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일괄성 유지하기
▼ 사도행전 25:6-12
묵상내용
바울이 받는 재판은 처음부터 바울에게 심히 불리한 재판이었다.
베스도는 벨릭스의 후임 총독으로 부임해 오면서
다른 민족과 특이하게 다른 유대민족의 고집과 기질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었을 것이고
어떻게 하든 자기 통치 기간에 별 탈 없이 만기를 채우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잘 알았던 것 같다.
따라서 부임 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일주일 이상 지낸 것은
이러한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이제 바울의 재판건과 관련하여
산헤드린의 유력한 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로 함께 내려가고 있으니
바울의 재판은 처음부터 불리하게 돌아가는 재판이 되었다.[25:5]
선임 총독이었던 벨릭스가 바울에게 뇌물을 바라며
한 편 유대인들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노련하게 미적거렸던 이 재판은 어느덧 2년 세월이 지났는데
이제 경험이 부족한 신출내기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는
가부간에 결판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 같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렇다면 바울은 미결수로 보낸
가이사랴의 2년을 어떻게 보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폭동이 일어났던 날
자신이 천부장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던 그 밤에
주님께서 곁에 찾아와 주신 격려와 말씀을 붙잡고
그 지루한 구류의 시간도 이겨내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견뎌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23:11] 하셨는데
자신의 "로마 선교" 비전이기 이전에
주님께서 더욱 확실하게 인 쳐주신 이 말씀을 붙잡고
신임총독 베스도 휘하에서 재개된 재판에 임하게 된다.
재판의 와중에서 총독 베스도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이 요구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재판받을 것도 권하는데
이것은 이미 천부장 루시아 휘하의 470명 군사의 호위를 받아서
가이사랴로 내려온 것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권고사항으로써
바울은 이미 주님께서 주신
로마선교의 비전을 붙잡고 로마 행을 주장하며
로마 시민권자의 정당한 상급 심판 청원으로써
가이사에게 호소하게 되는데( I appeal to Caesar)
뜻밖에도 총독 베스도가 배심원들과 상의하고 쉽게 허락하는 것을 보면
그도 이참에 아예 이 골치 아픈 이 재판 건에 대해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며 마음에 닿아지는 중요한 교훈은
바울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믿고 바라는 바를 밀고 나가는 "일괄성”이다.
처음부터 불리하게 돌아간 이 베스도의 재판정에서
바울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압력과 신임 총독 베스도의 권유로
재판정을 예루살렘으로 바꾸는 무언의 압력을 받기도 했는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로마 시민권”의 행사와
무엇보다 주님께서 이미 주신 말씀으로써 로마행을 확신했기 때문에
자신의 결심을 꺾는 재판정의 분위기를 극복하고
끝까지 로마행을 주장하며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당시 로마제국의 가이사(황제)는 네로 였는데
[재위 기간[AD 54–68]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다고 청원한 당시는
네로가 기독교를 박해하는 미치광이 황제가 아니었고
철학자 세네카와 집정관 부르스의 도움을 받아 선정을 베풀었던
집권 초기[AD54-59년]에 해당되는 기간으로써
(세네카를 처형한 후 그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주님께서는 적절한 시점에서 바울을 로마로 가게 하시고
로마에서 기독교의 대 핍박이 일어나기 전
먼저 황실의 전도가 이뤄지게 하신 것을 엿보게 된다.
처음부터 불리하게 돌아간 베스도의 재판정에 서서
주변에서 가해지는 무언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신 말씀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로마행을 주장하며
가이사에게 호소하고 있는 바울의 일괄성 있는 주장은
오늘 주변의 여건 때문에 쉽게 마음이 요동칠 수 있고
쉽게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교훈이 되는지 이 아침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주님!
쉽게 흔들리고 변질되는
질그릇 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으로 확신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일괄성 있는 주장으로 끝가지 갈 수 있게 하옵소서.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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