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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당/사도행전

▼ 사도행전 21:15-26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융통성 있는 사람 되기

by 朴 海 東 2018. 7. 30.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융통성 있는 사람 되기

사도행전 21:15-26

묵상내용

얼마나 멀고 고단하며 험난한 과정 이었던가.......(?)
바울은 3차 선교 여정을 마치면서
심령/성령에 메인바 되어 예루살렘으로 향했는데
그간 도보로 걷고 또 걸었고 배도 수차례 갈아탔으며
마침내 예루살렘과 가장 근접한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했을 때
그곳 빌립 집사의 집에서 몇 날을 보낸 후
119 Km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곳 교회에 도착하게 된다.

물론 이번 방문은 아가야에서 부터 동행한
이방인 교회 대표자들과도 함께한 여정인데
이들 이방인 교회 대표들은
신앙의 모체 산실과도 같은 예루살렘 교회를 보고 싶었을 것이고
또 기근으로 고생하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갈2:10]
이방인 교회의 헌금도 전달하고자 함이었는데
막상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전교회적인 환영은 받지 못했고
다만 주님의 동생 야고보 장로를 비롯해
교회 지도자[장로]들의 환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21:15-18]

그러나 전 교회적인 환대를 받지 못한 것은 그만두고라도
바울과 그 일행들을 심히 근심되게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울이 이방인 선교에서 만났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바울이 율법의 파괴자라는 나쁜 소문을 퍼트려
예루살렘 교회 유대인 신자들에게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장로들은 바울에게 이 오해를 풀기 위해
율법의 결례를 행하는 의식에 바울이 참여하기를 권했고
바울도 기꺼이 이 결례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보임으로
유대인 신자들의 오해를 풀어주는데 동의하고 실행하게 된다.[21:21-26]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자신의 소신과 신념도 기꺼이 내려놓는 바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다.
그것은 마치 물이 자기를 담는 용기의 모양에 따라
혹은 둥근 용기에, 혹은 네모진 용기에도 담겨지는 것처럼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꺼이 자신을 상황에 맞추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완성된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사도이지만
그리고 자신이 믿는 바를 끝까지 고수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소신과 신념에도 투철한 사람이지만
지금 예루살렘 교회에 와서는 그곳 지도자들의 권유를 기꺼이 받아드리며
아직 율법에서 자유하지 못한 성도들을 위해서
자신을 율법 아래 있는 사람으로 처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에서 보여주고 있는 바울의 이러한 모습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는 주님이 판단하시겠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이 장로들의 권유를 받아 행한 결례의식 때문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결례의식의 만기가 되는 날 성전에 들어갔다가
아시아로부터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발견되고
그들이 일으키는 폭동에 휘말려[21:27절 이하]
여기서부터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가게 되는 단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을 내려놓으며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을 몇 가지로 정리해본다

1. 너는 선교사로서 사람들의 환대를 기대하지 마라

바울은 아가야로부터 15,000 키로 미터가 넘는 선교 지를 돌고 돌아서
예루살렘 까지 왔지만 전교회적인 환영은 받지 못했고
도리어 그의 선교 과정에서 보여준 복음 전파의 내용 때문에
율법의 파괴자로 오해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사실 요즘 한국교회 풍토상 선교사들의 방문을 꺼리며
선교사 자신들도 방문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가 직접 파송한 선교사들은 예외로 치더라도
대부분 협력선교사들은 십년이 지나도 부름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들은 선교사의 방문으로 교회에 부담을 줄까 염려하며
선교사들은 자신들을 부담의 존재로 생각하는 교회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방문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선교지로 나갔던 첫 해 여름 방학이 되어 돌아왔을 때
어디 한 곳 지친 몸을 뉘일 곳이 없어서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살고 있는 옥탑 방에서 세 식구가
한증막 같은 여름을 보내고 다시 선교지로 돌아간 기억이 있다.

선교지에서 실 컨 고생하고 돌아와서도 교회적인 환대는커녕
도리어 자신이 받고 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자신이 벗어던진
율법의 구속 아래로 자신을 내려놓고 있는 바울의 모습에서
내가 진정 위로받고 환영받을 곳은 이 곳 세상에서가 아니라
주님이 영접해 주시는 천국에서라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드린다.

묵상적용

2. 너는 네 맘에 맞지 않더라도 융통성 있는 사람이 되어라

사람이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의 소신을 꺾고
공동체의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 드리며
그들이 요구하는 상황에 맞춘다는 것은 결코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였다
이 것은 자신이 살기 위한 타협이 아니라
공동체의 입장을 세워주고 살려주기 위한 자기 포기였다

나는 이전에 젊은 목회자로 한 지 교회를 맡고 있었을 때
노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내가 믿는 신앙과 소신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끝까지 거절하고 내 입장을 견지하다가
심히 어려움을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바울의 모습에서
주님의 종 된 일꾼들이 가져야할 참 모습을 본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바울이 자신의 소신을 내려놓고 율법 아래 들어간 모습은
비굴한 것 같고 비난받을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권유를 따라서
율법의 결례를 행한 것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된 폭동에 휘말리고
그것이 자신을 죄수의 신분으로라도 로마로 가게 만들고
후에는 로마 황실의 전도의 문도 열게 되는 결과를 보면서
공동체의 권위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곧 주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배운다.

주님!
제가 모든 용기에 담겨질 수 있는 물처럼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융통성 있는 천국일꾼이 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나를 향한 주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내가 들어가는 길인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