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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17:16-23 전도의 접촉점으로 삼은 알 수 없는 신에게 [To Unknown God]

by 朴 海 東 2018. 7. 19.

전도의 접촉점으로 삼은 알 수 없는 신에게 [To Unknown God]

사도행전 17:16-23

묵상내용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트로이[드로아]에서 바울 선교팀과 합류한 후
바울과 밀착 되어 그가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것 같은데
오늘의 말씀은 철학의 도시 아테네[아덴]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부터 베뢰아까지 원정 핍박으로 추격해 온
극렬 유대주의자들을 피해 급하게 배를 타고 아덴으로 오는 바람에
실라와 디모데을 떨어트려두고 아덴으로 왔는데[17:14-15]

바울을 밀착 동행한 누가는 사도요 선교사인 바울의 눈으로 통해
비쳐진 최고 지성의 도시 아테네에 대해 기록한 오늘의 말씀을 통해
오고오는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1. 한 도시를 지배하는 영들(Spirits) 분별하기

이미 주전 4~ 5세기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배출한 아테네/아덴은
건축/조각/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세상을 압도하고 앞서갈 만한
최고 지성의 도시였지만 바울의 눈에 비친 그 도시는
귀신들이 우굴거리는 도시요 초등학문에 지나지 않는 헛된 지식으로
가장 고상한 척 하는 가면의 도시인 것을 간파하였다.

그들의 아름다운 건축술로 지어진 건물들은
모두 귀신들을 섬기는 신전들 이었고[고전10:20]
당시 에피쿠르스나 스토아 학파같은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것들은
인간에게 정한 해답을 줄 수 없는 번쇄한 이론과 주장들 뿐이며
그들이 철학적 사고로도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추구하는 종교적 열성에서도 미신적인 무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알 수 없는 신(Unknown god)에게 라는 제단에서 특히 돋보인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 제국을 무너뜨리고 정복한 후
그래도 앞서가는 그들의 문화적 수준을 존중하여
자유 동맹 도시의 자격을 부여했고
아테네 사람들은 이러한 자신들을 최고의 지성으로 자부하였지만
바울은 이 세계 최고의 도시가 귀신들의 처소요
미신의 처소인 것을 간파하였는데 이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우리가 한 도시를 바라볼 때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분별의 안목을 제공해 준다.

한 도시가 뿜어내는 문화적 껍데기의 화려함에 갇히지 아니하며
그 도시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파해낸
선교사 바울의 영적 안목과 분별이 나에게도 있기를 기도한다.
왜냐하면 여기서부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달코자 하는
선교와 구령의 불길이 타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 거룩한 격분으로 촉발되는 하나님을 위한 열심:

화려하고 웅장하게 보였던 아덴의 도시를 걸으면서
그 도시의 껍데기에 매료되지 않고
그 도시가 영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간파한 바울은
마음으로부터 타오르는 격분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존중 받아야할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허망한 신들을 숭배하는 나머지 신전과 제단들을 세우고
심지어는 신들의 비위를 다 만족시켜 드리지 못하는
공포심으로 세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까지 보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철저한 율법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을 바울에게 있어서
아덴의 거리에서 목격한 우상들과
우상의 전각으로써 신전들과 제단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져야할 영광이
귀신들의 장난으로 찬탈되고 있음을 간파했고
악한 영들에게 속아서 우상/귀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을 볼 때
그는 속에서부터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십계명의 처음과 두 번 째 계명이 오직 하나님만 섬길 것을 강조하며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오늘 나는 내 주변에서 이러한 우상들과 우상의 숭배자들을 볼 때에
바울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 때문에 고통스럽게 느끼고 격분했던
그 거룩한 분노가 내 안에도 있는지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된다.

그리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첫 번 째 내용처럼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인
인간들에게서 거룩히 여김[존중] 받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묵상적용

3. 전도의 접촉점으로 삼은 알 수 없는 신에게 [To Unknown God]

장로교의 창시자 존 칼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 마음에 사람의 창조자인 하나님이 없이는 결코 만족할 수 없도록
종교의 씨(The Seed of Religion)를 심어주셨다고 했다.
바울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해 “알 수 없는 신”에게라는 제단을 만든
아덴 사람들에게 이 종교의 씨로써 종교심을 언급하면서
전도의 접촉점으로 삼고 있는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철학의 도시 아덴의 사람들이
극심한 종교심의 발로로 찾았던 그 알 수 없는 신의 본체로서
나의 주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섬기게 된 것을
내 일생의 최대의 축복이며 선물인 것을 감사드린다.

아덴 사람들이 종교심의 발로로 추구하고 찾았던
알 수 없는 신으로써 그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이성적 노력으로도 찾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인간에게 자기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셨으니
세상에 이것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에 종교심은 가득하지만 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참 하나님을 대신하는 헛된 우상이나
하나님의 창조의 결과물인 자연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바울이 시장과 토론의 저자 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변론했던
하나님을 위한 그 열심이 오늘 내 안에서도 불타오르기를 기도하며

나도 바울처럼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참 하나님을 증거 하기 위해
내가 접하는 내 삶의 또 다른 아고라와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예수님과 부활을 증거하는 말씀의 자리에 서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