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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22:1-11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by 朴 海 東 2018. 8. 1.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도행전 22:1-11

묵상내용

바울은 폭동의 한복판에서 꼼작없이 죽을뻔 했는데
뜻밖에 천사처럼 나타난 로마군 천부장에 의해 살아난다
절대절명의 순간에 천부장이 백부장들과 군대를 동원해서
바람처럼 나타난 것은 주님이 그렇게 하게 하신 것인데
이로보아 주님은 그의 성도들을 위기에서 구하실 때
이처럼 그 상황에 맞는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을 배운다.

주님 자신은 로마군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받았으나
그의 종은 반대로 로마군에 의해 건짐을 받게 하시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사건인데 이로써 세상의 모든 것들이
주님의 손에 의해 통제 받는다는 것을 이처럼 알게 하신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하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서 도운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내신 사람을 통해서 도움 받은 일이 많이 있었는데
이러한 영적원리를 따라
나도 주님이 부리시는 영들[천사]처럼
오늘도 주님께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
어느 누군가에게 천사처럼 쓰임받게 되기를 기도한다.

1. 위기를 전도의 기회로

폭동의 와중에서 바울은 천부장의 비호 아래
로마 군인들에 의해 들리어 수비대 진영으로 옮겨지면서
천부장에게 부탁하여 백성들에게 변명의 기회를 얻는다.

바울은 로마 수비대 진영으로 올라가는 계단 꼭대기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며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어
보다 안전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변명의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그이 변명을 보면 폭도들이 오해하는 것 같은
율법과 성전의 거룩을 파괴했다는 오명을 벗는 변명이 아니라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 주 예수를 증거 하는
간증 전도의 기회로 삼고 있으니 그에게는 오직 예수로만
꽉 차 있어서 예수 밖에는 나올 것이 없는 사람인 것을 본다.

요즘 우리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메너리즘에 빠져
우리들의 교회도 전도가 실종된 것 같은 시대인데
언제 어디서나 **분 이상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나도 바울처럼 예수를 증거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 간증 전도의 위력

오늘의 말씀에서 가장 압권으로 닿아지는 말씀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사
하늘로 승천하사 아버지 보좌우편에 가 계신 주님께서
예수 믿는 자들의 핍박자 바울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다

사울아! 사울아!
(여기서 사울은 바울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22:8]ㅣ


초기교회의 극렬주의 핍박자 이었던 바울이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경험한 이 고백처럼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을
이처럼 극적으로 드러내는 고백 속에서
나는 오늘 이 순간에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난다.

사람들은 예수가 어디 있느냐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부활을 증명해 보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살아계신 주님을 증명하는 것은
무슨 이성적 논리나 설명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울과 사도들이 자신이 경험한 주님을 간증하는 것처럼
오늘도 성도들의 신앙과 삶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주시는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 속에서 가장 잘 증명되는 것을 배운다.

따라서 주님의 생애와 사역을 증거 하는 복음서들이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을 증거 하는 방법으로써
무슨 설명이나 논증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이 경험한 주님을 경험한 그대로 고백하며
케리크마[선포]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전도가 잘 먹히지 않고 이 시대에 유용한 전도의 방법으로써
나도 내가 경험한 주님을 증거 할 수 있는 간증 전도를 준비해야겠다.

묵상적용

3. 간증 전도의 생명력은 "정직"에 있다.

바울의 간증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에서 충격으로 닿아진 것은
바울 자신이 이 전에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는 자기 고백이다.[22:4a]

자신이 기독교의 핍박자로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는 이런 고백은
정말 숨기고 싶은 고백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직하게 자기의 고백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나님께 향한 잘못된 열심의 방향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던 그를
주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그 잘못된 열심의 방향을 주님께 향하도록 하셨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자신이 구원받고 주님의 종이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있을 수 없는 일로써
주님의 택하심을 따라 되는 은혜로 자기의 구원을 설명하게 되며
여기서 칼빈이 창시한 장로교의 신학적 교리로써 예정론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간증이나 간증설교를 할 때 바울의 고백적 간증처럼
조금도 숨긴다거나 혹은 부풀리기하지 않고
정직한 간증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진정 성령님이 역사해주시며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닿아지는 간증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정직을 생명으로 해야할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