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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이사야

▼ 이사야 41:14-20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 이스라엘 사람들아

by 朴 海 東 2018. 4. 10.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사야 41:14-20

묵상내용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41:14]


오늘의 말씀은 첫 구절 첫 단어에서부터 콱 막히고 들어간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자기 백성이자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버러지
그러니까 밥버러지 같은 놈들 이라고 호칭하는 것일까?

이전에 나온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번역했는데
아무튼 버러지든 지렁이든 하나 같이 흉측하고
(발이 없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부정한 동물로 지칭하심이다.

성경에서는 발이 없는 동물(벌레)들을 부정한 동물로 취급하고
이에 접촉되는 사람 역시 부정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하나님은 버러지 같고 지렁이 같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얼마나 가련하고 흉한 존재들인지 이렇게 표현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버러지요 지렁이라고 하시는 것일까
요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와 가까운 텃밭을 일구고 있는데
흙 한 삽 떠낼 때 마다 여기저기서 지렁이들이 나오는 것을 보며
그래도 이놈들이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 죽지는 않게 하려고
꿈틀거리는 놈들을 도로 습기 찬 츱츱한 땅에 묻어주곤 하는데

오늘의 말씀에서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이 버러지요 지렁이로
호칭되는 것을 보면서 왜 지렁이라 하시는지
지렁이의 생리를 생각해 보며
지렁이와 이스라엘과 나를 연결해서 묵상해 보게 된다.

지렁이는 빛으로 나오면 금 새 말라 죽어버리기 때문에
언제나 빛이 쪼이지 않는 음침한 곳에서 서식하게 되는데
빛으로 나가기를 싫어하며
어둡고 음침한 죄악의 자리를 좋아하는 것이 이스라엘이며
곧 적나라한 나의 모습을 반영함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왜 나는 하나님의 뜻을 즐겨 행하는 것보다
때로는 죄의 낙을 좋아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일까?
왜 나는 빛의 자녀가 되었으면서도
때로는 빛이 들어오지 않거나
그냥 어두 침침한 곳을 분위기 좋은 곳으로 더 선호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내 안에도 여전히 버러지요
지렁이 같은 생리가 잔존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렇게 부정하며 상대하기 힘든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며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하시고
너의 구속자[Redeemer]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하시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공의를 집행하는 의의 도구들로 사용하시겠다고 하시며[41:15]
목이 갈한 자가 물을 구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저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시며[40:17]

그들을 다시 고토로 돌이켜
황패해진 그 땅을 푸른 나무들로 뒤덮으며
골짜기에 샘물 터지고 광야에 물이 흐르게 하신다고 하시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자기가 선택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전능자의 주권으로만 가능한 것을 엿보게 한다.[41:18-20]

묵상적용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버러지요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하시고
그들이 포로로 던져진 땅에서 돌이켜
다시 그들의 고토로 돌아오게 하시며
그들의 버려진 땅을 다시 회복시켜
황무지가 변하여 낙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면서

비록 나는 죄인이지만 나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들이
나의 의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택하여 주시고
나도 영적 야곱의 자손이며 이스라엘이 되게 하여 주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결과 인 것을 다시 한 번 곰 새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바벨론 포로지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오늘의 말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주권 성을 강조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나” 곧 “내가”를 열 번이나 언급하시는 것을 보면서
지금 내 모습 나의 나 됨은 나의 의나, 나의 잘남이 아니요
오직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요 축복인 것을 고백하게 된다.

오늘의 묵상을 접으면서 학생시절 즐겨 불렀던 찬양
Why me Lord ( kris kristofferson 노래)
[우리말 번역 “벌레 같은 내게 ”]가 생각나
오늘의 묵상을 마감하는 찬양의 기도 시로 올려본다.

벌레 같은 내게 은혜 베푸는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어느 것 하나도
자격 없습니다.
오~ 주님, 예수 나를 도와 주소서
예수 오 나의 주님 X 2
........
1.
Why Me Lord What have I ever done
To deserve even one of the pleasures I"ve known
Tell me Lord what did I ever do to deserve loving you
And the kindness you"ve shown
Lord heavenly Jesus I praise Him
So help me Jesus I know what I am
Now that I know that I needed you so
Help me Jesus, my soul"s in your ha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