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절묵상-20:13] 드로아에서 앗소 까지 걸어서 간 이유
▼ 사도행전 20:13-24
묵상내용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20:13]
드로아 교회에서 밤 깊은 줄 모르고 진행한 코이노니아 - 말씀 교제는
중간에 유드고라는 청년이 3층 창가에서 떨어져 죽게 된 사건으로
중단될 수도 있었겠지만 바울은 구약의 선지자들인
엘리야와 엘리사가 했던 소생 방법처럼 하여 [17:21.왕하 4:34-]
그의 생명을 돌아오게 하고 다시 3층 다락으로 올라가 떡을 떼어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더 이야기하고 떠났다고 기록한다.[20:9-11]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배를 타지 않고
도보로 걸어서 앗소까지 가고 다른 동료들은 배를 타고 가서
약속된 장소인 앗소 항에서 만나기로 일정을 조정한 것을 보여준다.
이 때 이 책의 저자 누가는 바울과 동행하지 않았고
배를 타고 먼저 떠난 일행 가운데 자신도 포함된 것을
"우리"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처럼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났기 때문에
바울이 도보로 걸어서 앗소 항까지 가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는 특별히 걸어서 가고자 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고 있다.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나의 추측으로 쓸 수 없기 때문에
나도 아무것도 쓸 것은 없지만 한 가지 짐작이 가는 것은
바울은 드로아에서 혹은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가는 여정 가운데
자신이 꼭 들려야하거나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이렇게 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바울이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지 않고 굳이 걸어서 가야했던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도로아에서 앗소 항구까지 배로 가는 여정을
인터넷 지도를 크게 펼쳐놓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드로아에서 직접 팔레스틴 까지
장거리를 항해하는 배를 만나 승선하기를 원했지만
드로아에서는 그런 배를 만나지 못했고(이런 배는21:2절에서 만나게 된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작은 항구들과 섬들을 거쳐 가는
연안 여객선 같은 배를 탈 수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되면 배에서 너무 많은 시간[날]을 허비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배가 충분히 앗소에 닿을 수 있는 ETA[도착날짜 시간]을 알아내서
이렇게 조치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실제 인터넷에 올라있는 지도를 놓고 보니
드로아에서 앗소 항구까지 가는 짧은 단거리에 비해
거쳐 가야 하는 항구들은 적어도 10개 이상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울은 자신의 귀환 여정을 앞에 놓고
이러한 항해 일정까지도 다 계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바울이 처음부터 동료들과 함께 도보 갈 수는 없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3차 선교여정을 마치고 고린도를 떠날 때
자기를 해하려는 어떤 정보를 입수하였기 때문에[20:3]
대부분 다른 동료들을 먼저 배를 태워 보내면서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자신은 마케도냐 길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처럼
바울이 특별한 방문을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는 이유 외에도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특별한 이유를
고린도를 떠날 때와 같은 상황으로도 연결해서 이해하게 된다.
바울의 선교 여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묵상을 이어가면서
선교여정 가운데 발생하는 여러 변수들과 여러 상황들을
적절하게 그리고 순발력 있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가 상황을 대처해 나갈 때
자기 스스로 내리는 결정 같지만 그의 생각과 선택 가운데
언제나 성령님께서 함께 계셨던 것을 보면서
동일하신 성령님께서 오늘 내가 가는 길에서도 함께 하시며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선택들 가운데도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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