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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역대상

▼ 역대상 25:1-31 주님을 감동시켜 드릴 찬양 부르기

by 朴 海 東 2018. 9. 21.

주님을 감동시켜 드릴 찬양 부르기

 역대상 25:1-31

묵상내용

앞선 24장에서는 성전에서 제사의 직무를 맡은
아론의 자손 24반열과 그들을 보조할 레위인 24반열
그리고 이들을 지도 감독할 우두머리들을 임명했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찬양으로 섬기는 24 반열이 나온다.

그런데 이처럼 악기를 다루거나 노래하는 자들의 면면을 보면
레위지파 아삽/헤만/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나오게 되는데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는 
아삽의 아들들 -----4명
여두둔의 아들들----6명
헤만의 아들들 ----14명/모두 합해서 24반열의 주축이 되고

여기에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까지 합하여
모두 288 명의 정규 찬양단이 조직 되며
이들을 각 가문을 따라 12명씩 나누어 24반열을 구성하는데
24X 12 = 288명의 정규 찬양단을 구성하게 된다. 

더불어 이들 24 반열이 성전 제사에 찬양단으로 서게 되는
순서를 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제비를 뽑은 순서는
아삽/헤만/여두둔 자손들의 순서로 뽑고
아삽과 헤만의 아들들이 뽑기를 마친 다음에는 
가장 수효가 많은 헤만의 남은 아들들끼리도 뽑은 것 같다. 

그런데 24반열을 구성하는 이 288명의 정규 찬양단 외에도
이 정규 찬양단에 오르는 실력을 얻기 위해서 연습하는 
예비 후보자들도 상당히 많았던 것을 추론하게 되는데 
다윗이 레위지파의 사람들을 30 세 이상으로 계수했을 때
찬송하는 자들의 수효를 4천명 이라고 한 것에서 추론된다[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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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들은 새벽과 저녁 마다 서서 여호와께 축사하며 찬송했다[23:30]
2. 찬양의 지휘자들은 골방에 거하여 자기 직분에 골몰하고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함으로 전문성을 갖춘 자들 이었다.[9:33]
3. 이들 지휘자들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는 영안을 가진 자들 이었기에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를 지휘할 수 있었다.[[25:1.2. 5]
4. 역대기 저자는 악기를 다루며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자의 수효를
---4천명이라고 했는데 특별한 절기나 행사에는 
이 4천명으로 구성된 맘모스적 오케스트라 합주단이 구성된 것 같다. 

이처럼 이들이 찬양을 중시하는 전문성을 가지고 올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구속함을 받은 자기 백성들이 찬양으로 영광을 돌릴 때 
이는 굽과 뿔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더 귀한 제사가 된다고 하셨는데[시69:31] 
과연 우리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편22:3]

묵상적용

1. 내게 주신 기회를 최대로 선용하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 깊이 닿아지는 것은
내가 주님을 위하여 기회를 잡았을 때 최선을 다해
주님을 감동시켜 드릴 수 있어야함을 배운다.

아론의 자손들인 성전 제사장들과 
그리고 성전 제사를 보조하는 레위인들 뿐 아니라
찬양을 위하여 선발된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들도
주님 앞에 서서 섬길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다.

24 반차를 따라서 섬기는 것임으로 24 반열로 조직된 성가대가
모두 섬김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제비 뽑힌 순서대로 1년에 한 번, 두 주간을 하든지 
아니면 2년에 한 번, 한 달 동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은데
이 단 번의 기회를 위하여 그들은 일 년 혹은 2년간 준비하여
찬양의 자리에 섰다고 생각하면 그 준비와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상상이 간다. 

어디 그 뿐인가, 이 성가대원 288명 뒤에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실력을 키우는
4,000명이 있었다고 생각해볼 때(대상23:5)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이들은 절치부심 얼마나 최선을 다했을 것인지 엿보게 된다.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24반열의 성가대의 면면을 볼 때
오늘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매주 마다 성가대에 서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며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는 죄에 빠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2. 주님을 감동시킬 내 영혼의 찬양:

지난 여름 수십 년이 지난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내가 졸업한 대학의 총동창회 사무실에 연락해 번호를 알아내 
전화 한다고 하면서 나와 만나기를 청하였다.

그는 내가 중학교 시절 소풍을 가서 급우들 앞에서 불렀던 노래가 
평생 자기 마음에 남아 있다고 하며 
전화기 상으로 그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였는데 
나는 나의 그 때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이 전화를 받고
내 노래가 그 친구에게 평생에 남은 노래로 전달된 이유를 생각해보며
아마 그 때 그 순수했던 한 십대 소년의 감정 몰입으로 부른 노래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자라서 그런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성이 베인 것 같기도 한데 
지금까지 거쳐 온 교회 생활을 통해 가장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찬양/음악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공식적인 성가대에 서보지 못한 것이다. 

주님께 드릴 찬양을 잘 준비한 성가단원들이 알토/소프라노/테너/베이스
4부로 찬양을 할 때 받게 되는 감동은 은혜 받는 설교 이상의 힘이 있고
때로 눈물을 흘리게도 하며 어떤 때는 성가대에 서 서 찬양하는 대원들이 
주님의 영광을 반영하여 비추는 천사들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성가단원들이 찬양할 때 제 3자의 입장에서 찬양을 듣게 되는
나 같은 무지랭이 인간에게도 찬양이 주는 감동이 이러하다면
이 찬양의 주제와 주인공이 되시어 찬양의 분향을 받으시는 
우리 하나님 편에서는 얼마나 깊은 감동을 받으실 것이며
천상 교회에서 찬양하는 천사들도 얼마나 흠모할 것인지 짐작이 된다. 

지금 나의 형편으로는 주님을 노래하는 성가대에 설 수 없지만
교회 예배 순서 가운데 드려지는 찬양을 부르게 될 때
주님께 향한 나의 신앙고백을 담아서 그리고 
내가 드릴 수 있는 최대의 감성을 몰입해서 찬양함으로 
내 중학교 시절 친구가 나의 노래를 잊지 못해 전화를 걸어왔던 것처럼
주님께서 나의 찬양에 감동하시고 나를 주목하시며 
큰 은혜로 반응해 주시는 찬양이 될 수 있기를 마음 깊이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