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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18:9-17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by 朴 海 東 2018. 7. 27.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사도행전 18:9-17

묵상내용

1. 밤에 환상 가운데 주신 말씀에서 배우는 것 [18:9]

유대인들의 반대로 고린도의 회당에서 하던 집회를 포기하고
이방인 회심자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때
바울은 밤중에 환상 가운데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8:9]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바울의 선교사역 전체를 놓고 볼 때
주님이 직접 바울에게 나타나시는 환상을 통해
직접 말씀하시는 계시는 세 번 나타나고 있는데
오늘의 말씀처럼 고린도 교회를 시작하면서 이고

두 번째는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유대인 극렬주의자들에게 체포되어 죽을 위기에서
로마군인 천부 장을 통해 건짐을 받고 [23:11]
군대 막사 안에서 임시 보호를 받는 밤중에 나타나셨으며

세 번째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배에서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주의 사자를 통해 나타나 말씀해 주셨다.[27:23-24]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이 환상의 계시가 모두 밤중에
주어진 것이고 위기 가운데 격려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중차대한 시기에 나타나주셨다는 것이다.

물론 드로아에서도 밤에 마케도냐인의 환상을 본 것도 있으나
이것은 개인적인 격려 차원에서보다
선교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환상이었고
또 주님 자신이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마케도냐인을 등장시켜서 뜻을 전달하신 환상이었다.[16:6-10]

그러고 보면 바울의 선교 여정 가운데 환상을 보고 따라가거나
격려를 받은 것은 그리 많지 않았고 (3~4회)
대부분은 바울 자신과 그의 동역 자들이 기도하면서 계획하고
추진해 나가는 선교사역 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주님은 나 자신과 우리 선교 팀 혹은 우리 교회가
기도하면서 선교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갈 때
주님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통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사와 결정을 따라 진행되도록 존중해 주시지만

때로는 바울의 경우처럼 특별히 위기에 처했을 때
혹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들어섰을 때
혹은 외롭고 감당할 수 없는 위협에 빠졌을 때
가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개입하신다는 것을
바울의 환상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배우고 이해하게 된다.

2.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8:10]

고린도라는 도시는 후에 고린도 전서와 후서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신전 문화를 가진 우상 숭배의 도시며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했고
특히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신 말씀이 은혜로 닿아진다.

한 도시에 복음이 전해지고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곧
주님이 다스리시는 주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며
교회의 품을 통해 주의 백성들을 불러 모우시고 양육하시며
천국의 일꾼들로 세우신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한 도시 안에 세워지는 교회들의 위상과
그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된다.
내일 또 주일을 맞게 되는데
나 같은 죄인을 자기 백성 삼으신 주님께 예배로 영광 돌리며
주의 백성 된 성도들로 더불어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겠다.

묵상적용

3. 회장장 소스데네 이야기{18:17}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에서 사람들에게 분풀이로 매를 맞는
유대인 회당장 소스데네 이야기가 마음에 남겨진다.
그는 앞선 회당장 이었던 그리스보가 온 가족으로 더불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며 회당장 직을 내려놓았을 때[18:8]
그 후임으로 회당장이 된 것 같다.

그런데 바울의 선교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극렬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 총독 갈리오의 법정으로 데려 갔을 때
갈리라오가 이런 종교적인 문제에 개입되기를 원치 않고 내치자
당시 이 법정을 지켜보았던 비유대인[헬라인]들이
그렇지 않아도 보기 싫은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일어나서
대표로 회당장 소스데네에게 분풀이를 했고
그는 하마터면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구타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리에서
도리어 비 유대인들에게 구타당한 사람이 되었으니
무언가 엮여도 한참 잘 못 엮여진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나의 관심은 이 사람 소스데네의 이름이
후에 고린도 교회를 향해 보내는 바울의 편지 첫 줄에서
바울과 함께 있는 사람으로 다시 등장되고 있는 점이다.[고전1:1]

물론 세상에는 동명이인들이 많아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가 앞선 회당장 그리스보의 뒤를 이어
후임 회당장이 된 것으로 보아 먼저 예수를 믿은
앞선 회당장 그리스보의 지인으로서 그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아마 이 때 사람들에게 구타당한 사건이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소스데네도 그리스보처럼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 아굴라 부부를 데려간 것처럼[18:18]
그도 동행한 사람들 중에 들어있었다고 생각이 되는데
이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그가 아굴라 부부에 의해 시작된
에베소 교회에서 그는 아굴라 부부와 함께 있었으며

바울이 3차 선교여정 중 에베소에 장기 거주 하면서
고린도를 향해 보내는 편지에서 자기와 함께 있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은 생략하면서도 고린도인들이 잘 알고 있을
(전 회당장) 소스데네를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고린도의 유대인 회당장 소스데네의 구타 사건을 생각해 보면서
세상에는 재수 없게 당하고 엮이는 일들이 많지만
오히려 이러한 일들 때문에 더 좋고 복이 되는 일들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는 날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모두가 재수 없게 여기고 기피하는 십자가를 진 것 때문에
도리어 예수님을 믿게 되고 후일에 초기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들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중요한 일꾼이 된 것처럼
고린도의 유대인 회당장 소스데네도 그러하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주님!

살아가면서 때로는 내가 원치 않는 일이 생기고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일이 꼬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우연이 없으며
화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것을 배웁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는 동안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항상 주님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신앙과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