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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22:12-21 부름 받은 소명의 자리 빨리 깨닫기

by 朴 海 東 2018. 8. 2.

부름 받은 소명의 자리 빨리 깨닫기

사도행전 22:12-21

묵상내용

4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서
짜증나다가도 이 불볕더위 속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없기를
걱정하며 주님께서 이 땅 이 백성들 가운데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비를 보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요즘 하루하루입니다.

우리 앞선 조상들의 시대에는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나라님[임금]이 나서서 나의 부덕이라고 하며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요즘 우리 정부의 지도자들은
어떤 자세로 이 무더위를 지나가고 있는지 상상해보는데
아마 이 땅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비를 구하는 마음은 한결같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주님!
연일 불볕더위로 고생을 하게 되면서 비를 구하게 되니
정말 메마른 심령에 성령의 단비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스레 깨달아 집니다.
지금 이 무더위의 날들을 잘 지나가게 하시고
때를 따라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단비가 이 땅에 내리게 하소서
----------- ----------- ------------- -------------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고 폭동을 일으킨 유대인들 가운데서
바람처럼 나타난 로마군 천부장의 도움으로 군인들에 의해
로마군 수비대 계단으로 옮겨지면서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향해 연설할 기회를 얻게 되고
자기간증을 통해 유대인들이 반대하는 예수를 증거 하는데
오늘의 말씀은 자신이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
빛 앞에 거꾸러져 갈 바를 모를 때 주님이 보내신
아나니아를 만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주님의 제자 “아나니아”에게 배우는 것:

주님께서는 차후 세계 선교의 대표 주자가 되며
신약성경의 삼분의 일을 쓰게 될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교리와 신학을 정립하게 될
위대한 사도며 충성된 종인 바울을
성경과 역사 앞에 출현시키게 되는 가교적 인물로서
다메섹에 사는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를 사용하십니다.

그가 평소 주님과 막힘이 없는 교제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적절한 타이밍에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사울[바울]을 만나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도 주님께서 필요할 때 쓰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주님과 막힘이 없이 깨어있는 사람인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바울은 자기 간증을 통해 아나니아에 대한 성품과
그의 사람됨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데 바로 이 점이
이 사람 아나니아가 주님과 막힘이 없는 교제 가운데
살아간 비결이라고 생각하게 되며 나도 필요시에
주님께 쓰임 받으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각성을 받습니다.

1) 율법[말씀]을 따라 경건하게 살기[22:12a]
2)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칭찬들을 만하게 살기[22:12b]
3)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라도 형제자매로 대하기[22:13]

주님 앞에서 말씀을 따라 경건하게 사는 것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주변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말씀에서 더욱 귀하게 받아드리게 되는 것은
그가 기독교의 핍박자이기 때문에
만나기가 두렵고 심히 싫을 수 있는 사울을 향해
“형제 사울아” 라고 호칭하는 대목입니다.

마음에 거부반응이 드는 사람에게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형제자매로 대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선결조건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타난 아나니아와 바울의 만남을 보면
아나니아도 처음에는 사울[바울]에게 가기를 주저하며
이러 저러한 이유를 대기도 하였는데
가라사대 가라! 고 하시는 주님의 부음을 따라 찾아가서
주님의 도구가 되어 사울의 눈을 다시 뜨게 하고
주님을 대신하여 사명을 전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행9:10-19]

그러고 보면 사울 한 사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스데반의 순교가 있었고 [행7장]
주님이 친히 빛 가운데 그에게 나타내셨으며[행9장]
또 아나니아를 통해 바로 세우게 되는 것을 보면서
주님께 쓰임 받는 한 사람의 등장 배경에는
이처럼 여러 과정과 필요한 사람들이 등장되는 것을 봅니다.

최근 선교지 C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정교회들의 박해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돌아와 있는 요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엉거주춤한 나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이 한 없이 초라하고 작아 보여서
주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기도하곤 하는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 쪽 문이 막히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 놓으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되며
주님과 복음을 위해 주님이 진행시키는 일을 위해
나도 아나니아처럼 그 과정에 필요한 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기

주님!
나도 아나니아처럼 준비 된 제자가 되어
주님의 나라를 전진시키는 가교를 위해
한 교각에 들어가는 작은 돌맹이라도 되게 하옵소서

묵상적용

2. 부름 받은 소명의 자리 빨리 깨닫기

“발 뻗을 자리를 보고 누우라”는 말처럼
바울은 처음부터 부름 받은 소명이 [행9:15-16]
자기 동족 유대인보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였는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그 주변에서만 맴 돌자
주님께서 거의 반 강제로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가게 하신 것을 간증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회심하게 된 다메섹에서부터
유대인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자기를 살해하려는 사람들을 피해
밤에 광주리에 타고 성을 벗어났고
예루살렘에 가서도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사역의 열매는 없고 도리어 동일한 살해 위협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는 그가 받은 살해 위협 때문에
형제들이 그를 데리고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게 되는 것으로 나오지만[행9:30]

사실은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 간증처럼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는 배경에는
그가 성전에서 기도할 때 황홀경을 체험하며
주님께서 속히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에게 가라는
특별 명령을 받은 것이 그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저 유명한 다메섹 회심의 날에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로부터도 이미
이방인 선교의 사명이 있음을 전달받았는데[행9:15-16]
핍박 중에서도 여전히 유대인 선교에만 집착했던 것을 보면
주님의 뜻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봅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다고
내가 부름 받은 자리가 어디인지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빨리 깨달으면, 깨닫게 될수록 좋다는 것을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했던)바울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바울이 자기 발 뻗을 자리가 아닌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면 할수록 핍박만 가중되고 열매도 없었던 것처럼
나의 사역에 힘은 힘대로 들고 열매가 없을 때
나를 부르신 소명의 자리가 어디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주님!
나를 부르신 부르심의 자리를 빨리 깨닫고
그 곳에 올인 할 수 있는 사역이 되게 하옵소서.

3. 복음을 전할 때 정직하게 직선적으로 말하기

자기를 죽이려고 폭동까지 일으킨 유대인들 앞에서
바울은 지금 자기 간증을 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유대인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font color=brown>속히 예루살렘을 떠나거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을 듣지 않으리라
떠나가라!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22:18. 21]

지금 바울의 간증을 듣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들으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자신들을 포기하고
이방인들에게로 향하는 것 같은 말로 듣게 되어
불 난 곳에 기름을 얹는 것처럼 더욱 화나게 하는 말들이지만
바울은 하나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말하는데
그가 이런 수사법을 사용한 것은
그들에게 질투심을 유발시켜서라도
복음을 받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복음을 증거 할 때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신 것이라던 가
혹은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고 하신 것처럼[요4:16. 18]
상대방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서 때로는 듣기 거북한
말들도 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과 바울의 간증에서 배웁니다.

간혹 복음을 전할 때 죄/형벌/지옥 같은 이야기들을 빼놓고
하나님의 사랑/은혜/자비 같은 이야기만 말하여
절반의 복음이 되지 않도록 하며
때로는 상대방이 듣기 거북하여도
할 말을 다하는 전도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주님!
복음을 전할 때
말을 가려서 하거나 돌려서 하지 않게 하시고
직선적으로 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갖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