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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당/역대하

▼ 역대하 20:31-37 내 안의 또 다른 산당을 제거하기 위하여

by 朴 海 東 2018. 11. 27.

내 안의 또 다른 산당을 제거하기 위하여

역대하 20:31-37

묵상내용

이른 아침에 일상적으로 가까운 기도 동산에 오르곤 했는데 늦가을 들어 부쩍 많아진 미세 먼지와 습한 새벽 공기로 가능한 외출을 삼가고 그냥 창밖을 내다보면서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본래부터 좋지 않았던 내 목과 기관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나이 탓일까 요즘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가끔 축 처져서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을 의식하며 일부러 활기차게 걷기 위해 빠른 템포의 찬송가 곡을 속으로 부르면서 걸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확실히 걸음걸이에도 힘이 생긴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의 활력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육신의 생각을 통해 침투하는 악한 영들을 차단하고 성령의 생각과 교제로 마음을 무장하기 위해 오늘도 생명의 삶을 위해 주신 생명의 양식으로써 오늘의 말씀을 편다.

오늘의 본문을 천천히 읽어내려 가면서 그리고 이 기록된 말씀 속에 담긴 더 깊은 주님의 숨결로 닿아지기 위해 NIV 성경을 펴고서도 읽어본다.

지난 11월 1일 중국에 다녀오는 배의 침실에 생명의 삶 책자를 놓고 오는 바람에 이번 달 11월은 부득이 한글 개역 성경과 영어 NIV 성경 두 권을 펴 놓고 하게 되는데 그냥 책자만 보고 할 때보다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마음에 닿아지는 두 개의 구절을 붙잡게 된다.

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해 행하였으나[20::32]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오히려 마음을 정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20:33]
[He did what wa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The high places, however , were not removed,
and the people still had not set their hearts on the God of their fathers.]

1.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그는 주님의 눈 빛 앞에서 바르게 행했다]

한 평생 주님 앞에 변덕스런 마음 갖지 않고 주님의 눈 빛 앞에서 바르게 게 살았다고 평가받는 여호사밧의 모습에서 진정한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산상 팔복의 여섯 번째 복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으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는 하나님 보시기에 혹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그의 눈 빛 앞에서 살아가기에 절로 마음이 청결해지리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지난여름 가뭄이 심하던 차에 마침 비가 많이 온 날 가뭄을 대비해서 큰 저수통에 고랑에서 흘러가는 흙탕물이나마 가득 부어두었는데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은행 알을 씻기 위해 뚜껑을 열어보니 진흙들이 침수 침잠되고 맑은 물로 가득하여 그 밑바닥까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너나없이 모두 진흙탕 물 같은 더러움이 있지만 주님을 생각하는 고요한 묵상과 침묵 가운데 그리고 주님의 눈 빛 앞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코람데오의 신앙 가운데 깊은 호수의 밑바닥까지도 들여 볼 수 있는 것 같은 맑음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여호사밧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바르게]행했다는 이 반구절의 말씀이 나의 평생에 나의 신앙과 삶의 모습이 되기를 이아침 진심으로 기도 드린다.

주님!
저도 항상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빛을 의식하고 살아감으로
청결한 마음 가운데
정직하게 행할 수 있는 은혜를 입혀 주옵소서.

묵상적용

2. 내 안의 또 다른 산당을 제거하기 위하여

역대기 저자는 여호사밧의 일대기를 기록한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글을 통하여 그의 일평생이 개인적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행한 자였으나 그의 왕권을 가지고서도 우상 숭배의 온상이 되는 산당을 제거시키기에는 역부족 이었던 것을 보여준다.

여호사밧의 25년 통치 기간을 보면 몇 차례 과감한 종교개혁이 있었고 우상들과 산당들도 제거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17:6]
그러나 그의 치세 말기에 이르러 그의 왕권으로도 척결하지 못한 “산당들”이 여전히 잔존했다고 하는 기록은 여호와 신앙과 우상 숭배가 혼재된 이 산당의 제사가 얼마나 뿌리 깊은 죄악성을 가지고 민간 백성들 마음에 남아 있었는지를 엿보게 한다.

더불어 이러한 산당은 그 시대 뿐 아니라 오늘 내가 주님을 섬기는 이 시대에도 또 다른 형태의 산당으로 내 안에 잔존할 수 있음을 엿보게 한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세상 즐거움과 재미도 포기할 수 없는 혼재된 이중적 신앙의 삶이 얼마나 뿌리 깊은 죄적 속성을 가지고 나를 부패시킬 수 있는지 각성을 받게 된다.

오직 하나님께만 나의 마음을 정제하고 셋팅(Setting on) 할 수 없는 것일까(?)
후일에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 제거하지 못한 산당으로 인하여 도화선이 되고 있는데
오늘 나의 신앙과 삶 속에 주님을 예배하고 섬긴다고 하면서도
또 다른 형태로 들어와 있는 산당을 제거하기 위하여
다시 복음 앞에 서고 다시 순결한 신앙으로 돌아가며
다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마음 깊이 다짐한다.

주님!
내 마음을 혼재하게 하는
내 안의 산당을 제거하고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여 서듯
나의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주님께만 향할 수 있도록
가난한 마음, 청결한 마음의 복을 내려 주소서.