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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17:24-34 바울의 전도 설교에서 배우는 것 (2)

by 朴 海 東 2018. 7. 19.

바울의 전도 설교에서 배우는 것 (2)

사도행전 17:24-34

묵상내용

전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전도 대상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
농부에게는 농사 이야기를 통해서
어린이에게는 어린이 수준에 맞추어
접촉점을 찾는 것처럼 바울은 가는 곳 마다
그가 접촉하는 사람들의 눈높이를 중시하고 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행한 전도설교는
루스드라에서 전한 전도 설교를
좀 더 확대시킨 내용을 담고 있는데 [행14:15-18]
그것은 처음부터 특별계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같은
일반계시로 접근하여 특별계시의 꽃이 되는
인간의 구원자 예수님에게까지 연결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이방인들에게 마치
기독교의 입문서처럼 보이는 오늘의 말씀에서
인상 깊게 남겨지는 말씀은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내려 주시는 분이시며[17:25]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인간이라도
그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가운데 나타난
자연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일하심을
더듬어 찾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17:27]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인격적 피조물인
인간에게 대하여 한없이 자비로우신 우리 하나님을
배우게 되면서 그를 향하여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 개혁교회의 조상들이 전수해준 신앙의 총체서인
웨스트 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 1문, 제 1답을 보면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그 해답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 하였다.

바울의 전도설교가 강조하는 두 번째 문구 내용처럼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 그 부족함을 채우시려고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자신의 창조 가운데 반영하신 것이며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 인간의 섬김을 받으려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자신의 창조자인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즐거워하고 만족하며 행복하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을
바울의 전도 설교 가운데 배우게 된다.[17:25]

그러나 기독교 입문서로써 바울의 전도설교가 보여주는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이 자비로운 하나님을 등지는 인간들에 대해
심판의 날과 심판자가 정해졌다는 경고도 함께 전한다.

따라서 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지 않고
헛된 우상을 만들며 하나님이라는 신을
우상의 전각 속에 가두고 있는 에테네 시민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이러한 답답한 인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지나간 세대에서는 간과하셨지만
이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심으로
믿을만한 증거를 주신 지금 이 새로운 시대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 사람(예수)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17:30-31]

고집부리고 거절하는 사람들을 돌이키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사용한다는 말처럼
바울의 전도설교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 이라는 두 가지 명제는
오늘 내가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꼭 유념하여 사용해야 할 것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묵상적용

더불어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행한 바울의 전도설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돌아온 자는 겨우 몇 사람인데
성경이 이름을 밝히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17:34]
그리고 이름과 성별을 밝히지 않는 몇 사람이라고 한 것을
다른 도시에서 전도한 결과와 비교했을 때
이것은 실패한 전도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애당초 아덴은 바울의 전도 계획에 들어있지 않았고
베뢰아의 핍박을 피해 급하게 지나가는 도시 였는데
건축/조각/문화/예술 같은 볼거리가 많은 이 도시에서
관광하는 것에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의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짜투리 시간을
전도의 기회로 선용한 것 체로써 의미가 있으며

또 이 도시에서 전한 바울의 전도 설교가
무엇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해석하기보다
자신들을 지성인으로 자부하는 아덴/아테네 사람들의 교만이
아직 복음을 받아드리기에 준비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바울이 이 도시 아덴에서 많은 열매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우선 복음의 씨를 뿌리고 지나가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의 전도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고 이해하게 되는데
이어지는 사도행전과 서신서에서는 아덴이 속한 아가야 지방 전체가
복음으로 충만하여 지는 결과를 볼 수 있게 때문이다.[고전1:16-17]

누군가의 말처럼 성공적인 전도란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인데

추수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그의 일꾼들을 사용하실 때
혹은 씨 뿌리는 자로
혹은 이미 익은 열매를 거두며 따는 자로
각 각의 상황에 따라 사용하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