7개 지옥을 잘 통과하여 환생할 수 있도록
망자를 위해 절에 가서 많은 비용을 들여 제를 드리는 것 같다.

큰 절에서는 보통 이 49제를 위해 작게는 삼사백 만원 많게는
천만 원 이상 비용을 쓴다고 하니 이것이 다 쓸데없는 일인 것은
주님이 말씀하신바 그가 육신으로 살아 있을 때
모세와 선지자들[복음 전도자들]에게 듣지 않으면[눅16:31]
그들을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영화“신과 함께”에서 망자가 통과해야할 구천의 세계는
무섭기가 그지없고 특별히 염라대왕 앞에 서기까지
7개 지옥의 재판장들 앞에 서는 것은 더욱 무섭고 떨리는 일인데

오늘의 말씀 시편 72편의 묵상을 접으면서
우리에게 있는 영원한 왕이시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재판장이 되시어서[행10:42]
오늘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생과 내생을 다스리는 예수님이
나의 왕 나의 보호자, 나의 통치자가 되시는 것을 생각할 때
내가 이 존귀하고 보배로운 왕을 만나 복을 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올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