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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역대상

▼ 역대상 13:9-14 지극한 경외함으로 말씀대로 섬기기

by 朴 海 東 2018. 9. 3.

지극한 경외함으로 말씀대로 섬기기

역대상 13:9-14

묵상내용

기쁨이 있는 곳에 찬물을 끼얹듯 삼만 명이나 운집하여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드리는 이 축제의 날에[삼하6:1]
새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나오는 과정에서 소들이 뛰므로
언약궤 운반을 맡았던 사람 중의 하나인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든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그를 치심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당연히 축제의 기쁨 대신 큰 두려움이 엄습하였고
다윗은 어찌 내가 감히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가드 사람(단 지파 안에 분배된 레위인의 성읍
가드 림몬 출신이며[수21:20-24]
고핫 자손 인)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기게 하였다. [26:1-5]

어디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록할 때
법궤를 어떻게 운반할 것인지 지침을 내려주셨는데
이런 말씀들이 무시된 채 [미4:15. 7:9]
구별된 레위 지파, 고핫 자손의 어깨가 아닌
소들에 의해 운반되게 한 것은 불경 중의 불경이 되고 말았다.

약 두세 대 전 엘리 제사장 시절에
블레셋 사람들에게 법궤를 빼앗겼을 때
블레셋 도시들에 재앙이 임하므로 그들이 다시 돌려보낼 때도
새끼를 데린 젖 나는 소가 이 언약궤를 운반하였는데[삼상 6장]

그 때는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라는 신의 증거를 찾고자 한대로
하나님께서 새끼를 강제로 떨어트린 그 젖 나는 소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바로 벧세메스 길로 가도록 하셨는데

여기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이 소들을 제어하지 않으시고
제 풀대로 뛰게 내버려 두심으로 사건이 터지게 하시고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서도 까맣게 잊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 못된 것인지
깨닫게 하시는 계기가 되게 하셨는데 다윗과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깨닫게 되었다.[대상15:1-2]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장 애석하게 생각되면서
난제의 구절로 닿아지는 것은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그를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었다는 말씀 이다.

소들이 날뜀으로 하나님의 궤가 떨어지게 되어
웃사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화를 발하시고 죽어나가게 까지 하셨을까(?)

오늘의 본문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같은 내용을 다루는
사무엘하 6장에서는 이 운반의 책임자로 나선 웃사가
(처음부터) 크게 잘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삼하6:7]

아비나답의 두 아들 앗사와 아효가 수레를 몰고 나갈 때[삼하6:3]
그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집에 이 언약궤가 잘 있었음으로
마치 이 언약궤가 자신들의 소유물인양 조금도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소들이 끄는 수레에 실었고 또 소가 기돈의 타작 마당에서 뛸 때에도
마치 자신들의 소유물을 붙잡는 것처럼 언약궤를 붙잡았는데
여기서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가리키는 단어 ‘아하즈’[ahaz]는
나의 소유라는 개념으로써 붙듦이다.

너무 오랫동안 자신들의 집에 언약궤를 보관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그는 언약궤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했고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
언약궤를 붙들었다가 죽어나가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유하시는 분이시지 어느 누구에게든지
소유 되시는 분이 아니시며
내가 내 맘대로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고
내가 도리어 그의 소유가 되어 부림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시다.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은 이러한 두려운 사건을 경험하고서도
(물론 다윗의 부탁으로 했겠지만) 가드 사람(고핫 자손) 오벧에돔이
자신의 집에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을 통해
두 집안을 비교해 주고 있다.

아비나답의 집과 가문은
이 하나님의 궤를 잘 못 모신 것 때문에 자식이 죽고 화를 입었으며
오벧에돔의 집과 가문은
이 하나님의 궤를 잘 모신 것 때문에 자식들이 복을 받고
대를 이어나간 것을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상 26:4-8]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마음 깊이 다짐하게 되는 것은
(아미나답의 가정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을 모셔 섬긴 것 때문에
타성에 젖어서 존귀하신 하나님을 십상히 여기고
나에게 소유되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지 말 것과
내 마음과 생각대로 함부로 상대하는 죄에 빠지지 말 것이며

또 내가 아무리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크게 헌신했어도
마치 교회가 나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하여 함부로 하는
불경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마음 깊은 교훈으로 받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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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를 다시 찾기까지 숨겨진 비화 추정의 글]-----



엘리 제사장 시절 빼았겼던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들이 재앙을 입고 다시 돌려 보냈을 때 벧세메스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이 이 언약궤를 들여다 보다가 (오만)칠십인이 죽임을 당했는데[삼상6:19) 그들이 두려워서 단 지파의 경내가 되는 기럇여아림으로 보내게 됩니다(아마 그 곳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에 있는 아미나답의 집으로 추정 됩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그 곳 기럇여아림에서 20년을 보내고[삼하7:2] 후에 사무엘과 사울의 치세가 겹치는 40년 이상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는데 과연 아비나답의 집에서 이 언약궤를 잘 보관하였는지는 의문 입니다. 새번역 시편132:5절에 의하면 다윗이 이 법궤를 찾고 또 찾다가 에브라다 [에브라임 지파의 경내] 야일의 나무 밭에서 찾았다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 대하여 불경했던 사울의 치세 기간에 이 언약궤를 숨기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가 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아미나답의 집에 있어야할 이 언약궤가 이동 되었던 것을 엿보게 합니다. 추론컨데 다윗은 이 언약궤를 찾았을 때 본래의 곳[아비나답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고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했을 때 대대적인 행사 가운데 운반하려 한 것인데 이런 불상사를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지난 과정과 오늘 본문에 나타난 과오를 추론해볼 때 아미나답의 집 웃사와 아효는 언약궤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못했던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이 본문은 언약궤에 관련된 지나간 많은 날들의 이야기를 묻어두고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 하기 때문에 난제 중에 난제 입니다. 따라서 구약 주석의 권위자인 카일 딜레취 주석에서도 이 부분은 터치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데 학적인 것보다 마음의 감동을 우선시 하는 큐티의 성격상 이렇게 나의 생각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