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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에스라

▼ 역대상 21:9-17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만나는 모성애적 사랑

by 朴 海 東 2018. 9. 18.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만나는 모성애적 사랑

역대상 21:9-17

묵상내용

어제까지 파랗고 드높았던 가을 하늘은 간데없고
하나님께서 심히 불쾌하신 얼굴을 찌프리고 계신 것처럼
비가 올듯 잔뜩 흐리고 음산한 오늘 주일 아침의 말씀은
피할 수 없는 징벌 앞에서 세 가지 재앙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다윗의 곤혹스런 모습으로 시작 되는데
짧은 본문 가운데서 세 가지 테마를 정리해 보게 됩니다.

1. 징계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2. 다윗이 바라 본 천지 사이에 선 천사
3. 징계 속에서 더욱 돋보이는 다윗의 참 목자 상(像)

1. 징계 속에서도 긍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21:9-15]

하나님의 대표적 속성이 될 수 있는 거룩[공의]와 사랑은
서로 충돌적인 것 같지만
이 두 가지 속성이 함께 만족되어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하심을 침해한
자기 백성을 심판[징계]하실 때
눈물겨운 사랑도 함께 나타나는 것을 보여줍니다.

역대기에서는 다윗의 인구조사에 따른 징벌만 부각되고 있지만
사무엘기 에서는 공식적인 정복사업이 끝나는 랍바성 전투 이후
다윗의 치세 말기에 벌어졌던 인구조사와 이에 따른 징계까지
파란 만장했던 숨 가쁜 역사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이스라엘의 국가 반란을 주도했던
압살롬의 난과 세바의 난을 생각해보게 됩니다.[삼하 15-20장]

이 압살롬의 난과 세반의 난에는 거의 모든 이스라엘이 반역에
동참해서 다윗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국을 세우려고 시도했는데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을 세워 가시는 언약의 하나님께 대한 배반이었고
하나님의 주권과 왕권을 침해하는 반역을 도모한 것 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공의가 발동되신 것이고 그 공의의 집행은
이스라엘의 대표로 세워진 다윗의 인구조사를 빌미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친히 약속하셨고
모세의 시내산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을 탄생되게 하셨으며
광야 40년과 가나안 입성 이후 사사시대 400년
그리고 통일왕국 시대를 이룬 사울의 시대 40년과
지금 다윗의 시대 40년 가까이 이르기까지 길고 긴 세월동안
그가 세우신 왕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왕권을 나타내 오셨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침해하며
국가 반란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역모를 시도한 이 죄악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너무 심각한 거룩의 손상이고
공의의 훼손이 되었기 때문에 만일 그냥 이대로 지나간다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실 수 없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수 없는 하나님이 되시기에
이렇게라도 징계의 손을 댈 수밖에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백성의 대표로써 3년 기근/적군의 칼에 쫓김/ 혹은
여호와의 칼로써 3일 동안 전염병이 나라를 휩쓸게 되리라는
3가지 재앙 중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그래도 여호와는 긍휼이 크시니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선택하여 3일간 휩쓸고 간
전염병으로 칠만 명이 죽어나가는 재앙이 발생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이러한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위한 긍휼이 끓어올라서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고 후회하시는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기에 뉘우침이라든가
후회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고 붙일 수 없는 분이시지만
그러나 자기 백성에 대한 징계 가운데서도
가슴에서 불타는 긍휼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음으로
인간적인 언어를 빌려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神人同形說]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엣)어머니들처럼
못난 자식 때리면서 함께 울고 있는 하나님의 모성애적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가 혹 잘못하여
징계를 받을 때에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거두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 하게 됩니다.

이 사랑이 마침내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나]같은 죄인을 위해 이 세상에 보내셨고
우리[나]의 모든 죄악을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랑인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드립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어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묵상적용

2 다윗이 바라본 하늘과 땅 사이에 선 천사[21:16]

다윗은 자신의 범죄 이후 자신의 자식들 사이에서 일어난 칼부림과
또 가장 총애하던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영적으로 얼마나 곤고하고 힘들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럴 때는 정말 막막한 현실 앞에서 마음의 근심은 수풀처럼 우거지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나타내주지 않으시는 현실 앞에서
영적으로도 매우 메말라지고 어두워질 수 있는데
오늘의 말씀은 뜻밖에도 징계 가운데서 그의 눈이 열려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선 천사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바라본 천사의 크기가 이 세상이 감당이 되지 않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선 천사라고 한 점에서[21:16a]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천사 한 명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어떤 것인지 감히 미루어 짐작해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환상을 통해 그 광대함의 넓이를 암시하였다면[계10:2.5.]

오늘의 말씀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다는 표현으로
그 광대함의 높이를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훗날 히스기야 시대에 여호와의 사자로 표시된 천사 한 명이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하루 밤사이에 죽여 송장이 되게 하였다는
능력의 근거를 이런 말씀에서 추론해보게 됩니다.[왕하19:35 대하32:5.]

그러나 이 본문에서 이런 천사론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겉잡을 수없는 혼돈의 역사 속에서 영적으로 메마르고 탈진되어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던 다윗의 영성에 영안이 열려져서
하나님의 사자로서 나타난 천사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해주는 바가 크며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게 되는 것처럼
이 징계는 단순한 징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징계를 마감시키는
천사가 선 그 자리 –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렸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 응답해 주시고[21:26]
고통스러웠던 징계가 끝나고 제사를 드린 그 자리가
후에 성전 건축의 터가 되는 축복의 자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징계 중에서도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해주시는 은혜를 엿보게 됩니다.

3. 다윗의 참 목자 상[像] [21:17]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에 대해
나단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을 때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의 주권자가 되게 하였다고 하셨는데 [대상17:7]
하나님의 양떼로서 이스라엘을 맡게 된 다윗은
자신이 양떼를 치는 동안 목동과 목자로 지낼 때
양과 목자의 관계를 충분히 경험하고 배운 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이스라엘의 선한 목자로
자신의 역할을 잘 한다고 했지만
이제 자신의 인구조사로 말미암은 재앙이
주님의 양 무리 된 백성들에게 미쳤을 때
(비록 백성들의 하나님의 왕권 침탈에 대한 징계였지만)
이 모든 잘못은 나의 죄이니 나와 내 아비 집을 치시고
제발 백성들에게는 재앙을 내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도 남을 다윗의 이 기도 속에서
오늘 주님의 양 무리를 맡은 내가 주님의 교회에서
어떤 목자 상을 가져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양들을 자기 생명보다 더 끔찍하게 위하고 있는
다윗의 이 참 목자 상은
곧 양의 대목자장이 되시는 우리 주님의 모습이며
나의 모든 죄를 그 한 몸에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로 가신 주님의 모습을 반영하고 엿보게 합니다.

보통 교회 안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분쟁이 생기는 것을 보면
주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맡겨주신
주님의 양들에 대해 생명과 사랑의 관계가 아닌
직업적 관계로 상대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을 봅니다.

목사와 양의 관계에서 생명의 관계로써
주님의 양들을 맡았다고 생각하면
양을 위해 희생하지 못할 것이 없고
문제가 발생하고 분쟁이 생길 때도 모든 것이 내 잘못이고
나의 부족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아 내가 회개하게 되지만
양과 목자와 같은 생명의 관계가 되지 못하면
목사는 자기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 자기변명은 하여도
오늘의 말씀에서 다윗이 말하는 것처럼
나 때문이고 내 죄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음을 봅니다.

오늘의 묵상을 마감하면서 지난 날 이렇게 목양하지 못했던
나의 어설펐던 목양의 시절을 진심으로 회개하게 되며
이제 늦게라도 철이 들어 양들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목양의 길을 열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